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했던가. 그러나 사람들은‘가정’을 멈추려 들지 않는다. ‘만일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하는 식의 가정 말이다.
‘만약 링컨이 유화적인 입장을 취해 남북전쟁이 2년 정도 늦게 발발했더라면…’- 대통령의 날을 전후해 한 역사가가 던진 질문이다. 미국은 최소한 두 나라 이상으로 분열되고 이후 세계 역사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가 내린 결론이다.
당시 남부의 주산업은 목화재배였다. 이 목화재배의 필수요건은 집약된 노동력과 광대한 토지다. 노동력은 노예로 해결된다. 문제는 토지다. 중남미 지역으로 뻗어 계속 영토를 넓히는 제국주의적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다.
당시 유럽의 열강은 남부를 독립된 국가로 인정할 준비가 돼 있었다. 제국주의라는 코드가 맞았기 때문이다. 그랬을 때의 결과는 어땠을까. 먼저 미국은 오늘의 미국과 사뭇 다른 나라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중남미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가 됐을 것이다.
따라서 내려진 평가는 링컨의 단호한 전쟁에의 의지가 미국을 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동에서 진보로, 역사의 흐름도 바꾸었다는 것이다.
‘만일에 서방이 조금 더 일찍이 단호히 대처했더라면…’- 1938년의 유럽 상황과 관련해 요즘 자주 던져지는 질문이다.
나치 히틀러의 도발은 계속돼 왔다. 그러나 영국은 유화정책만 펴왔다. 전쟁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그 나약한 심리를 파악해서인지 나치의 도발은 계속된다. 1938년의 상황이다.
그 다음해, 1939년 나치의 폴란드 침공사태를 맞아 영국은 결국 그토록 회피해 오던 전쟁에 휘말린다. 2차 대전 발발이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사상 최대의 인명피해를 낸 것이다.
‘만약 2년 전에만 단호한 대처를 했더라면…’- 세계대전을 막을 수도 있었다. 또 그 때 개전을 했더라면 막대한 인명피해는 피할 수 있었다. 많은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결론이다.
역사의 가정법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런데 그렇다. 뒤에 와서 보니까 결론은 다 안다. 그래서 ‘이랬었더라면…’이란 한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인지 모른다.
말하자면 TV 연속극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할까. 결말을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극중의 인물은 모른다. 그 가운데 몸부림친다. 그리고 결정을 한다. 그러나 잘못된 결정이다. 그 비극적인 스토리 전개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혀를 차는 것이다.
역사란 것도 그렇게 보인다. 인간의 어리석음, 비극으로 점철돼 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역사의 분기점에서 내려지는 결정은 대부분이 잘못되기가 십상이다. 특히 전쟁과 관련된 결정은 오류투성이로,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 일쑤여서다.
링컨의, 처칠의 위대함이 말하여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남다른 혜안을 가졌다. 또 용기도 갖추었다. 그래서 위기에서 한 국가를 구하고 세계사의 줄기를 바꾼 것이다.
항공모함이 추가 배치됐다. 핵추진 항모인 존 스테니스호다. 이미 작전 중인 항모 드와이트 아이젠하워호와 합류했다. 작전해역은 이란의 코앞이다. 이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대규모 군사훈련에 돌입해 수백발의 신형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이란 회교혁명 정권의 도전은 근 한 세대동안 계속돼 왔다. 그 시작이 1979년 미 대사관 인질사건 때부터니까. 1983년 300여명의 미 해병이 숨진 레바논 테러사태도 그 일환이다. 공세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이라크에서 반군을 지원하는 형태에 이르기까지.
추구하는 것은 시아파 제국이다. 전 세계가 회교 율령에 복종하는 신정(神政)체제가 궁극의 목표다. 그 시기가 임박했다고 보면서 이스라엘 말살을 서슴없이 외친다. 그리고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엔이 설정한 핵개발 중단 요구시한을 무시하면서.
그 회교 신정체제의 이란과 미국의 대치상태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부시는 그러면 결국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만약 미국이, 더 나가 서방이 회교 신정체제에 좀 더 일찍 단호히 대처했더라면…’- 몇 십 년 후 역사가들은 혹시 이런 질문을 제기하게 되는 게 아닐까. 전쟁피로 증세가 날로 뚜렷해지는 미국적 현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역사의 되풀이는 비극이다. 두 번째의 되풀이는 그러나 소극(笑劇)이다.” 마르크스가 한 말이던가. 그러나 아직은 조금은 더 두고 보아야겠다. 훗날의 그 질문이 ‘미국이 만일 유화적인 입장을 취했더라면…’으로 바뀔 수도 있을 터이니까.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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