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르네 마그리트 -그가 살아 숨쉬던 집에는-
시와 철학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전’이 열리고 있는 LA 카운티뮤지엄 ‘모던 컨템퍼리룸’은 또 하나의 만남이었다. 전시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남녀 모두 검정 양복에 중절모를 쓰고 빨간 타이를 매고 있었다. 전시장에 발을 딛는 순간 잔잔히 물결치는 감동과 함께 작은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천정은 하늘에서 본 LA 프리웨이 사진들이 모자익으로 조각지어 붙어있고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만든 카펫은 그의 작품 속에서 많이 나오는 연하늘색에 흰 뭉게구름이 둥둥 떠 있었다.
이 정도면 마그리트의 이미지는 절반이상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연방정부의 지원도 있어 전시를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한 것이 보인다. 중절모와 파이프, 바다위에 구름과 함께 떠있는 큰 돌 위에 성곽, 방안 가득한 사과 하나, 빛의 제국, 침대보다 더 큰 머리 빗, 인체와 사물의 병합, 구두가 된 발, 벽난로를 뚫고 나오는 기차 등등 크고 작은 그의 작품들이 관람객을 반기고 있었다. 또한 그의 영향을 받은 현대 작가들 작품도 함께 전시돼있어 보는 재미와 의미가 더 했다.
지난해 12월초 벨기에 브뤼셀 ‘L’affaire Noel’ 갤러리에서 초청한 국제 화가전시회에 내 작품도 몇 점 들어있어 설레임 속에 참석했다. 세계 각국에서 온 27명의 화가들이 참여한 큰 전시회였다. 낯이 익거나 새 얼굴이거나 우리는 어느새 친구가 되어 서로를 알아가며 가까워진다. 작가들은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먼저 미술관부터 찾아보는 일을 우선순위로 한다. 나 역시 언제 또 다시 이곳에 올 기회가 있을까 싶어 며칠 스케줄을 위해 살피던 중 마침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생가가 있음을 알고 도착한 다음날 물실호기 쾌재를 부르며 달려갔다.
그가 25년 동안 살아온 집은 도심 속에 단아한 3층이었다. 당시 그는 1층만 사용했고 세 가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집 전체를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어 관광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가 사용했던 모든 가구와 집기 부엌살림은 물론 거실에는 그가 사랑했던 아내 조젯의 누워있는 나체 그림과 그가 가는 곳에 평생 함께한 애견 루루를 닮은 개도 얌전히 박제되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엄연한 파이프 그림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써놓아 이미지의 반란과 배신,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화가다. 그는 언제나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와 기묘하고도 기발한 비평적인 예술을 창조하였다. 20대 초반에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초기에는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1926년 파리에 체류하던 시기에 화가 살바도르 달리, 시인 폴 엘루아르 등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이 역사의 흐름에 동참한다. 지금은 세계적인 화가로 명성이 나있지만 그도 무명의 화가로 20년이 넘도록 외로운 시간을 지내왔다고 안내자는 말했다. 특별히 80여년전, 그래픽 광고디자인, 만화가, 벽지 디자인으로 시작한 그가 화가의 반열에 낄 수 없었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13살 때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는데 그의 그림 속에 불타는 사람이나 트럼펫이라던가 신체의 일부분만 그려놓은 난해한 그림들은 그의 유년시절 어머니를 잃은 후유증이 아닌가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무실이 있는 3층에서 밖을 내다보니 뒷마당 끝에 큼직하게 지어놓은 화실이보였다. 그곳에서 학생들도 가르치며 자신의 작업도 해왔다고 한다. 몇 장 찍어온 사진을 보니 집 주위를 덮고 있는 나무들과 이웃 붉은 기와지붕들이 어우러져 겨울이지만 한 폭의 그림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고정된 시간’ 이라는 작품 속에서 들어있는 벽난로를 직접 보면서 시간과 공간, 작품과 현실의 대비가 묘한 감회로 젖어왔다. 이 그림은 그가 꿈속에서 본 것을 그렸다고 안내자는 설명하는데 후에 사람들은 성의 표현으로 받아드리기도 한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집 앞에 아무 건물도 없는 광활한 평야였기 때문에 작가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풍랑을 즐기면서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는 예술의 실질적인 가치는 자유로운 드러냄에 있다고 말했는데 글이나 그림이나 자유로운 드러냄에 제동이 걸리면 참다운 예술혼이 분출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지막 방에서 여자의 은밀한 부분을 자물쇠로 잠거 놓은 그림을 보면서 삐죽이 웃음이 나왔다. 아마 요즈음 이런 그림을 그린다면 온 여성들로부터 돌팔매를 맞지 않을까 싶다.
그의 어록에는 “고대 혹은 현대 미술과의 단절”을 선언하기도 했으며,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말하며 또 그 명제를 뒤집은 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중에 특별히 내 마음을 사로잡은 말은 “그림에서 가장 적절한 제목은 시적인 것이고 시적인 제목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마법에 빠져들게 한다.”고 말한다.
삶에도 이처럼 시적인 느낌으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매일 신비하고 아름다운 마법에 빠져들어 행복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너무 많이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은가. 복도 온 벽에 그려넣은 벽화가 인쇄된 벽지를 붙인 것처럼 섬세했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스미스’ 요원은 마그리트 그림의 검은 중절모 신사에서 힌트를 얻은 캐릭터며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는 마그리트 작품 속 ‘사과’를 응용하여 음반 ‘Apple Records’사를 설립했다. 그 밖에 많은 영화 소설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으며 현재도 응용되고 있다.
화가라는 이름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사람, 동서양의 구분을 넘어 음악, 영화, 문학, 철학,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는 르네 마그리트의 집을 찾아본 것은 내게 주어진 큰 선물이요 축복이었다.
마당에 나와 그가 늘 사용했을 펌프에 손을 대보았다. 천재 작가의 기발한 영감이 내 육신의 실핏줄을 타고 들어와 나도 세상을 깜작 놀라게 할 작품들을 낳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알리사 홍>
약력:수필가, 화가, 재미수필문학가협회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