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뷰캐넌.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리는 이름일 것이다. 누가 말했던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때문인지 역사는 승자에, 성공한 사람에게 항상 후한 점수를 준다.
미국의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워싱턴, 링컨, 루즈벨트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안다.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란 타이틀과 함께 항상 화려한 조명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낙제점의 대통령들은 제대로 기억이 되지 않는다. 15대 대통령 뷰캐넌이 그런 존재다. 역대 대통령을 평가할 때마다 항상 실패작으로 평가되는….
실패한 대통령도 그러나 나름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 때는 국민적 우상이었다. 정치적 현자란 말도 들었다. 그런 그들이 왜 실패했나. 그 재조명은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배양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뷰캐넌은 어찌 보면 1850년대 미국을 대표한 정치인일 수 있다. 일찍이 정계에 진출해 연방하원에, 상원의원이 됐고 주요국 대사를 거쳐 국무장관을 지냈다. 그리고는 1856년 민주당 후보로서 대통령에 당선된다. 말하자면 정통코스를 밟아 백악관에 입성한 것이다.
이런 그가 취한 정치적 입장도 당시로는 극히 합리적이라고 판단된 노선이었다. 중도다.
1850년대 미국 정치의 ‘뜨거운 감자’는 노예제였다. 북부와 남부가 노예제를 둘러싸고 심각히 대립하고 있어서다. 이 상황에서 당시 민주당 지도층이 내건 노선이 바로 중도였다.
노예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면 그 순간 연방은 분열된다. 이게 중도표방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남부의 표를 의식한 것이었다. 무원칙의 원칙을 고수한다고 할까,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이도저도 아닌 입장을 보여 왔던 것이다.
“분열된 집은 서 있을 수 없다. 나는 이 정부가 반은 노예, 반은 자유라는 상태로 영속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링컨이 일리노이주 공화당 대회에서 상원의원 후보지명을 받았을 때 한 연설내용이다.
이 발언을 뷰캐넌을 비롯한 민주당 지도층은 철없는, 그리고 위험한 발언으로 보았다. 중도노선을 지향하는 다수 유권자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내심 비웃으면서.
이도저도 아닌 정책노선은 연방의 분열을 가져왔다. 북부는 북부대로, 남부는 남부대로 뷰캐넌에게 등을 돌린 결과다. 그가 표방한 중도라는 건 사실에 있어 무능에, 기회주의의 다른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뷰캐넌은 결국 ‘미합중국 분열을 불러온 대통령’이란 오명을 남기게 된 것이다.
뷰캐넌과 뚜렷이 대조되는 대통령이 링컨이다. 아웃사이더였다. 그런 그이지만 노예제에 대해서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노예제는 한 마디로 악(惡)이다. 때문에 노예제 종식에 있어서는 ‘정치적 컨센서스’라는 게 따로 필요 없다고 본 것이다.
당시 민주당 지도층에게는 상당히 과격하게 들렸다. 그러나 미국은 링컨을 선택했다. 제16대, 그리고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이게 1860년의 일이다.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 선거 이슈 포착에도 뛰어나다. 카리스마가 넘쳐흐른다. 대권주자로서 손색이 없지 않을까. 그렇긴 하다. 하지만 뭔가 부족한 게 있다. 무엇인가. 캐릭터(character)다. 이게 안 보일 때 성공은 기대할 수 없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로 미국의 정치를 현장에서 오래 지켜보아온 한 관측통은 캐릭터를 들었다. 그 말의 번역이 힘들다. 성품, 기질로만 볼 수도 없다. 거기다가 뭔가 혼(魂)적인 요소가 가미된 게 캐릭터란 생각이 들어서다.
이 캐릭터란 것이 그렇다.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게 아니다. 상당한 희생이 따른다. 때로는 정치적 광야생활이 필요하다. 역경과 스트레스를 통해 가다듬어지기 때문이다. 그 기반은 그러나 변함이 없다. 용기와 원칙주의다.
이 캐릭터란 요소가 빠진 성공한 정권, 위대한 대통령은 찾아볼 수 없다. 윌리엄 새파이어가 일찍이 한 말이다. 이는 열정이, 혼이 스며든 정치 아젠다 없이 정권창출을 기대하지 말라는 충고이기도 하다.
얘기가 길어진 건 다름 아니다. 그 캐릭터라는 게 한국의 대선주자라는 사람들에게서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서다. 그저 외치느니 중도다. ‘중도통합이 목표다’-. 열린 우리당에서 나오는 소리다. ‘나도 중도다’-. 한나라당 유력 대선주자라는 사람들의 하나같은 화답이다.
얼굴을 모두 뜯어고쳐 획일화된 성형여인들을 보는 것 같다. 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한국의 링컨 탄생을 기대한다는 건 부질없는 꿈일까. 대통령의 날을 맞아 한번 던져보는 질문이다. 이 역시 부질없는 질문인지 모르지만.
sechok@koreatimes.com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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