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꼬까옷에 제기차고
우리 차 마셔볼까?
이국땅서 1.5~2세들에게 예절의 뿌리 중요성 인식시키려
절하는 법부터 설빔입기, 차 마시는 것까지 전통문화 가르쳐
<등대예절학교에서 이재정 원장(가운데)이 학생들에게 한국 다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설날을 맞아 진행된 이날 수업에서는 남녀 절하는 법과 인사법에 대해서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유쾌하게 실습을 하였다>
이른 아침부터 새해가 왔다고 까치가 마당에서 울어줄 리 없고, 때때옷 입은 아이들이 복주머니 옆에 차고 세뱃돈 탐하며 동네 어귀부터 뒷동산까지 오르락내리락 거릴 일도 없다.
떡국 한 그릇 후다닥 비운 사내아이들이 제기를 차고, 붉은 댕기 곱게 맨 계집아이들이 널뛰기에 제 몸 맡겨 담 밖으로 발그레한 뺨 보여줄 리는 더더구나 만무하다.
한국에서도 사라지는 설 풍습이 태평양 건너 이곳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질 리 없겠지만 우리에게 설날은 바로 이런 정겨운 풍경으로 기억되지 않겠는가.
한복 입느라 사각사삭 거리는 비단옷 소리, 아낙네들이 지난 저녁부터 끓여 놓은 달큰한 고기 국물 냄새, 아침상 물리고 앉아 윷판 벌이는 풍경까지 손을 내밀면 잡힐 듯한 아련함이, 이 애잔함이 먼 이국땅에 사는 우리에겐 설날이다.
그러나 ‘차이니스 뉴이어’ 정도로만 설날이 인식되는 우리의 아이들에겐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까. 게다가 1.5세나 2세의 젊은 부모들은 미국에 살면서 구태여 실생활에 접목할 수도 없는 명절이니 예절이니 하는 것들을 꼭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각자 다른 논쟁과 심한 의견차로 갈 수 있는 문제들은 일단 뒤로 물리자. 여기 절하는 법부터 인사하는 법, 차 마시는 법 같은 우리 문화를 가르치고 익히는 이들이 있다.
우리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수천 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문화를 배우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즐겁고 유쾌하기 때문이다.
■예절학교 가봤더니
10일 오후 찾은 등대예절 한국학교(원장 이재정)는 분주했다. 설날을 맞아 아이들에게 한복 입는 법에서부터, 절하기, 다도 등을 특별 교육하는 날이라 부모들은 물론 대여섯 살 먹은 꼬마들까지 치마저고리 입느라, 옷고름 매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어색하고 서툴러도 종종걸음 치며 떡이며 찻잔을 나르는 고사리 손이 앙증맞다.
그나마 올해는 매년 해오던 떡국 끓이기며 만두 빚기를 하지 않아 오히려 한가한 편이라는 것이 이 원장의 설명.
예절 익히니 자부심 ‘솔솔’
어른도 쉽지 않은 동작
열심히 배우는 모습 대견
작열하는 캘리포니아 태양 아래서 설맞이 행사로 분주한 이 곳은 이질적인 느낌을 지나 아이러니하게도 이국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병풍을 둘러치고 돗자리를 깔고 비단 방석을 내오니 아이들과 부모들이 익숙하게 다과상을 차려낸다. 그리곤 남녀모두 큰절과 평절을 해 보인다. 이미 몇번 배운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겐 익숙지 않아 이 원장이 일일이 코치를 한다.
오른발을 구부리는 것인지 왼발을 구부리는 것인지 쩔쩔매는 것은 기본이고 오른손과 왼손이 포개지는 것도 헷갈려 엎치락뒤치락. 그래도 곁눈질까지 해가며 절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의젓하다.
세배가 끝나고 다시 일어서 공수(공손한 자세로서 손을 맞잡는 것)하고 다시 앉아 덕담을 듣고 나누는 것까지가 세배에 한 과정이다. 한국에서 자고 나란 어른도 제대로 하기 쉽지 않은 예법을 진지하게 배우는 모습이 자못 어른스럽다.
1년째 예절학교에 초등학생 남매를 보내고 있는 이승혜씨는 “한국 예법이란 게 하루아침에 배워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른들께 인사하는 법 같은 작은 예절에서 변하는 것을 보니 흐뭇하다”고 말했다.
<이재정 원장이 학생들에게 차를 따라 주고 있다>
■등대예절 한국학교 이재정 원장
“부모와 생활 속 함께 실천”
“자녀들에게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부모님도 함께 실천해야 하는 것이 예절입니다.”
올해로 6년째 예절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이재정(사진·51) 원장은 바쁜 이민생활 속에서 우리 예절이 사라지는 것은 배우지 못한 2세들이라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하지 않는 어른들 탓이라고 잘라 말한다.
“학교에서 배운 인사법으로 공손하게 목례하면 어른들이 같이 인사를 받아주기보다는 ‘어 그녀석 인사 잘하네’ 혹은 ‘미국에서 무슨 목례는’ 하면서 휙 가버리는 것이 더 문제예요. 그러다보면 아이들도 자신이 하는 예절이 무안해져 버려 다시는 하지 않으려고 하지요. 예법이라는 것 자체가 쌍방향 예절입니다.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활 속에서 함께 실천하는 것입니다.”
또 이 원장은 2세 자녀들에게 한국 예절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한국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져야만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예절을 가르치기 전에 한국에 대해서 먼저 가르칩니다. 한국이 지금 세계 경제 11위라든가, 한국의 눈부신 성장이나 한류 열풍 같은 것을 예를 들어 말입니다. 일단 앞으로 배우게 될 예절의 뿌리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인식해야 그 문화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겠어요?”
글 이주현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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