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의 다언어, 다문화 교육의 의미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다언어, 다문화 교육 (multilingual/multicultural education)에 대한 관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얼마 전 이곳 지역 TV 뉴스는 앞으로 샌프란시스코 교육청이 이중 언어 교육을 강조하겠다는 정책을 보도하며 교실에서 어린 학생들이 기초 중국어를 배우는 모습을 방영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바이링그얼(bilingual)의 문자적 의미는 단지 두 개의 언어(two languages)를 의미하며 상식적 관점에서 언어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전달 수단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하나의 언어가 내포하는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차원을 간과한다. 왜 소위 세계화 시대에 다언어와 다문화교육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 이에 숨겨진 논리는 무엇인가?
먼저,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민족과 운명을 같이 한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과 크게 맞물려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언어정책과 언어도 이에 맞추어 부침(浮沈)을 거듭해 왔다. 중국의 영향아래 우리는 오랫동안 한자 문화권에 속해왔으며 한자는 지식인들과 지배계층의 주요 표현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얼마간 일본의 야만적인 식민정책 아래서 우리의 언어는 압박을 받았으며 소멸의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현재는 세계 정치와 경제의 지배적 언어인 영어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일본의 무력적인 우리말 말살 정책과는 달리 영어(좀 더 정확한 표현은 미국어)의 경우는 간접적인 문화학습에 힘입어 자발적인 참여와 학습을 통해 언어적 동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인들의 경우, 1세대와 3세대는 언어, 문화적으로 전혀 이질적인 문화권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늘 주장하지만 미국의 한인 2, 3세대들의 영어문화권에 대한 급속한 흡수와 동화는 결국 미국의 주류문화와 우리 문화사이에서 이들에게 정체성의 혼란과 방황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는 문화의 공존이 아닌 일방적인 흡수와 통합에서 일어나는 부작용 이기도 하다.
비판적 시각에서 문화는 서로 다른 가치가 상충하는 이데올로기 투쟁의 장으로 이해 된다. 정치, 경제, 권력의 지배 논리에 따라 많은 문화와 언어들이 민족적 정체성과 함께 소멸의 길을 걸어 왔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이미 많은 문화와 언어들이 사라졌으며 적절한 언어, 문화 보호정책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 추세는 계속 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 현재, 보수적 시각을 대변하는 영어단일화(English Only)정책과 진보주의적인 시각을 반영하는 다언어(English Plus) 정책이 논쟁 중이다. 미국은, 유럽이나 아시아지역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외국어 교육에 대한 정책은 소극적이다. 세계가 영어를 배우는데 왜 미국인들이 굳이 힘들게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하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안주적인 언어관은 문화간의 접촉이 점점 빈번해 지는 세계화 시대에 세계적인 고립을 자초할 수 있고 이는 점점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전 세계적인 영향력의 행사와 함께 타 문화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세계화 시대에 언어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타 언어를 모조건 배척하는 편협한 국수주의적 이데올로기와 동시에 맹목적인 사대주의적 언어관 모두 지양되어야 할 일차원적 사고이다. 무엇보다 언어는 상대방을 향한 열린 대화와 이해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개인이나 국가간의 문제는 모두 상대에 대한 대화의 부족과 이에 따르는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타인의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들의 문화에 대한 존중과 애정의 표현이며 이로 인해 서로간의 반목과 대립의 폭을 줄일 수 있다.
현재 영어는 세계어로서의 확고한 위상과 함께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부동의 공식적인 제1언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다문화 국가인 미국의 언어정책은 인류의 귀중한 문화적 유산인 타 언어들에 대한 배려를 통해 그들의 언어적 가치를 살려나가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다문화와 타 언어에 대한 이해와 수용 정책은 장기적으로는 실리적 측면에서 또한 세계화의 중심에 서 있는 미국의 국익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문화를 타자들간의 갈등과 투쟁의 장으로 이해한다면 인류학자 레비-스토로스의 다음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한 문화는 다른 문화와의 교류가 적을수록 다른 문화에 의해 몰락할 확률이 낮아진다.”
세계화가 단지 온화한 가면을 쓴 또 다른 모습의 제국주의가 아니라면 세계 모든 지역의 고유 언어와 문화는 보존되고 존중되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는 일방적인 흡수와 통합의 논리가 아니 상호 존중과 공존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세계적인 언어학자 크리스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I believe in the fundamental value of multilingualism, as an amazing world resources which presents us with different perspectives and insights, and thus enables us to reach a more profound understanding of the nature of the human mind and spirit. In my ideal world, everyone would be at least bi-lingual” (D. Crystal) (나는 다언어주의의 근본적인 가치를 믿는다. 이는 서로 다른 관점과 통찰력을 부여하는 놀라운 세계적 자원으로 인간 정신과 영혼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케 해준다. 나의 이상적인 세계는 모든 사람이 최소한 이중언어 사용자가 되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의 우리의 경쟁력은 바로 우리 모국어인 한국어를 바탕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이중언어구사 능력에 달려있다. 영어를 잘하는 2, 3세대, 조기 유학생들은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우리말을 동등하게 잘 구사하는 이중언어사용자(bilingual)는 보기가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다음 세대에게 우리말과 문화에 애정을 갖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세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서양을 흉내내는 동양인에게 무슨 매력이 있냐고 말한 어느 미국인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이종덕 객원기자> jdlco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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