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신의 물방울’1권에 나오는‘샤토 몽페라’
방송하는 후배 언론인 김종호군이 와인 한병을 들고 왔다. “선배 ‘신의 물방울’ 1편에 나오는 샤토 몽페라 예요.” 할리웃에 위치한 ‘베버리지 & 모어’ 와인샵에서 18달러에 구입했다는 말과 함께. 샤토 몽페라는 요즘 한국서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일본 만화책 ‘신의 물방울’ 1편에 나오는 와인이다.
<와인을 주제로 그린‘신의 물방울’. 현재 9권까지 나와있다>
‘신의 물방울’은 무엇이든지 만화로 만들기 좋아하는 일본인 작가가 와인의 세계를 신격화해 만든 만화책이다. “너른 포도밭에 햇볕을 받으며 나신의 여인이 뒷모습만 보여주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느니, “록스타 퀸의 음악이 귓가를 때린다”, 또는 “밀레의 작품 만종에 나오는 두 부부의 기도하는 모습과 같다” 등등. 작가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하는 와인의 세계를 만화가가 상상의 나래를 펼쳐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그냥 만화 아니겠냐”며 단순하게 읽어 내려갔다가는 큰 코 다친다. 내용이 너무나 정확하고 진지하기 때문이다. 물론 해악적이고 무한 공간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만화의 재미 또한 톡톡히 볼 수 있다. 와인을 선망하는 초보자들에게는 필독서로 권할 만하다.
한국서는 이 만화가 대박이 터져 지난해 중순 출판된 6편은 무려 10만권이나 판매되는 화제의 작품으로 떠올랐다. 한 일간지에서는 얼마전 만화의 글을 쓰는 타다시 아기가 한국을 방문하자 1면까지 할애하며 인터뷰를 할 정도였다. 한국서 벌써 영화로 만들자며 판권 제안이 들어왔는데 송승헌과 배용준을 주인공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나….
만화만 대박 나는 게 아니다. 책속에 등장하는 와인들이 일본이나 한국에서 가격이 껑충 뛰어 오르고 있고 아예 출시되기가 바쁘게 품절이 된다는 것이다. 김군이 가져온 ‘샤토 몽페라’도 만화책을 타고 엄청 떴다고 하니 한국의 와인 붐이 얼마나 거센지 알 것도 같다.
이 만화는 2004년 11월 일본 만화 주간지 ‘모닝’에 연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연재를 모아 9권까지 책으로 냈다. 내용은 일본 최고의 와인 평론가 간자키 유타카가 죽는다부터 시작된다. 그는 유서를 남겼는데 술냄새 풍기는 아버지가 싫어 와인과 담을 쌓고 사는 외아들 간자키 시즈쿠와 죽기 전 입양한 와인 평론가 도미네 잇세가 와인을 주제로 전 재산을 건 내기를 하게 한다. “내가 ‘12사도’로 명명한 12종의 와인과 ‘신의 물방울’이라 칭한 하나의 와인을 찾아내는 자에게 모든 재산과 엄청난 규모의 와인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이다. 이제 겨우 2번째 사도를 찾아냈으니 앞으로 이 만화는 최소 70권 이상 출판될 것 같다. 구독료도 만만치 않으니 서로서로 빌려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멀로·카버네 소비뇽 섞어 제조
태닌이 받쳐주는 단단한 맛
디켄팅한 후 다시 시음
피어나는 중후한 향 일품
▲샤토 몽페라(Ch. Mont-Perat)
<‘신의 물방울’1권에 나온 샤토 몽페라(Chateau Mont-Perat) >
만화책에 나오는 샤토 몽페라는 2001년 빈티지인데 마켓에서는 2001년산을 찾기가 쉽지 않고 2003년과 2005년 빈티지가 나와 있다.
만화책은 ‘샤토 몽페라’를 캘리포니아산 고가품 ‘오푸스 원’(Opus One)보다 더 좋다고 평가했다. 최근 빈티지의 오푸스 원이 150달러에 육박하는 가격이니 20달러도 채 되지 않는 샤토 몽페라가 단연 불티나게 팔리게 될 것은 뻔한 일 아닌가.
만화는 이 와인을 록과 클래식을 넘나드는 ‘퀸’의 음악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영국 록밴드 ‘퀸’의 음악이라….
‘보헤미안 랩소디’ ‘위아 더 챔피언’ ‘라이프 오브 마이 라이프’ 하나같이 강렬한 가사와 장엄하기까지한 선율이 록인가 하면 클래식으로 돌변하는 전설적인 록밴드.
사정이야 어찌됐던 맛을 봐야 맛을 아는 법. 지난 주말 김군이 놓고 간 2005년 빈티지 ‘샤토 몽페라’를 땄다.
첫잔이 주는 이미지는 역시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영 빈티지가 주는 강성이다. 입안을 덮어오는 탄탄한 태닌의 강한 비트가 “아직 따기에는 이른가” 싶을 정도다. 보르도 가론 강변에서 자란 멀로에 카버네 쇼비뇽을 섞어 만든 와인이어서 부드러울 것이라는 상상은 그릇된 생각. 음악으로 치자면 강렬한 비트의 ‘록’과 같다고나 할까.
만화에 그려진 대로 디켄팅을 했다. 유리병에 와인을 따라 부어 공기 접촉을 시도하는 작업이다. 한시간 남짓 지나 티켄팅한 와인을 글래스에 따라 맛을 보았다.
강하게만 느껴지던 알콜 기운이 가라앉은 듯 향기가 가득히 올라온다. 태닌도 고개를 숙이며 알콜과 밸런스를 잡아갔다. 클래식 분위기의 우아한 화음이 넘치는 음악.
2003년 빈티지를 따기에는 너무 이른가? 와인 뒷면 라벨에는 10년 후인 2016년이 가장 먹기 좋은 피크를 이룰 것이라고 적혀 있다.
와인도 벗이 있어야 하는 법. 한 병을 모두 비우기에는 평소 술께나 한다는 나 역시 무리다. 반쯤 남은 와인병을 냉장고에 넣어 다음날 먹기로 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인가. 다음날 꺼내 입안에 문 와인은 마치 포도를 한아름 물고 있는 듯 입안을 가득 채운 검은 열매들 특유의 두툼함이 매력적이다. 향기가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검게 피어오르는 검은 과실의 향이 중후하게까지 느껴진다.
결코 비싸지 않은, 하지만 과일맛 풍부하고 부드러운 태닌의 멀로가 주품종을 이루는 그런 와인이다. 프랑스에서도 보르도 가론강 오른쪽 둑방 지역의 프리미어 코데드 보르도지역의 와이너리 생산품으로 권장 와인에도 올라 있다.
그런데 정말 오푸스 원을 능가하는 와인인가? 글쎄… 맛은 있지만 조금 과장된 면이 많은 것 같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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