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이라는 말은 헷갈린다. 이것은 ‘럭비’도 아니고, ‘축구’도 아니다. 미국서는 ‘미식 축구’를 말한다. 한국, 일본, 영국, 호주 등지에 미식 축구 팀이 있기는 하지만, ‘프로풋볼’은 세계에서 유독 미국만이 즐기는 독특한 운동경기다.
‘풋볼’은 다분히 미국적인 운동이다. ‘서부개척’처럼 강인한 의지로 밀고 나가는 땅 뺏어먹기 싸움이다. 거대한 체구의 힘과 힘의 대결이다. 미개척지에 돌진하여 터치다운을 얻은 선수는 큰 금광을 발견한 현대판 영웅이다. 러닝과 태클이 불꽃을 튀기는 남성적인 스포츠다. 와일드한 만큼 규칙과 벌칙도 엄하다. 서부의 사나이는 게리 쿠퍼나 존 웨인처럼 등뒤에서 절대 총을 쏘지 않는다. 멋있고 정정당당하다. 그래서인지 풋볼 스타디움은 개척주의와 파워가 농축된 고대 로마의 원형극장처럼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위장 같다. 솔저필드의 함성과 돌핀 스타디움의 폭우 속 열기는 꿈의 전당에서나 맛 볼 수 있는 일대 서사시(敍事詩)다.
미국인이 즐기는 4대 경기라면, 야구, 농구, 풋볼, 아이스 하키일 것이다. 그 중에 한국인들에게는 풋볼이 가장 생소한 경기다. 한국서 대중화되지 않은 게임이기 때문에 친숙치가 않다. 그러나, 간단한 지식과 요령만 있으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즉. “4차례 공격에서 10야드를 전진하면, 계속 공격 기회가 주어지며, 10야드를 못 가면 공격권을 넘겨준다. 득점은 터치다운의 경우 6점, 보너스 킥 1점, 모두7점이고, 필드골은 3점이다.” 우선 이 룰만 알면 관전이 가능하다.
지난 한 달은 시카고 베어스 팀과 열애(熱愛)를 했다. 솔저필드에서 열린 수퍼보울 진출을 위한 2차례 플레이어프 전은 베어스가 극적인 승리를 장식한 신나는 축제였다. 지난달 14일, 시애틀 시혹스와 디비전 쟁탈전은 연장전 접전 끝에 베어스가 49야드 필드골을 성공시켜, 27대 24로 역전승하는 드라마를 연출했고, 일주일 뒤 NFC 챔피언 십 경기에서는 남부지구 우승팀인 뉴올리언스 세인츠를 39대 14로 완파했다. 나는 이 2게임을 열심히 관전했고, 마음껏 소리치며 스트레스도 풀었다. 그 다음 2주 후에 거행될 수퍼보울을 손꼽아 기다리기까지 했다.
온통 난리였다. 사람은 밥만 먹고 못 산다는 것을 실감했다. 서커스가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스포츠가 바로 현대의 서커스가 아니겠는가? 시카고 베어스의 수퍼보울 진출은 21년만의 경사다.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한 빅 게임이다. “가자!, 베어스” 수퍼보울 열기는 기록적인 영하의 혹한을 뜨겁게 달구었다. 직장, 교회. 친구들과 화제가 만발했다. 수퍼보울 주간에 직장서 매일 수다 떨며 허비한 시간 낭비로 8억 1천만 달러의 경제손실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장인의 사기를 올리고 상호 우호감을 증진시킨 경제 외적 효과는 돈으로 계산 할 수 없는 값진 것이다. 85년 시즌의 영광을 위해 시카고의 명물들이 베어스 상징물로 둔갑했다. 필드뮤지움 공룡뼈에 베어스 철통 수비수 54번 얼레커 저지를 입혔고, 아트 인스티튜트 사자상에는 베어스 헬멧을 씌웠다. 또 시청 데일리 센터 앞 피카소 조각에는 베어스 모자를 얹었다. 이와 같은 상징물 설치는 시민들의 마음을 더 들뜨게 했다. 그리고 주점, 식당, 옷가게, 전자제품 매장 등은 베어스 특수를 누렸다. 수퍼보울이 무엇이기에, 경기장에 가고싶어 불룩한 배에 광고를 내고 티켓을 받은 임신부가 있었는가 하면, 경기를 보기 위해 출산 일을 앞당긴 여인도 있었다.
베어슨 2006년 시즌 13승 3패로 NFC 중부지구 1위로 올라왔으며, 막강한 뉴잉글랜드를 제압하고 AFC의 챔피언이 된 인디애나폴리스 콜트는 공격력이 강해 오래 전에 우승했어야 할 팀이었다. 그러나, 수퍼보울 까지 오기 전 단계인 플레이어프 전에서 베어스가 너무 잘 싸워, 실은 베어스의 승리를 점쳤다. 게임 시작하자마자 14초만에 베어스는 92야드 킥오프 리턴 터치다운을 성공시켜, 기선을 제압하고 그 여세로 대승을 예견했으나, 이것은 승리의 여신이 아닌, 화를 부른 불길한 조짐이 될 줄을 그 누가 짐작했겠는가?, 이후 베어스는 쿼터백 그로스만의 연이은 실수와 무기력한 공격력을 보여, 콜츠의 쿼터백 매닝의 맹활약과 날카로운 공격 앞에 최강의 수비 팀 베어스는 허무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스코어 29대 17.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고 했다. 수퍼보울의 꿈이 사라져 아쉽기는 했으나, 시카고는 향토애 하나로 굳게 뭉쳤다. 또 CBS가 경기에 앞서 지난해 MVP 하인스워드의 인간승리 이야기를 방영, 한인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했고, 세계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한달 동안 풋볼을 마음껏 즐겼다. 시카고의 ‘곰’은 아직 젊다. 이제 “꿈이여 다시 한번” 내년을 기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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