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한달에 40개씩 먹는데요
음식과 나 취중토크
신동엽 농심 아메리카 사장
“라면이 몸에 나쁘다구요? 누가 그럽디까. 라면에는 방부제도 안씁니다.” 본보 푸드 섹션에 신설되는 ‘음식과 나 - 취중토크’의 첫 손님으로 초대된 농심 아메리카의 신동엽 사장은 술자리가 무르익어 이야기가 라면과 건강으로 흐르자 목소리를 높이며 따지듯 반문했다. 한국 굴지의 라면회사 현지 법인 대표라는 직책 때문이려니 생각하고 그냥 빗겨 가려 했더니 신 사장은 “잘못된 생각을 고쳐야 한다”며 조목조목 따져가며 말꼬리를 놓지 않았다. 첫 초대 손님부터 강적을 만났다.
신 사장과의 만남은 한인타운 웨스턴가에 위치한 ‘코미디언 배연정의 소머리 국밥’집에서였다. 이곳을 택한 이유는 오징어·삼겹살을 가미한 불고기, 즉 ‘오삼불고기’가 명물이라는 신 사장의 강력 추천에 따른 것이다. 올해가 돼지해 아닌가. 당연히 첫 회에는 돼지고기가 등장해야 하고 돼지 중에서도 으뜸 부위인 삼겹살이 최고라는 생각에서였다.
술이 서너 순배 돌았을까. 역시 철저한 직업의식으로 무장한 신 사장과의 대화는 자연히 라면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신 사장의 말.
라면 수프 성분 표시에 ‘industrial ingredient’라는 영어를 쓰는데 한국서는 이를 ‘공업용’ 으로 번역해 문제를 만든다는 것이다. 신 사장은 “industrial이 어떻게 공업용으로 둔갑하느냐”며 “한국에서는 공업용이란 의미를 사람이 먹지 못하는 독극물로 생각하기 때문에 번역의 오류가 무지를 부추겼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신 사장은 “라면의 당면 과제라면 아마도 조미료 MSG일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MSG가 몸에 좋지 않다는 연구 자료는 한번도 발표된 적이 없고 단지 “나쁠 것이다”는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MSG는 다시마 축출물을 이온화 시켜 혀의 맛세포를 더 잘 자극할 수 있도록 한 것일 뿐이지 성분은 천연 식품이라는 설명이다.
농심은 한국 라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업체. 2년전 랜초쿠카몽가에 한국 라면 업계로는 최초(지금도 유일함)로 현지 생산 공장까지 건설해 주류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으니 자연 조미료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에 민감해 질 수밖에 없는 것. 농심은 이미 천연 다시마 등으로 만든 조미료를 개발했고 미국 현지 공장서도 올 6월부터는 MSG를 사용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신 사장의 설명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달에 라면을 몇 개나 먹느냐”고 물었다. 신 사장은 평균 40봉지 이상은 먹는다고 대답했다. 하루에 한 개 이상을 먹는 셈인데 말술을 마실 정도의 체력이니 라면이 건강에 해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는가.
‘오삼불고기’추천해놓고 라면예찬만… “직업은 못속여”
수제비 라면·샤브샤브 라면 등 직원 점심을 직접 요리도
#신 사장의 음식 사랑
신 사장은 식품회사 대표답게 요리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관심과 애착이 대단했다. 그 애착이 어느 정도냐 하면 샤브샤브용 고기를 사다가 직접 칼로 회를 뜰 정도라는 것이다. 동행한 홍보 담당 정종민씨의 표현을 쓰자면 ‘요리의 달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아부성(?) 발언이려니 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빈말이 아니었다.
“신 사장 집에는 주방 요리기구가 없는 것이 없습니다.” 정씨의 말이다. 신 사장 집에는 세상에 시판되는 주방용 칼들이 모두 모여 있다. 칼 관리도 철저하다. 1주일에 두 번 이상 직접 갈아두고 칼날이 무디다 싶으면 제조회사에 보내 ‘퍼렇게’ 날을 세운다. 신 사장의 칼은 제조회사 사장이 직접 갈아준다. 요리가의 기본인 ‘연장’ 관리가 철저하다는 말이다.
신 사장은 건강 관리도 철저하다. 비즈니스상 술좌석이 많은 신 사장은 말술로도 소문나 있다. 이날 신 사장의 소주잔 꺾는 속도는 경지의 수준이다. 잔 비우는 시간이 5분을 넘기지 않는다. 그러나 철칙이 있다. 자정을 넘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소식하는 것이다.
#신 사장의 수제비 라면
라면 회사에 입사하려고 그랬는지 신 사장은 한국군 시절부터 라면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부식이 툭하면 없어지던 옛날 배고픈 군대 병장시절, 주말이면 기다려지는 라면 특식이 예하 부대로 내려오면서 1인당 2개 짜리에서 1개도 되지 않게 줄어들자 신 병장은 꾀를 낸다.
항상 남아도는 보릿쌀을 주변 민가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밀가루를 산다.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고 라면을 넣어 일명 ‘수제비 라면’을 만들었다. 배도 불리고 라면 별식도 맞보고. 이 ‘수제비 라면’은 사병들의 인기를 독차지해 병영의 화젯거리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신 병장이 취사병은 아니었다. 박박 기는 보병이 개발한 기발한 음식이니 ‘음식의 달인’ 소리를 듣게 된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나.
신 사장은 점심 때면 직원들에게 샤브샤브등 다양한 메뉴로 직접 점심을 해주는데 ‘수제비 라면’이 최고의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또 하나 있다. 샤브샤브의 맨 마지막은 우동이나 죽으로 끝을 내는데 신 사장은 라면으로 끝을 낸다. 고기와 야채 우려낸 국물에 라면을 끓이면 그 맛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 간식’라면, 주류시장 개척 가속페달
●농심 아메리카
한국인 치고 라면 안 먹어 본 사람이 어디 있던가. 아침 해장으로 라면, 점심 때 바빠서 라면, 새참으로 라면, 밤에 간식으로 라면. 술을 마신 후 집에 들어가며 속이 허전하면 부엌 창고 뒤적여 라면 찾아 누가 깰세라 조심조심 끓여 먹는 그맛. 라면을 부수어 수프를 뿌려 먹어도 맛있는 라면은 짜장면과 함께 한국 국수류의 대명사로 불리는 ‘국식’이나 다름이 없다. 푸드섹션 신설 코너에 첫 손님으로 초대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농심의 제품은 신라면, 짜파게티, 너구리서부터 안성탕면, 감자면, 사발면 등등 다양하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주류시장 개척에 가속 패달을 밟고 있다. 라면 시장에 요즘 미국 회사들이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한인들은 많지 않다. 미국 맥코믹사, 심지어는 트레이드 조까지도 우리식 맛은 아니지만 라면을 생산, 판매할 정도다. 트레이드 조의 오개닉 ‘밍’ 라면은 물품이 달릴 정도로 야피족 미국인들의 기호품으로 자리를 잡고 있어 한국 라면 업계의 미주 시장 진출이 시급한 실정이다.
신 사장은 “약식 동원이란 말이 있습니다. 약과 식사는 근원이 같다는 말이지요. 한국 음식은 이런 철학이 바탕에 깔립니다. 농심의 미주 시장 진출은 음식 문화의 해외 수출이란 시대적 과제가 되지요. 한인들이 바로 음식 전도사입니다”라며 한인들의 애정어린 사랑을 부탁했다.
<글 김정섭·사진 홍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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