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하지 않아도 더 잘 맞을 수 있어
야외활동 등으로 살아있는 지식 배워
1970년대 초반만 해도 해외여행이 그렇게 흔하지 않아서 나들이를 할 때마다 기내에서나 공항 면세점에서 면세품을 사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큰 선물이 되었었던 때가 있었다.
아무나 좋아할 무난한 면세품은 대개 양담배나 양주였는데 그 때 조니워커 블랙이라도 사가지고 오면 누구든지 아주 반가워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똑같은 양주라도 꼭 조니워커 이어야지 혹 다른 표를 사가지고 오면 전혀 푸대접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행여나 그 상표가 외국에서는 더 품질이 좋고 더 고급 상표로 알려져 있다고 하더라도.
기숙사 학교도 마찬가지다. 미국에는 200여개가 넘는 기숙사 학교가 있어서 취향도 다향하고 좋은 학교들이 많이 있는데도 유독 그 중의 몇몇 학교에만 몰리는 것을 본다.
지리적으로도 매서추세츠주가 28개로 제일 많고 코네티컷, 캘리포니아와 버지니아가 20개씩, 그리고 펜실베니아와 뉴욕이 13군데로 총 114개의 기숙사 학교가 6개 주에 몰려 있기는 하지만 그 나머지 100여개는 30여개 주에 여기저기 골고루 산재해 있어서 각자의 특성을 살려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에 따라서는 잘 알려진 몇몇 학교보다도 더 맞는 학교가 많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가 미국에 와서 처음 발을 들여놓은 학교는 ‘Barlow’라고 하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학교였다. 뉴욕에서 6시간을 허드슨강을 끼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미국에도 이런 시골이 있나 할 정도로 한가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마음껏 큰 운동장들과 아담한 도서관도 있었다.
시설도 아주 좋았고 장서도 꽤 있어서 학교 다니는 2년 동안 한 번도 책이 없어서 못 읽은 적이 없을 정도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2년 동안에 전혀 읽히지 않은 책은 서재에서 빼고 필요한 책은 즉시에 주문을 해서 비치해 놓는 것이 학교의 방침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도서관은 책을 보관해 놓는 곳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책을 읽기에 편한 곳이어야 한다는 개념을 도입했다.
우선 전체적으로 햇빛이 많이 들게 해서 항상 밝고 아늑했으며 그 안에는 음악 감상실도 있었고 딱딱한 나무의자보다는 폭신한 소파의자가 더 많은 곳이었다.
그리고 학교 뒤쪽으로는 큰 숲이 있었다. 학교 앞으로는 시야가 확 트이게 넓은 들판이 있어서 축구장이 3개가 있었고 야구장, 그리고 제법 큰 연못과 그냥 무식하게 넓은 풀밭이 있었지만 그 반대편 안쪽으로는 나무가 빽빽하게 찬 큰 숲이 있었던 것이다.
그 숲 안에는 몇 개의 오솔길이 있었고 한 30분 걸어 들어가면 모든 오솔길이 만나는 지점에 학생들의 손에 의해 지어진 통나무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물 흐르는 계곡이 있었는데 우리 때에는 통나무집 앞에 통나무 다리를 짓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그래서 매주 이틀은 오후가 되면 산으로 가서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서 다리를 만들고 이어서 각 오솔길을 가리는 나무들을 톱으로 자르고 밑으로 굴러내려 이번에는 도끼와 쐐기로 쪼개서 겨울 땔감으로 준비했다.
이런 일이 힘든 학생들도 따로 할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어느 기숙사 앞 언덕에는 사과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가을이면 능금만한 사과가 너무나도 많이 열렸다.
이것을 짜서 진짜 사과소스와 사이다를 만드는 것도 일의 하나였다. 아니면 도서관에서 도서 정리하는 일, 그 넓은 잔디밭 잔디 깎는 일, 또 부엌에서 조리하는 것을 도울 수도 있었다.
학생들과 선생님들 합해서 약 150명이 매일 식사를 같이 했으니까 그 일도 만만치 않았지만 전혀 맛있는 가정집 음식 같았던 것이 주방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모두 이탈리아계로서 준비해 주는 음식들이 얼마나 내 입맛에 맞는지 어떤 때는 8인분을 먹은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학생 수는 비록 100명밖에 안되었지만 얼마나 예능에 소질들이 있었든지 매년 두번 하는 댄스파티와 학예회를 자체 인력으로 해결했는데 이 발표회에 필요한 무대장치와 의상을 준비하는 일도 학생들에게 맡겨진 일들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나머지 주 이틀은 축구나 야구 아니면 테니스를 각자 선호에 따라 했으며 겨울에 눈이 내리면 학교 안 기숙사 앞에 만들어 놓은 스키장에서 매일 스키를 마음껏 타는 등 꿈과 같은 하루하루였다.
또 금요일 혹은 토요일에는 선생님들 중 근처 산에 등산을 가거나 큰 스키장에 가는 분들이 주중에 종이를 걸어놓아서 이름을 올려놓으면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필요한 음식을 부엌에서 캠핑용으로 싸주어서 불편 없이 다녀올 수가 있었다.
그리고 늦은 겨울 눈이 녹기 전에 버몬트 소재 킬링턴에 온 학교가 일주일간 스키여행을 다녀왔으며 한 학기에 한 번씩 버스를 대절해서 뉴욕의 링컨센터에 가서 음악을 즐기기도 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금방 궁금해지는 것이 아니 그렇게 신나게 놀면서 공부는 어느 세월에 했나 하겠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그렇게 학원으로, 도서관으로만 다니면서 어떻게 공부를 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약체로서 매일 위궤양에 시달리면서 시험에만 도사가 되었었다면 미국에서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고 또 산 경험을 통해 살아있는 지식을 배웠다고나 할까. 어떻게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었는가는 다음 기회에 나누기로 한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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