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존재가 부인된다. 종교가 조롱을 당한다. 신의 이름으로 만행을 저지른 기독교의 과거사가 고발된다. 바야흐로 무신론 십자군운동의 시대다.
‘파시즘이 대두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공격이 점차 거세지면서 정치적 공세도 전개된다. 기독교 우파야 말로 파시스트들이라는 선동성의 공격이다.
세속주의의 대반격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결과 그러면 미국의 교회는 크게 위축됐나.
관계 전문가들에 따르면‘별로’라고 한다. 아니, 예기치 않았던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무신론자들의 대공세가 오히려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로 가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타니슬라프 윌구스. 콘라드 스타니슬라프 헤지모. 아누스즈 비넬란스키. 요제프 글렘프….
거의 매일 같이 보도되는 이름들이다. 어디에서. 폴란드에서다. 모두가 성직자들이다.
왜 자주 보도되나. 혹시 섹스 스캔들이라도…. 미국적 착상이다. 그게 아니다. 과거 공산당시절 비밀경찰에 협조한 혐의다. 그리고 교회가 그 어두운 과거를 덮어준 게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다.
콘라드 스타니슬라프 헤지모는 작고한 교황 바오로 2세를 가까이 모신 신부다. 그런 그가 80년대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을 당시 폴란드 공산당 비밀경찰에 밀고했다는 것이다.
스타니슬라프 윌구스 대주교는 요제프 글렘프 추기경을 뒤이을 폴란드 가톨릭교회의 동량이다, 그는 과거 공산당 시절 비밀경찰에 협력한 사실을 발표하고 바르샤바 교구장 자리에 취임한지 얼마 안 돼 바로 물러난 것이다.
아수느즈 비넬란스키는 폴란드 교회의 서열 두 번째의 고위 성직자다. 그 역시 공산당 스파이 혐의로 물러났다. 글렘프 추기경은 이런 사실들을 알고 은폐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고.
전 국민이 경악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야말로 그들의 자랑이었다. 구심체였다. 숱한 박해를 교회와 함께 견뎌냈던 것이다. ‘그 교회가 그런데…’하는 배신감에서다.
1978년 10월16일은 폴란드인들로서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카롤 보이티아 추기경이 제264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요한 바오로 2세다. 공산치하에서 신음하던 그들에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폴란드는 이후 한동안 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다.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연대 노조가 탄생했다. 이 ‘솔리다르노시치’ 운동이 전 동구권을 뒤흔들면서 결국 소련 공산제국의 붕괴를 가져왔다. 이 운동의 뒤에는 요한 바오로 2세와 교회가 있었던 것이다.
폴란드 가톨릭교회는 나치에서 공산주의에 이르는 20세기의 전체주의 압제를 견뎌온 자유와 인권의 요새였다. 그 충격파가 그러므로 보통 큰 게 아니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 신세대를 자처하는 알렉산드르 크바스니에프스키 대통령 정부가 주도하는 폴란드판 ‘과거사 정리’ 운동이 박차를 가하면서 공산당 비밀경찰에 협조한 혐의를 받는 성직자들의 이름이 속속 공개되면서다.
폴란드 가톨릭교회의 일대 위기다. 아니, 유럽 가톨릭, 더 나아가 바티칸의, 전체 캐톨리시즘의 위기다. 관련해 여기저기서 나오는 소리다.
“세계의 영적 지도(spiritual map)를 다시 그려야 할 것 같다. ‘영적 아이스 벨트’하면 통상 폴란드 서편에서 시작해 서구와 영국, 캐나다와 미국의 북부지역, 그리고 일본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돼 있었다. 폴란드도 머지않아 그 아이스 벨트에 포함될지 모른다.”
한 신학자의 지적이다. 말하자면 무신론자들의 대대적 공세보다도 ‘로만 칼라’로 상징되는 사제의 옷이 더렵혀졌을 때 교회를 위축시키는 효과는 훨씬 더 크다는 얘기다.
‘로만 칼라’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라고 했나. 그 위원회의 위원장이란 직함을 가진 사람이다. 송기인 신부다. 그 위원회가 2006년 하반기 조사라는 걸 했다고 한다. 그 발표 장소에 위원장인 그가 사제의 옷을 입고 나온 것이다.
발표내용은 그렇다. 유신시절 긴급조치 위반사건 판결에 참여한 판사들의 명단이다. 그걸 공개하면서 어디까지나 사법 과오에 대한 진실추적 차원에서 한 조사라고 했다. 그리고 정치적 의도는 없다는 걸 강조했다.
사제가 한 말이니 믿어야 하나. 그건 각자 판단할 문제 같다.
그 발표하는 모양새가 그런데 왠지 눈에 거슬린다. 자못 오연하다. 그리고 이른바 ‘유신판사’ 이름을 공개키로 결정한 위원들의 이름은 비공개로 하겠다니 하는 말이다.
사제가 감투를 썼다. 정치적 감투다. 완장까지 찼다. 붉은 색이 감도는 서슬 퍼런 이데올로기의 완장이다. 그리고는 정죄의 자리에 섰다. 아무리 보아도 잘못된, 일그러진 역사의 삽화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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