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지어진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박물관은 2000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20세기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도시들이 이처럼 위상을 빛내줄 뮤지엄 건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밀로의 비너스’. 그리스 밀로섬에서 도굴된 것이다.
죽 훑어본 후 끌린 작품은 정독하라
#미술감상의 터, 뮤지엄
오늘날 우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작품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미술관, 즉 뮤지엄(Museum)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각 도시마다 자기네를 대표하는 뮤지엄을 갖고 있어서 세계 각국에서 온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예술 애호가들은 일부러 뮤지엄을 찾아 순례하면서 일생에 한번 보기 힘든 대가들의 작품을 일별하곤 한다. 그러면 이렇게 고마운 뮤지엄은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 이번 주에는 뮤지엄의 기원과 역사, 임무와 문제점, 관람 요령에 관해 공부한다.
18세기말 유럽 왕정붕괴 잇따르며 뮤지엄 처음 등장
“뮤지엄은 도시의 위상” 80년대후 각국서 앞다퉈 투자
경매·소장가 헌납·도굴품 매입 등으로 문화재 수집
원위치 벗어난 예술품 진정한 가치있나 문제제기도
뮤지엄의 기원과 역사
동굴벽화로부터 시작할 때 미술의 역사는 2만년이 넘지만, 미술품을 한데 모아놓고 감상하도록 개방한 뮤지엄의 역사는 그다지 오래지 않다. 처음 미술품을 의식적으로 수집한 사람들은 왕이나 귀족, 교황과 교회였다. 이들은 그림을 자기 집이나 왕궁에 걸어놓고 다른 귀족들이 방문하면 자랑하기 위해 모아들였다. 이런 화랑을 ‘프린슬리 갤러리’(princely gallery)라고 한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뮤지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면서 생겨난 것이다. 사람들은 왕궁에 걸려있던 미술품들을 가져다 뮤지엄을 만들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경우 베르사이유 궁에 있던 예술품들이 옮겨진 것이다. 그 이후 전세계적으로 많은 뮤지엄들이 세워졌다.
하지만 19세기는 미술사에서 치욕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만큼 무법천지의 시기였다. 유럽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미를 지배하면서 수많은 예술품들을 마구 강탈했던 것이다. 나폴레옹이 이집트의 문화재를 쓸어간 것은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약탈의 수단이 무력이 아닌 돈의 힘으로 바뀌었을 뿐, 고대유물과 문화재를 교묘하게 발굴하고 도굴하여 박물관을 채우는 일은 계속됐다. 요즘 계속 뉴스가 되고 있는 게티 뮤지엄의 이태리 유물 반납건 역시 도굴된 물건을 사들인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보스턴과 클리블랜드의 박물관에 가보면 엄청나게 많은 한국 유물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물건들이 정상적인 경로로 해외 반출되지 않은 것은 자명하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서양 뮤지엄 발달사는 부끄럽게도 이런 일들을 토대로 발전되어왔다.
뮤지엄의 임무
가장 큰 임무는 미술품을 수집하는 일이다. 수집은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에서 공식경매를 통해 가장 많이 이루어지지만 소장가들의 헌납 역시 큰 역할을 한다.
두번째 중요한 임무는 미술품의 보관과 복원. 뮤지엄에 전시되는 물품은 전체 컬렉션의 20~30%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창고에 보관하면서 오래된 것이나 상태가 나쁜 작품들은 복원하고 필요할 때 팔기도 한다. 오래된 작품의 경우 복원은 너무나 중요하며 복원은 곧 돈이다.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만 보아도 복원 전과 후가 너무나 달라서 옛날에 본 사람들은 다시 가서 봐야할 정도라고 한다.
세 번째 임무는 연구와 교육이다. 많은 미술관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문화교육에 힘쓰고 있고 연구작업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네 번째는 전시, 뮤지엄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다. 뮤지엄은 소장한 작품들의 상설 전시도 하지만 일반관람객의 관심을 끌만한 작품들을 다른 곳에서 빌려다 대여전시를 하기도 한다. 인기화가의 특별대여전시는 블록버스터 효과를 낳아 뮤지엄 재정을 충당하기도 한다. 수년전 LACMA에서 있었던 반 고흐 전시회가 그런 것이다.
문제점
뮤지엄에는 순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뮤지엄이 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문제점들도 간과할 수 없다. 뮤지엄이 가진 첫번째 문제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정당하지 않은 수집방법이다. 지금 유럽의 미술관에 있는 유물은 모두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아시아에서 약탈해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문제는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최근 이라크 전쟁 때도 엄청난 약탈과 도굴이 자행됐다. 후에 미국은 이를 다 환수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두 번째는 ‘원 위치’(In Situ) 문제다. 모든 예술작품은 특정 시대에 특정 장소에서 어떤 상황에 맞게 만든 것이니 원래 창조한 그 자리에서 보아야 한다는 이론이다. 그러니까 성당을 건축할 때 그려넣은 그림이나 구조물을 뜯어다가 전혀 다른 곳으로 가져가 뮤지엄이라는 울타리 안에 전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세 번째는 경제적, 사회적 문제다. 뮤지엄의 재정은 상당부분 세금으로 충당되는데 세금을 내는 모든 시민에게 고른 혜택이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문화활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즐길 수 있지만 평생 미술관 근처에도 안 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므로 공평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네 번째는 가치창출 문제. 현대 컨템포러리 작품을 보면 이것이 과연 예술인가 의구심이 생길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작가는 변기를 전시하기도 하고 길바닥에 버려진 쓰레기를 작품이라 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용품을 뮤지엄에 전시하면 작품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뮤지엄이 휘두르는 힘을 이용해 진정한 가치 발굴보다는 인위적으로 작가를 픽업해 예술가로 만든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뮤지엄 건물
8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많은 도시들이 경쟁적으로 도시의 이름을 빛내줄 뮤지엄을 짓기 시작했다. 멋진 뮤지엄을 하나 지어놓으면 관광객이 몰리고 도시의 위상도 크게 올라가기 때문에 건물 자체가 굉장히 중요해진 것이다. 뮤지엄 전문 유명건축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구겐하임 처럼 ‘브랜드’ 뮤지엄을 다섯 개씩 짓는 일도 트렌드가 되고 있다.
미술관 감상의 준비
각 뮤지엄에는 엄청나게 많은 전시물이 있기 때문에 다 돌아보기란 매우 힘들다. 더구나 대부분의 경우 여행중 들르게 되므로 빡빡한 일정중 몇시간을 할애하는 일이 많다. 그럴 때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빠짐없이 보고 나오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한 뮤지엄에서 몇시간 소요할 것인지를 정한 다음 미술관의 지도를 놓고 어느 방을 갈 것인지, 어떤 길로 돌아다닐 것인지 계획을 짠다. 수십개의 작품들이 걸려있는 방에 들어가면 우선 짧은 시간동안 각 그림들을 죽 훑어본다. 그 다음 가장 끌린 작품으로 돌아가서 좀더 자세히 감상한다. 어떤 사람은 뮤지엄에 들어가면 ‘이곳에서 내가 훔쳐갈 것 3개’를 마음으로 찍은 다음 그 작품들을 집중 감상한다는 농담도 한다.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는 몇분 동안 혹은 아예 앉아서 오랫동안 정독하듯 감상한다. 감상이란 대화이기도 하다. 그림을 보면서 그림이 나에게 걸어오는 말, 던지는 질문에 귀를 기울이고, 나는 그에 뭐라 대답할 것인지 생각하며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그런 다음에도 시간이 있으면 전체를 한번 더 돌아보는 것이 좋다. 그러니까 훑어보고, 정독하고, 마지막에 전체 인사를 할 수 있으면 가장 효율적으로 감상한 것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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