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에서 발원해 멕시코 만으로 흘러드는 리오그란데 강은 총 연장 1,800마일로 미국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다. 길이로는 세 번째지만 여기 얽힌 애환으로는 아마도 첫 번째일지 모른다.
19세기 중엽 미국에서 노예제가 한창일 때 리오그란데는 흑인들에게 ‘자유의 강’이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인 이 강을 건너기만 하면 노예제가 없는 멕시코에서 자유로운 인생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들어서는 자유를 찾는 사람들의 이동 방향이 바뀌었다. 오랜 내전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가난에 시달린 멕시코 인들이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이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이처럼 강을 건너온 밀입국자를 비하해 ‘젖은 등’(wetback)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특히 제2차 대전 이후 수백만 명의 멕시칸들이 농장 노동을 하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젖은 등의 10년’이라고 불리는 1944~1954년 사이 밀입국자 수는 전에 비해 6,000%나 급증했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연방 이민국은 지방 경찰과 합동으로 ‘젖은 등 작전’(Operation Wetback)을 펼쳐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갔다.
당국과 자경단은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오는 밀입국자를 상대로 발포,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가 하면 멕시칸 이민자 커뮤니티를 닥치는 대로 뒤져 밀입국자는 물론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이 있는 이들의 자녀까지 강제 추방시켰다. 당국은 이 작전을 통해 100만 명의 불법 체류자를 적발해 냈으나 이 작전의 비인도성에 대한 항의가 거세지자 결국 이를 중단하고 말았다.
그 후 5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젖은 등’에 대한 일부 미국인들의 편견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2005년 2월 17일 국경 수비대원 이그나시오 라모스와 호세 콤페안은 텍사스 엘 파소에서 자신을 보고 리오그란데를 향해 도망치는 오스발도 알드레테-데빌라를 향해 14발의 총격을 가했다. 그는 엉덩이에 총알을 맞았으나 결국 강을 건너 도주하는데 성공했다.나중에 이자는 불법 체류자이며 마약 딜러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사건 당시 국경 수비대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도주하는 밀입국자의 등에다 총질을 하는 것이 수비대 규칙을 어긴 것임은 물론이다. 이들은 후에 사건 현장에 돌아와 탄피를 수거하고 허위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들의 은폐 기도가 드러난 것은 정직한 동료 대원이 이를 보고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재판을 받고 각각 11년과 12년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이 지금 연방 의회와 언론에서 새로운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탐 탄크레도와 던컨 헌터와 같은 공화당 내 반 이민 의원들은 이들을 미국의 영웅으로 떠받들며 부시 대통령으로 하여금 사면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남가주 출신 데이나 로러바커 의원 같은 이는 부시가 이들을 감옥에 보낼 경우 이는 “미국의 적 편에 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밀입국자를 향한 총격 사건은 이것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다. 이 달 중순 애리조나의 멕시코 국경 근처에서는 멕시칸 밀입국자 한 명이 국경 수비대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수비대 측은 대원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 발포한 것이며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유감을 표시했다.
갈수록 과격해지는 단속에도 불구하고 밀입국 행렬이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은 미국은 농장과 건설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멕시코의 노동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멕시코 인들은 자기 나라보다 몇 십 배나 더 많은 돈을 주는 이일자리를 원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멕시칸 모두에게 득이 되는 노동력의 이동을 총알의 힘으로 막으려는 것은 어리석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번 국정 연설에서 이런 현실을 직시하는 이민법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바 있다. 가장 노골적인 공화당 내 반 이민 의원 상당수가 낙선하고 민주당이 다수를 장악한 이번 의회에서는 합리적인 이민 개혁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하루 빨리 현실성 있는 이민법이 마련돼 밀입국자를 향해 총질하는 불행한 사태가 사라지길 빈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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