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할까 아니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나 할까. 부시 대통령의 금년도 연두교서 연설을 다른 모임 시간과의 상충 때문에 끝부분만 보고 민주당 쪽 답변을 들으면서, 그리고 그 후 신문기사들을 읽으면서 느낀 감회다. 2000년 대선 때 플로리다 주 투표계수를 두고 앨 고어와 시소 경쟁도중 연방 대법원이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대통령 자리에 간신히 올랐지만 2001년 9.11 사변으로 부시는 한때 84%의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사태를 확 바꾸어 놓았다. 작년 11월의 중간선거 결과 민주당이 상하 양원 다수당이 되는 상황이 되어 부시의 절름발이 오리(lame duck) 신세가 가속화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비용도 포함되었지만 현재까지 1조가 넘는 전쟁비용, 3천이 넘어선 전사자 수, 2만여 명의 부상자들, 그리고 줄잡아도 10만이 훨씬 넘는 이라크인 전사자들이라는 참담한 수치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이라크이 진구렁은 부시의 유산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 판국에 그에 대한 지지도가 33%라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공화당 상원 의석이 49석이지만 부통령이 상원의장이니까 체니가 왼쪽에 앉았고, 오른쪽에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부터 부시를 정신적으로 압도했을 법하다. 펠로시는 부시를 “무능”하고 “위험한” 사람이라고 불러온 사람이 아니었던가. 체니와 펠로시는 재미있는 대조를 이뤘다. “우리는 먼저 연방예산을 균형 잡아야 됩니다”라는 구절을 부시가 말하자 펠로시는 곧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했는가 하면 체니는 천천히 일어났다. 부시가 민주당에게 “승리의 목표에 있어서” 자기와 협력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체니는 활짝 웃으면서 기립박수를 한 반면 펠로시는 앉아서 오른쪽 귀를 만지작거림으로 어색함을 감추려 했다. 부시가 “2017년까지 85억 갤런의 개솔린을 절약”하자고 요구했을 때 펠로시는 일어나서 박수를 쳤지만 (할리버튼 회사의 CEO였던 경력과 걸맞게) 체니는 부동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2만1,000여 명의 군인들을 이라크에 더 보내자는 부시의 전략에 대한 찬성이 민주당이 다수당인 의회에서 나올 리 만무하다. 척 헤글 네브라스카 상원의원 등 공화당 의원들조차 이라크 전쟁을 월남전쟁 이래 미국 최악의 실패정책으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군인들 증파는 이루어지겠지만 전사자들이 늘어가게 됨에 따라 부시는 최악의 대통령으로 손꼽힐 가능성을 안고 있다.
부시의 연두교서에 대한 민주당의 답변 연설은 버지니아의 민주당 새 상원의원 ‘집 웹’이 맡았다. 물론 스튜디오에서 하는 연설이라 청중이 없었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정곡을 지르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인상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제호조에도 불구하고 부익부·빈익빈의 현상을 설명하면서 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본인이 대학을 졸업했을 때는 평균 회사 최고책임자들이 보통 노동자들보다 20배를 벌었습니다. 오늘날은 그것이 거의 400배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평균 노동자는 그의 보스가 하루 동안 버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1년 이상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책임론에 있어서도 웹은 말을 아끼지 않았다. “대통령은 무모하게 우리들을 전쟁으로 끌고 갔습니다.” 웹은 부시가 첫 걸프전 때 자기 아버지 안전보좌관, 그리고 자기 자신의 육군참모총장 및 중동지역을 담당했던 두 명의 전직 사령관들의 경고를 무시했다고 지적하면서 “우리나라는 이제 그때 예측할 수 있었으며 예측되었던 혼란 상태에 인질로 잡히게 되었습니다”라고 단언한다.
이라크 전쟁 때문에 2008년 대선은 민주당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민주당 인사들의 성급한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등 7, 8명이 이미 출사표를 던진 것도 그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클린턴 상원의원이 민주당 호보로 되는 것은 공화당도 내심 바라고 있는 것이라는 견해로서도 알 수 있듯이 가변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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