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 이민 와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던 이민 1세들에게 있어 안정과 사회적 지위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삶의 항목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이민 1세들은 자식들이 안정되고 존경받는 직업을 가지길 누구보다 더 간절히 바란다. 그런 직업들 가운데 가장 선호되는 것들은 의사, 변호사, 약사와 같은 이른바 Professional School을 나와야 할 수 있는 직업들이다.
거의 모든 Professional School은 대학을 마치고 또 시험을 쳐야 진학할 수 있다. 그래서 대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준비를 하느라 고생했다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공부를 등한시하여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4년 후 졸업 때에는 반드시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되어 있다. Professional School에 갈 수 있기는커녕 아무 데에 취직하기도 힘들어진다.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인데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재미있게 놀고 있는 사이에 다른 친구들은 꾹 참으며 공부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몸을 낮추고 주변을 둘러보길 권한다. 과거와 달리 도서관엔 학생들이 넘쳐나고 강의실 앞엔 교수가 말하는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도록 녹음기들이 즐비하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대학에 가면 고생이 끝이 나고 낭만만 있었던 시대는 사라진지 벌써 오래다. 고등학교 3년 동안은 대학을 준비하지만 대학 4년 동안은 인생 60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가 바로 오늘인 것이다.
대학진학 때와 마찬가지로 Professional School에의 진학에도 학생과 부모가 같이 준비해야 한다. Professional School에 진학을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은 일찍부터 준비하는 것이다. Professional School을 준비하는 것은 대학 진학 준비와는 사뭇 다르다. 학생들의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찍 준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크게 도움이 된다.
많은 한인 부모들이 아이들을 의과대학에 보내고자 하지만 미국의 의과 대학 시스템과 진학준비에 관한 정보가 없어 일찍부터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분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몇 번의 칼럼을 통해 미국 의대진학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미국의 의과대학은 한국이나 독일의 시스템과 다르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미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해야만 의대를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M.D.(Doctor of Medicine)이라고 불리는 의사가 되기 위해선 한국에선 최소 6년이 걸리지만 미국에서는 일반 대학 4년과 의대 4년이 합계 최소 8년은 걸려야만 한다. 의대를 지원하기 전에 일반적으로 쌓는 연구 경력 1~2년을 합하면 10년 정도가 걸린다. 또한 의대를 나오고 개업을 하기 위해선 보통 4년 정도인 레지던트 기간을 마쳐야 하는데 이를 합치면 총 12~14년 정도가 소요된다. 의대를 가려는 학생은 대학에서 생물, 화학 물리학과 같은 이공계 학문을 전공한다. 통계에 따르면 2001년 미국 의대 지망생의 45%가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16%가 화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반드시 과학을 공부한 학생들만 의대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해 의대 지망자들 중에 12%가 인문사회(Non-Science)를 전공했다. 사실 의과대학 측에서도 학생이 생물학을 전공했다고 더 가산점을 주거나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불리한 점수를 주지는 않는다. 지망생들이 기본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만을 좋은 성적으로 마치면 된다. 실제로 의대생들 중에는 줄리아드 음악학교를 졸업한 학생도 있었고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한 의대생도 봤다. 하지만 이미 다른 전공을 선택한 후 나중에 마음을 바꾸어 의대를 지원하는 경우가 아니고 처음부터 의대에 뜻이 있으면 생물이나 화학과 같은 과학 전공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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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권 (USC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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