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 편집위원
흥겨운 파티…‘별’들로 빛난 밤
지난해 골든 글로브상을 주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에 가입된 뒤 처음 맞는 제64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했다. 지난 15일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하오 2시30분부터 샴페인(모에트) 칵테일로 시작된 시상식장에 들어가기 전 경비원들로부터 자동차의 안팎과 밑까지 샅샅이 검사를 받았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한 마디로 말해 먹고 마시고 떠드는 잔치라고 하겠다. 오스카 쇼와 달리 식중에도 참석자들이 먹고 마시는가 하면 아무 때나 자리에서 일어나 식장 옆의 오픈 바와 패티오에 가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등 어떻게 보면 무질서한 파티 같지만 그런 것이 오히려 더 친밀감이 가고 편안했다. 이 날도 잭 니콜슨이 자리를 떠 여기 앉았다 저기 앉았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시상자 중 하나인 찰리 쉰은 식이 시작되기 전 턱시도 상의를 벗고 셔츠바람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골든 글로브는 영화와 TV 작품에 상을 주는데다가 할리웃의 모든 배우들에게 초청장을 발송, 식장은 그야말로 별들로 가득 찼다. 배우와 감독과 제작자들이 서로 끌어안고 반갑다고 인사하며 떠들어대는 소리로 식장 안은 왁자지껄했다. 특히 MBC-TV로 전 세계 150여개 국에 중계되는 시상식의 광고시간 때는 식장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혼잡과 소음으로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저만치서 선글라스를 낀 잭 니콜슨과 윌 스미스가 웃으며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골든 글로브의 또 다른 특징은 작품상과 남녀주연상에서 각기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 두 부문으로 나눠 시상하는 것.
메릴 스트립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여우주연상(뮤지컬/코미디)을 받고 울먹이며 수상 소감을 말한 뒤 광고시간에 화장실엘 갔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내 앞과 뒤에서 폭스영화사와 TV 등을 소유한 루퍼트 머독 뉴스 코프 회장과 윌리엄 브래튼 LAPD 국장이 서있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먼저 브래튼에게 가서 “치프, 만나서 반갑습니다”고 인사를 했다. 이어 머독과 악수를 나누고 “재미 있어요”라고 물으니 “응 그래. 그런데 사실은 아내가 좋아해서 왔어”라고 답한다. 그런데 이 날 주연상(드라마) 후보에 오른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가 옆을 지나갔다. 내가 그의 팔을 잡고 “하이” 라고 인사를 하니 디 카프리오도 “하이, 버디”라며 웃었다. 날렵한 몸매의 미남이다. 화장실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적 장소라는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스타들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려면 화장실 옆에 서 있으면 되는데 진짜로 그런 참석자들도 있다.
<탐 행크스가 워렌 베이티에게 세실 B. 드밀상을 주기 전 소개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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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불편하고 앉아 있기가 지루하면 신발 벗고 일어서서 벽에 몸을 기댄 채 구경해도 되는데 공기 마시려고 오픈 바에서 칵테일 한 잔 시켜 들고 패티오에 나가니 키퍼 서덜랜드와 에바 롱고리아가 끽연을 하고 있다.
이날 많은 상을 영국인들이 휩쓸었는데 ‘여왕’으로 주연상(드라마)을 받은 헬렌 미렌은 TV 영화 ‘엘리자베스 I’로도 상을 받아 2관왕이 됐다. ‘왕’은 각본상(피터 모간)도 받았다. 두번째로 시상된 주제가상은 만화영화 ‘해피 피트’의 주제가인 ‘마음의 노래’가 받았는데 노래를 부른 프린스가 교통 혼잡에 갇혀 지각 참석하는 바람에 무대서 노래를 못 불렀다.
일종의 ‘생애업적상인 ‘세실 B. 드밀’상은 워렌 베이티(69)에게 주어졌다. 그런데 베이티에게 상을 주는 탐 행크스가 소개말을 통해 계속해 “베이티는 ‘볼스’(Balls-바람둥이였던 베이티를 놀리는 말)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는 바람에 식장을 폭소로 채웠다. 이날 시상식의 깜짝 쇼는 맨 마지막에 주는 작품상(드라마) 발표 때 일어났다. 영화배우 출신의 아놀드 슈워제네거 가주지사가 스키사고로 다친 다리 때문에 양손에 목발을 짚고 무대에 나타난 것. 그는 ‘바벨’에게 작품상을 주고 나서 “내년에도 시상식 볼 것을 잊지 말라”면서 ‘터미네이터’에서의 자기 대사를 변용해 “우리는 돌아올 것”(We’ll be Back)이라고 능청을 떨었다.
시상식에 이어 호텔 내와 주변 주차장 및 건물에서 총 7개의 파티가 열렸다.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인스타일과 워너 브라더스’ 파티에 제일 먼저 참석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켄 와타나베, 디 카프리오, 캐메론 디애즈, 드루 배리모어, 아론 에카르트 등이 잇따라 입장했다. 스타들과 팬들이 모두 티 애니멀이 되어 함께 어울려 마시고 얘기하고 춤추면서 흥청망청 놀아댔다.
파티장을 어슬렁거리다가 이날 TV 시리즈 ‘클로저’로 여우주연상을 탄 키라 세지윅과 그녀의 남편이자 배우인 케빈 베이콘과 인사를 나눴다. 내가 세지윅에게 나를 HFPA회원이라고 소개하자 그녀는 내 손을 손을 꼭 잡고 “상을 줘 너무 감사하다”고 몇 차례 고마움을 표했다. 베이콘도 “댕큐 소 머치”라고. 그런데 갑자기 거구의 경비원들이 여러명 식장 안으로 들어와 두명의 젊은 여자들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파티 크래셔들이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파티 참석자보다 경비원들이 더 많았다.
이 곳을 나와 호텔 옆 구 로빈슨 메이 건물에서 열리는 패라마운트 파티엘 갔다. 호텔 복도에서 앤젤리나 졸리의 아버지로 배우인 존 보이트(미드나잇 카우보이)와 서로 “하이”를 나눴다. 밤이 깊은데도 호텔 로비에는 스타들을 보려는 팬들이 자리를 뜰 줄 몰랐다. 파티장에 들어서니 베이티와 그의 아내로 배우인 아넷 베닝이 내 옆을 지나간다. 내가 “하이, 축하합니다”고 말하니 베이티도 “하이”라고 답한다. 또 이 날 ‘보래트’로 남우주연상(뮤지컬/코미디)을 탄 사샤 배론 코엔도 보인다. 패라마운트에 이어 HBO와 유니버설 파티장에 들렀는데 너무 피곤해 더 이상 다른 파티엘 갈 생각이 안 났다. 시간도 밤 11시반이 돼 호텔을 나섰다. LA 하늘에 또 별 대신 배우 별들로 빛난 밤이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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