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부촌 생일파티에서 본 미국문화
한국 성가치관과 근본적으로 달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궤도에 오르고 해외로부터의 차관도입이 활발했던 60년대 중반에 외국과의 교류가 급증하면서 한국에 왕래가 잦아진 사람들 중 하나가 국제공인 회계사였다. 당시 미국에 유학중이었던 형의 친구의 친척 중 당시 미국 굴지의 회계용역사 Arthur Young & Company로부터 한국에 책임자로 파견된 사람이 있어서 자주 우리 집에 들르곤 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늦게나 미국의 유학길에 올랐던 형이 미국에서 언어문제로 힘들어 하고 있던 것을 알았던 그가 우리에게 제안했던 것이 필자의 조기 유학이였다. 이것이 실현되어서 그들이 파견근무를 마치고 본국으로 귀국할 때 필자도 그들을 동행하게 되었고 사립학교로 전학할 때까지 오하이오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몇달간 신세를 진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나의 미국생활의 첫 시작이었다.
오하이오주의 신시내티라는 ‘음악의 도시’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이국적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5층의 반도호텔이 최고의 고층건물이었고 고속도로라고는 서울에서 김포공항까지 가는 길 딱 하나였었을 때라 이런 한국에서 살다가 졸지에 시카고 오헤어공항을 거쳐 신시내티의 교외에 위치한 한 미국 부촌에서 떨어졌던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신기하고 생소한 일 뿐이었다. Gated Community 단지 안에는 큰 클럽 규모의 전용 테니스장들과 큰 수영장이 있었고 집에는 화장실만 6개요, 100~200명은 쉽게 수용할 만한 큰 방도 있었다. 또 그 집 부인이 음악을 좋아해서 Steinway 그랜드 피아노만 두개가 있었고, 재봉일을 하는 방이 집에 따로 있는 것은 물론, 부인이 요리를 좋아해서 뒷마당에는 화초밭과 각종 야채와 향신료를 재배하는 소규모의 밭이 있었고, 그 옆에는 미식축구도 족히 할 수 있는 큰 잔디밭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집 뒤쪽으로는 가정부가 쓰는 방으로 통하는 가정부 전용의 입구와 계단이 따로 있는 아주 큰 대 저택이었다.
그러나 생소했던 것은 집의 크기 뿐 만이 아니었다. 아주 기절할 뻔했던 일은 근처에 사는 중학생 아이의 생일파티에 초대받고 갔을 때였다. 그 집 주위에 있는 집들도 다 비슷한 규모의 큰 저택들로 주로 백인들이 살고 있었고 그 또래의 아이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분명히 생일파티라고 간 곳에 음식은 손으로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이 방 한 쪽에 차려 있었을 뿐이었고 음료와 스낵들은 또 별도의 상에 간단히 차려져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다 모이자 애들은 음식은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곧 자기네들끼리 눈짓을 하더니 배경 음악을 낮게 깔고 방의 조명을 갑자기 어둡게 낮추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하나씩 짝이 되어 가지고 여기저기서 서로 부둥켜 안고 찐한 행동들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철두철미한 교육환경 속에서 지냈던 필자는 눈을 둘 바를 모르고 당황하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큰 문이 열리더니 불이 활짝 켜지고 그 집의 엄마라고 생각되는 여자가 벌컥 들어 왔다. 아니 이제는 얘들이 요절이 나겠구나 했는데 아니 이건 또 웬말! “앗, 실례! 미안!” 하고 가지고 들어온 음료를 서둘러 테이블 위에 놓고는 나 몰라라 하듯이 “휙” 나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켜놓았던 불까지 다시 본래대로 돌려 놓으면서!!!
내가 묵고 있던 그 집식구들은 아주 진보적이기는 해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매주 온 식구가 교회에 가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도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그 집은 플레이보이 잡지를 정기 구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의식 중 그 식구들 앞에서 그 잡지를 펼쳐 보다가 그 안에 있는 적나라한 사진들에 눈이 휘둥그래진 나에게 설명을 해주는 말이 성을 타부화시키고 싶지도 않고 어린 나이에 호기심으로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도 원치 않아서 아빠가 아들을 위해서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도록 구독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그 때는 물론 지금도 아직 완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하여튼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사람들과 한국에서 자란 우리들과는 남녀관이 아주 다를 수있다는 것이다. 교포 자녀들도 미국화가 많이 되서 남녀간에 우리 1세 같이 그렇게 수줍어하지 않는다고는 해도 그것은 오직 겉 모양뿐이고 서양사람들이 가진 성에 대한 자세와 남녀간의 의식구조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건널 수 없는 만큼의 깊은 골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다른 유색인종들도 또 그들 나름대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각자의 기준과 풍속이 다른 것이다. 이런 속에서 우리 자녀들은 어떻게 처신해 나가야 할까?
아주 어려운 문제였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대학교 갈 때까지 일체의 남녀교제를 금한 것이다. 씨를 뿌리면 열매가 맺히듯이 남녀가 가까이 하면 열매가 맺히게 되는데 그것은 존귀한 생명이요 그 책임문제가 중고등학생들로서는 너무나 힘에 겹다는 것이 이유였다. 너무나 구시대적인 생각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 나이에는 인생의 목적이 달라질 수 있고 곧 다가오는 대학진학으로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는데 그 때에 그 책임은 어떻게 하고 또 그 헤어질 때에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말이다!
그 대신 매년 있는 학교 행사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권했고, 친구 아이들을 집에 데리고 오면 어떤 아이라도 환영하고 잘 대해 주었다. 그런 기회를 통해서 어떤 아이들과 사귀고 있나를 알게 되었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스스럼없이 부모들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했다. 우리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비추이는 가도 간접적으로도 알게 되었다. 또 책임질 수 없는 성적 플레이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무절제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절대로 배제할 것을 부탁하면서 성적 매력보다는 장래의 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질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다음 주는 이런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애로점들을 집중적으로 나누기로 한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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