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전에 ‘적은 상처는 보다 큰 자극에 마비 혹은 소멸된다’는 원리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의 실패에 이 원리를 적용해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또한 언론과 정권 사이에 ‘비판적 안전거리’를 유지 못하고 매사 충돌하는 것을 엉뚱한 쪽으로 전이시켜 혼란을 야기해 보려는 의도는 아닌지 그 진의를 알 수 없다. 개헌의 필요성을 요약해 보면 국력 소모와 분열을 최소화시킨다는 주장인데 전용기로 여행 다니는 것을 줄이고 지연, 학연, 혈연 등의 연고주의로 코드 인사를 하지 않으면 될 것이 아닌가 반문해 본다.
한 마디로 ‘대통령 4년 연임제’는 8년 임기제로 연장하자는 개헌이다. 5년도 지루한데 8년이 무슨 소리인가. 과거 한국 정치사가 증명하듯 집권 중 중간선거는 관권이 총동원되기 때문에 하나마나 선거가 된다. 그리고 관권선거로 쉽게 연임이 되면 재미를 붙여 3선 금지조항을 철폐해 장기집권을 해온 것이 우리나라의 헌정사이다.
1980년 10월27일 전문 개정에 의해 대한민국 헌법 제4장 정부, 제1절 대통령, 제70조 대통령의 임기 관련 조항은 단임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과거 공화국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공화국 이승만 대통령은 4년 중임제로 되어 있던 것을 3선 금지조항을 철폐하고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1954년 11월27일 소위 ‘4사5입 파동’을 거쳐 개헌을 단행한 후 1956년 5월 15일 선거로 재선되었다. 웃지 못할 것은 개헌에 필요한 인원에서 1표가 부족해 고민하고 있던 중 경북대학 어느 수학교수가 경무대(현 청와대)에 전화를 걸어 “사람은 0.4이하도 반올림 된다”는 조언을 함으로써 억지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1960년 3월15일 전례 없는 조직적인 관권개입 선거로 이승만 대통령은 4선 대통령이 되었으나 4.19학생의거로 제1공화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제2공화국은 의원 내각제를 실시하여 대통령에 윤보선, 국무총리에 장면 박사가 되었으나 권력분담의 갈등으로 정국이 혼미해지자 5.16쿠데타가 일어나 불과 10개월의 단명 정권으로 끝났다.
제3공화국은 박정희 장군이 대통령을 제5대부터 제9대까지 하면서 1969년 8월 장기집권을 위해 제6차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결국 유신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다. 제4공화국은 1972년 11월21일 소위 ‘유신개헌안’을 국민투표로 확정하여 제8대 대통령으로 박정희가 당선되었으나 1979년 10월26일 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함으로써 유신체제는 막을 내렸다. 이와 같은 정치적 위기 가운데 제5공화국이 들어서기 전까지 공백기간에 제10대 대통령 최규하와 제11대 대통령 전두환이 통일주체 국민회의를 통해 선출되었다.
제5공화국은 1980년 10월22일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제와 장기집권을 막기 위한 7년 단임제를 국민투표 통과시켜 제12대 대통령으로 전두환 장군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출범 당시부터 그 정통성을 의심받게 되어 저항에 직면했으며 결국 국민적 압력으로 1987년 10월 국민투표에 의해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제9차 헌법개정안을 확정했다. 이 새로운 직선제로 1987년 12월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후 제14대 김영삼, 제15대 김대중,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등이 임기 5년으로 임기를 마쳤거나 임기 중에 있다.
한심한 것은 한국의 헌법 개정은 한결같이 집권자의 권력 연장과 정파적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미국은 건국 이래 200여년 동안 헌법 개정을 15번했으며 이는 모두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비교해 볼 때 한국의 경우는 단 한 번도 국민을 위한 개헌은 없었다는 것이 정치학자들의 주장이다.
아무튼 국민들이 현역 대통령의 공과를 심판하여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정상적인 정치과정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동시에 폭력적이고 급격한 정치 변혁에 따른 차기 대통령과 정부가 출현하지 않기를 바란다.
<박종식> 예비역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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