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책이라는데 새로운 게 별로 안 보인다. 어제 저녁 부시 대통령이 대 국민 연설을 통해 발표한 새 이라크 정책은 ‘새로운 전진’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도 거의 한두 번쯤은 듣고 본 듯한 내용들이다. 전문가뿐이 아니라 이라크전 뉴스를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이면 대부분 느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드라마틱한 요소인 2만여명 추가 파병 미군의 역할이 그렇다. 증파 병력의 대부분은 무장반군 폭력이 극심한 수도 바그다드 안정을 위해 투입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지난해 여름 실패로 끝난 ‘함께 전진 작전’과 너무도 비슷하다. 당시 미국은 1만명 병력을 증원하여 이라크군과 ‘함께’를 전제로 반군 소탕에 나섰었다. 그러나 8월에 잠시 수그러들었던 반군의 폭력은 9월부터 다시 기승을 부리며 계속 악화되어 왔다. 이라크정부가 약속했던 규모의 병력을 보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라크 경찰과 군이 오히려 미군 기습 정보를 흘리기까지 했었다.
경제지원도 그다지 새롭지 않다. 이미 300억 달러이상을 이라크재건에 쏟아 부었는데 10억달러의 추가지원이 무슨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는가. 각 종파간 분쟁을 진정시키는 이라크 통합정책도, 석유수입을 각 종파에 배분하도록 하는 입법추진도 계속 언급되어온 사항이다.
새로운 이라크 정책은 또한번 재포장한 ‘기존 노선 고수’라는 인상을 떨치기 힘들게 됐다. 결국 아무도 부시의 고집을 꺾지 못한 것이다. 공화당 의원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 중간선거에서 드러난 미국민의 여론도,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으름장도, 이라크 전쟁터에서 상황을 인식한 군 지도층의 건의도, 미군주둔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이라크 국민의 반대도, 그 어느 것도 승리에 대한 대통령의 환상을 깨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한달여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이라크연구그룹 보고서도 외면당했다. 2008년 초까지 미군 전투병력을 철수시키고 이라크군 훈련지원에 주력하는 한편 이란과 시리아등 중동국가와의 외교채녈을 강화하라는 보고서의 주요 권고사항은 크리스마스 무렵에 이미 부시의 옵션에서 제외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상당수 일선 지휘관들도 ‘사태해결에 별 도움은 못 되면서 미군 희생만 가중시킨다’며 미군 증파를 반대해 왔다. 한 군 관계자는 반군 폭력을 제대로 소탕하려면 30만 병력(현 이라크 주둔 미군은 약 14만명)을 최소한 4년간 주둔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2만 정도의 증파는 이라크 정부에게 그릇된 메시지만 준다는 것이다. 미국 지원을 당연하게 여기며 치안과 국가통합에 대한 책임감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사태는 이제 임시적 군사 플랜이 아닌 근본적 정치 플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이들은 강조한다.
부시는 이번은 다르다고 역설했다. 무엇보다 누리 알 말리키 총리의 이라크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이 지원하는’ 이라크 중심의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이라크 정부군을 대폭 투입하여 사담 후세인 측인 수니파 반군 뿐 아니라 말리키 자신과 같은 종파인 시아파 반군 소탕에도 적극 나설 것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11월을 이라크 정부에 대한 통제권 이양시기로 잡아놓고 미국의 지원은 결코 무제한이 아니라고 못박고 있다.
그러나 아랍TV와 회견한 말라키의 어조는 좀 다르다. 이라크정부에 대한 미국의 계속 지원을 약속했다고 강조한다. 게다가 종파분쟁에 앞장 서 온 말리키가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을까,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허약한 정부가 불과 수개월만에 통제권을 감당할 수 있을까…
부시는 확신에 찬 어조로, 간곡하게 미국민을 향해 또 한번의 기회를 호소했지만 아직은 지지보다는 반대가 훨씬 높다. 미국을 승리로 이끌 군 최고사령관의 ‘의지’라기 보다는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강경론자의 ‘아집’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아집을 막을 수 있는 것은 현재로는 의회뿐이다. 11월 중간선거를 통해 유권자들로부터 미군 철수의 대권을 위임받은 의회의 행보를 주시할 수밖에 없다. 물론 오랜만에 되찾은 파워로 기세등등한 민주당은 강력한 반대를 천명하고 있으나 시원한 해결책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증파에 대한 전비지출을 막는 예산권 행사인데 이론적으로는 명쾌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자칫 의회가 해외에서 나라위해 싸우는 미군의 지원을 막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을 의식한 의원들로서는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적지 않은 한인 젊은이들도 포함된 3천명 미군의 생명을 묻은 이라크 전쟁은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이라크 사태는 이미 내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수백년 계속되어온 종파간 반목에 뿌리를 둔 내전이라면 더 이상의 희생을 치르기 전에 서방식 민주주의 심기의 환상은 버려야 한다. 종전의 실마리가 될 미군의 철수는 그러나, 부시의 백악관 철수 이후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불길한’예감이 든다.
rokpark@koreatimes.com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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