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이 들었다고 27년간 몸담고 살았던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자는 남편의 제안에 아내는 어이가 없어 말이 다 안 나왔다. 아니 거의 30년 사는 동안 단 한 번 도둑이 들었다고 집을 옮겨? 말도 안 되지. 그리고 이 집이 어떤 집인데, 처음 지을 때 우리 식구가 들어와 산 이후로 한 번도 마켓에 나와 본 적이 없는 때묻지 않은 집인 걸.
8살, 6살, 5살이었던 세 아이들이 이 집에서 건강하게 몸과 지혜가 자라났다. 모든 교육과정을 마치고 자기 짝들을 만나 순조롭게 가정을 이룬 것을 보면 이 터는 풍수지리를 보지 않고 정한 곳이라 해도 복된 장소임에 틀림없다.
그 뿐이 아니다. 처음 이 집을 정할 때 전망은 없어도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뒷마당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동네에서 제일 터가 넓다. 애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창문에 커튼을 다는 일은 뒤로 미루고 수영장부터 파놓았다. 그렇게 집 안팎으로 애들을 키우면서 깃든 추억의 그림자들은 어찌하고 집을 팔자는 건가. 도둑이 들어서 기분 나쁘다고 오랜 세월 정든 집을 내 놓자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였다.
“여보, 우리 그저 액땜한 것으로 쳐요. 살다 보면 이런 손해쯤은 얼마든지 볼 수 있잖아요. 뭐, 손해도 아니지. 보험회사에서 얼마간은 보상액도 돌려받았으니까. 안 그래요?”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돌리려고 부드럽게 말을 했지만 남편의 반응은 강경했다.
“외딴 사람의 발길이 왔다갔다 생각하니 기분 나빠서 더는 못 살겠어. 요즘 집값이 가장 올라있는 상태니까, 이 때 빨리 행동을 취하자. 애들도 다 떠난 마당에 이런 큰 사이즈의 집을 쓰고 있는 건 낭비지, 낭비야!”
견해의 차이겠지만, 그들은 집 문제를 놓고 많이 옥신각신 했다. 집값이 올라 있을 때 팔아서 생활 범위를 줄여 현금을 손에 쥐고 있다가 집값이 내려갈 때 다시 사자는 남편, 부동의 생각과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아내, 향기의 주장은 첨예하고 부딪쳤다.
‘지금 이 나이에 돈을 손에 쥐면 뭐하냐? 돈이란 있으면 쓰고 없을 땐 안 쓰면 되는데. 그냥 살면 편안한 것을 현금 손에 쥐자고 집을 팔고 사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또 이사 하느라 힘들어야 할 수고를 생각한다면 사서 고생하는 게 아니냐???고 아내는 자신의 이름, 향기와는 거리가 멀게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이다가 심하면 울고불고 법석을 떨었다. 이렇듯 아내의 심한 반대에도 남편은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돈은 한 푼 벌어보지 못한 사람이 남편이 돈 좀 불려보겠다는데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 놓겠다는 거야? 뭐야? 남의 여자들은 집을 사고팔고 뒤집기도 잘 하드만... 집구석에 앉아서 뭘 하고 있는지? 말은 잘 한다. 뭐? 없으면 안 쓰고 있으면 쓴다고? 당신이 정말 그럴 수 있어? 쓰던 가락이 있어놔서 수중에 돈 없으면 풀까지 죽으면서 무슨 그런 말을 해!”
“그래. 난 놀고먹었다. 내가 벌어야 할 입장인데도 안 벌었어? 당신 버는 것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 아이들만 기른 것인데. 그렇게 복부인이 좋으면, 그런 여자와 결혼하지 왜 나 같이 돈에 관심 없는 여자 만났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향기는 남편에게 바락바락 대들었다.
福부인의 뜻이 뭔가. 거액의 자금을 갖고 부동산 투기에 손을 대는 가정주부를 속되게 이르는 말 아닌가. 날 보고 그런 복부인이 되라고? 향기는 남편의 속내에 그런 기질이 있는 줄 몰랐다. 아니면 남자들은 은근히 자기 아내가 복부인이 되길 원하는 것이지도 모른다. 허긴 인간의 속성에 부를 축적하고 싶어 하는 근성이 있으니 남편도 보통 남자라면 그 수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평생 돈이라곤 한 푼도 벌어보지 못한 여자. 남의 여편네들은 집을 사고팔고 뒤집기도 잘 하드만...’ 남편이 내뱉은 이런 말들이 향기의 머리에서 뱅뱅 돌면서 그녀의 자존심을 자꾸 무너뜨렸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돈을 못 벌었나? 나도 벌어야 했다면 까짓것 돈쯤 못 벌 내가 아니었는데 하는 억울함이 치솟았다. 그래. 그렇게 원한다면 복부인이 되어주지. 못 될 것도 없어! 향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는 마음을 굳히고 살고 있는 지역에서 꽤 소문이 나있는 브로커를 선택해 손을 잡았다. 먼저 집의 시세부터 물어보았다. 요즘 집이 많이 올랐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집이 그렇게 많이 값이 나갈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여간 처음 살 때보다 열배나 오른 부동산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 뭔지 모르겠지만 가슴은 뿌듯해오는 충족감이 들었다. 이런 게 다 속물 근성일거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향기는 점점 복부인이 만족을 느끼는 부분으로 침투해들어가고 있었다.
안부동씨 내외가 살고 있는 스타레인의 계곡은 글렌데일 시에서 특히 중동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이웃들의 대부분이 아르메이언 들이다. 향기네가 처음 이사 올 때는 거의 한 집 건너 한국인들이 살았다. 한인 타운에 직업을 갖고 있는 한인들로서 좀 부유한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인종이 그렇게 바뀌었다.
향기의 집은 때 따라 수리를 한 탓으로 30년 가까이 된 나이처럼 낡지도 않았다. 그녀가 애지중지 쓸고 닦아서 반짝 반짝 빛이 나는 집이고 뒷마당이 그 동네에서 가장 넓고 수영장이 있는 집이라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에서는 첫눈에 반할 그런 집이다. 부엌 기구도 최신 기계로 다 설비를 했기 때문에 여자들의 눈에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연유인지 리스트에도 올리기 전에 브로커가 엘에이 타임즈, 로컬 페이퍼에 집을 소개했을 뿐인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바이어가 하도 조르는 바람에 단 한번 보여줬는데 홀딱 반해서 그날로 오퍼가 들어왔다.
향기는 눈이 번쩍 띄었다. 그렇게 빨리 액션이 취해지는데도 놀랐지만 이러다 옮겨갈 집도 구하지 못한 채 팔려서 거리에 나 앉는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한 생각도 들었다. 첫 번 오퍼를 기각시키고 그 때부터 부지런히 집을 보러 다녔다. 그녀가 원하는 가격과 사이즈 위치를 정해놓고 어떤 날은 하루에 열 집을 본 적도 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르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지금 집 보다 규모가 작은 것으로 줄여가자니 보는 것 마다 답답했다. 큰 집으로 옮겨 앉기는 쉬워도 줄여가는 것은 참 어렵다더니 정말 그랬다.
거의 매일 피곤할 정도로 집을 보았지만 딱히 적당한 집이 나타나지 않으니까, 집을 팔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남편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남편은 집을 팔아 현금 손에 쥐는 일만 생각했지, 여자가 얼마나 집에 애착을 두고 정이 들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사실 자기는 24시간 중 집에 있는 시간은 잠자는 8시간과 고작해야 4시간 정도다. 하루 온 종일 집에 있는 사람의 뜻을 이렇게 묵살해도 좋은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사 갈 집을 제 때에 찾지 못하면 렌트 하우스라도 가자니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향기는 그런 떠돌이 생활을 이 나이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진저리가 쳐졌다.
우리가 갈 집도 구하지 못했는데 두 번째 오퍼가 또 들어왔다. 남편은 그 오퍼는 받아드리려는 눈치였다. 순순히 아내가 자기 뜻에 따라주길 바라서인지 향기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집 보러 다니느라 저녁식사 준비를 못했다고 하면 전처럼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부드러운 음성으로 농담을 걸어왔다.
“아, 향기 여사께서 복부인으로 발돋움을 하기 위해 밥을 못했다는 데야 내가 뭐라겠어?
나가 먹자. 집을 내 놓으면 냄새나는 요리는 되도록이면 하지 않는 게 더 좋지.”
“복부인 수고 많소.?? 보통 때는 전화도 하지 않던 사람이 대낮에 집으로 이런 전화도 걸었다.
결국은 두 번째 들어온 오퍼를 받아드렸다. 집은 에스크로에 들어가고 바이어 측의 감정사까지 나와서 면밀히 조사하며 흠을 찾는 동안에도 안부동과 향기는 옮겨 앉을 집을 발견하지 못했다. 향기는 초조하고 불안했지만, 부동은 그의 이름처럼 요지부동 끄덕도 없었다.
에스크로 기간을 60일 정도 준다고 하니 그 동안에 이사 갈 집을 찾아야만 했다. 그 때까지 집을 찾지 못하면 우린 셋집이라도 얻어야 할 판이다. 이 많은 세간살이와 큰 집에 들어가 있던 짐들을 정리하고 줄여야할 생각을 하면 향기는 밤에 잠이 다 오지 않았다.
향기는 대충 버릴 것과 좀 쓸 만한 가구들과 옷가지들은 따로 모아서 구호 단체에 보내며 몇날 며칠을 꼼지락 거렸더니 몸무게까지 줄었다. 하루 밤에도 몇 번이나 집을 샀다 팔았다 짐을 쌌다 풀었다 공상 속을 헤매다 잠을 깨면 새벽 4시, 5시다. 그러면 침대에 그냥 누워서 뒤척이다가 동이 훤히 터올 때 쯤 뒤뜰로 나간다.
오늘 새벽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맑지 못한 머리를 안고 패티오 문을 열려고 하는데 바로 문 앞에 사슴 두 마리가 내려와 풀에 맺힌 아침 이슬을 먹고 있었다. 향기는 문 열기를 멈추고 조용히 쳐다보며 숨을 죽였다. 뿔 달린 숫 사슴은 앉아있고 둥그런 눈을 맑고도 선하게 굴리는 암 사슴은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퍽 평화로웠다. 그동안 뒷마당에 놀러오는 사슴들은 여러 번 보았지만 이번처럼 암사슴과 뿔 달린 숫사슴이 동반해서 놀러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향기는 밖으로 나가는 대신 위층의 침실로 올라가 남편, 부동씨를 깨웠다.
“여보, 좀 일어나 봐요. 당신이 꼭 봐야 할 게 있어요. 빨리요.??
“뭘 갖고 이리 귀찮게 굴어???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면서도 순순히 아내를 따랐다.
“저 사슴들 좀 봐요. 얼마나 보기 좋은 한 쌍이예요? 이래도 이 집을 팔아야겠어요? 금실 좋은 사슴 부부가 찾아오는 이 집을 꼭 팔아야겠느냐 구요”
남편도 신기한지 한참 사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놈들 참 오래도 있네. 풀도 뜯고 무릉도원이 따로 없군. 그러나 어쩌겠나? 벌써 이 집은 팔렸는데…”
그날 오후, 향기의 집 에스크로에 들어가 있던 은행에서 통지가 왔다. 바이어 측의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서 은행 융자받을 수 없어 이 집을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큰 가격의 집을 사기에는 자격 미달의 작자였나 보다.
어쨌거나 향기는 그 전화를 받고 어느 때 보다도 행복했다. 남편이 퇴근해서 아내에게 한 말은 더 의외이고 향기의 마음을 안심 시켰다.
“여보, 내 이름이 움직이지 말라고 不動인가봐. 사슴이 찾는 집인데, 팔지 말자. 우리 그냥 무릉도원에서 살자.”
약력:
1987년 미주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입선. 97년 단편소설 ‘그 후에 내린 비’ 98년 ‘사막에도 별은 뜨는데’로 ‘라 뽈륨’ 문학지 천료. 미주한국소설가협회 회장 역임, 미주한국문인협회 이사. 2003년 소설집 ‘그네타기’ 출간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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