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사람들이 강도나 다름없는, 악독한 독재자의 억압에 신음하고 있다. 한 나라가 끔직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 때 그 끔직한 상황이란 대체로 이렇게 정의됐었다. 그 정의는… 그러나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다.”
미국적 낙관주의를 확신하고 있었다. 악한 압제자만 사라지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는. 압제자를 제거했다. 그 뒤로 찾아온 것은 그러나 증오와 살인의 광란극이었다.
소말리아 사태다. 그 실패의 현장에서 한 미 행정부 관리가 내뱉은 독백이라고 한다.
사담 후세인이 처형됐다. 꿈에라도 나올까 두려운 그 독재자가 마침내 처형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혈사태는 좀처럼 멈출 기미가 없다.
새삼 질문이 떠올려진다. 독재권력, 전체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담의 처형이 일깨워주는 것이 있다면 전체주의란 괴물이 출현한지 90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괴물의 정체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보수파 논객 앤 애플바움의의 지적이다.
히틀러가 출현했을 때 서방이 처음 보인 반응은 무시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그에게 꼬리를 치는 것, 다시 말해 끊임없는 유화책이다. 스탈린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독재자들은 결국 그 면목을 드러냈다. 그 체제가 지닌 속성을 드러내고야 만 것이다. 그 때 가서야 위험요소에 눈을 돌렸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이미 비싼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은 2차 대전으로 이어졌다. 스탈린의 동구 무력석권은 기나 긴 동서냉전을 불러왔다.
사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란과 전쟁을 벌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대국의 장기 말 정도로 취급했다.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그 때서야 그 위험성을 감지한 것이다.
“야망에 찬 혁명가나, 전체주의 체제 지도자들이 끼치는 해악이 자국민에게만 국한되는 경우란 찾아보기 힘들다. 20세기의 역사가 이를 말해준다.” 문제는 이 역사의 교훈을 자주 망각하고 있다는 게 이 보수논객의 주장이다.
“사실 3년 전만 해도 이라크인들은 사담과 그 일족, 그리고 바트당으로 연결되는 독재체제의 인질로 잡힌 사람들로 생각했다.” 다른 논객의 ‘한탄성’의 고백이다.
그게 아니라는 거다. 오늘 날에 와서 보면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의 형상에 따라 재창조된 사회’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부와 파워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담이 남긴 유산으로, 수많은 이라크 인들은 고문에, 납치에, 암살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폭력의, 공포의 체제였다. 가령 이런 식이다. 정치범으로 한 사람이 체포된다. 그 후 그 사람의 종적은 알 길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가족에 소포가 배달된다. 그 정치범의 몸에서 절취해낸 신체의 부분들이다.
이 제도적 폭력에 한 때 이라크 노동력의 20%가 동원됐다. 각종 정보기관의 끄나풀로, 비밀경찰 등으로. 테러가 본질인 체제였다. 그 체제 하에서 태어나 증오와 피를 먹고 자란 것이 오늘날 이라크를 피로 물들이고 있는 ‘작은 사담’들이다. 괴물이 괴물을 낳은 것이다.
“…사람마다 파워를 원한다.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다. 그 가운데 증오만 쌓여가고 살육은 끊임없이 자행된다.” 소말리아 사태가 포스트 사담의 이라크, 다시 말해 전체주의가 남긴 깊은 상처로 신음하고 있는 이라크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전체 인민의 30%가 동원되고 있다. 무엇에. 그 체제가 자행하고 있는 총체적 테러를 위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간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 공간을 밀폐시켜야 한다. 자유를 주어서는 결코 안 된다. 자유말살을 위해 동원된 인력 말이다.
그래서 자원을 쏟아 붇는다. 인민이 굶어 죽는다. 그래도 상관없다. 김일성 일족의 신격화만 중요할 뿐이다. 그 일을 위해 전체 예산의 40%를 배정했다. 각종 우상화 기념비만 3만개에 이른다. 거기다가 ‘오직 수령님만을 위한’ 각종 연구소에, 사적지 등이 4만개다. 이를 운영하고 보존하는데 전체 국가 예산의 거의 절반을 쓴다는 것이다.
김정일 체제의 북한은 한 마디로 거대한 정신병동이다. 끊임없이 우상화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전 인민은 제도적 테러와 공포에 짓눌려 신음하는 밀폐된 병동이다.
그 체제 하에서 과연 어떤 괴물들이 자라고 있을까. 한 독재자의 죽음과 관련해 던져보는 또 다른 질문이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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