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이 지난 29일 새벽 동트기 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003년 12월 미군에 의해 생포된 후 시아파 집단 학살(두자일 주민 148명 보복사건)범으로 이라크 법정에서 최근 사형 선고가 확정되었으며, 예상보다 빨리 해를 넘기기 전에 전격 처형되었다. 쿠르트족 등 30만 명은 족히 학살했을 것이라는 포악한 도살자는 법정에 선지 3년 만에 죄의 값을 치르고 역사 속에 사라졌다. 서슬 시퍼렇던 시절, 저항하는 국민들을 고문하던 옛 정보부 건물에서 오랏줄에 메어 비참한 최후를 마쳤으니, 세상은 역설적으로 돌고 돌아 권선징악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긴 검정 코트 차림에 흰 스카프를 두르고 약간 공포에 질린 듯한 표정이었으나, 몸을 똑 바로 세우고 모든 것을 체념 한 듯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감수했다. 얼굴에 두건을 씌우려했으나, 이를 거절해 목에다 둘러주었다. 목이 잘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평생 ‘지하드’(성전)를 위해 싸워온 군인이었기 때문에 후회나 두려움은 없다고 말했으며, “나 없는 이라크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광신적인 최후진술을 했다.
세계언론은 “이것이 독재자의 말로다.”라고 논평을 하기도 했다. 미시간주 디어본에 살고 있는 25만 아랍인들은 밤새도록 축제를 벌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독재자는 최후에 몰락하기 마련이다”라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현실에서는 반드시 실현되지는 않았다. 김일성, 모택동, 프랑코는 현직에서, 이디 아민(IDI AMIN)은 망명지에서, 피노체트는 권좌에서 쫓겨난 후 각각 천수를 누리다가 사망했다.
후세인의 대 선배로 3천만 명을 학살한 스탈린은 뇌출혈로 급사했고, 히틀러는 홀로코스트의 주범으로 유태인만 6백만 명을 죽였으며, 베를린의 지하방에서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70년대 아프리카의 최악의 독재자 이디 아민은 2003년 망명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신장병 악화로 죽었다. 79년까지 8년 집권동안 40만 명을 학살, ‘아프리카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그는 죄 값은커녕 망명지에서 20년 동안 호의호식하다 세상을 떠났다.
미국의 국제경찰력 때문에 권좌에서 물러났다는 점에서는, 후세인과 마누엘 노리애가가 같은 경우이다. 미국에 밉보인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애가는 89년 미군에 압송되어 40년형을 선고받고, 플로리다 마이애미 감옥소에서 18년째 복역중이다. 자기국민에 의해서 전격적으로 처형되었다는 점에서 후세인의 말로는 니콜라이 차우셰스크 루마니아 대통령의 최후를 방불케 한다. 25년 간 루마니아를 철권통치하며 김정일과 우상화 경쟁을 벌였던 차우셰스크는 1989년 12월 민중봉기로 축출돼 군사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성탄절에 부인과 함께 도망가다 총에 맞아 처참하게 객사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만도 독재자 3명이 저승길을 갔다. 3월에는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이 국제전범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던 중 옥사했다. 지난 달 12일에는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대통령이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현대사에 가장 잔인하고 폭력적인 정권은 캄보디아의 폴 포트(POL POT)와 북한의 김일성-정일 부자(父子)일 것이다. 75-79년 캄보디아를 통치했던 크메르루즈(Khmer Rouge) 최고 지도자로서 양민 2백만 명을 학살한 ‘킬링필드’의 주역 폴 포트는 베트남의 침공으로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밀림 속으로 들어가 게릴라전을 지휘하다 사망했는데, 사망원인은 말라리아 때문인지 타살인지 불분명하다. 킬링필드는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예(例)이다. 안경 낀 사람까지 부르주아라고 살해했으며, 총알을 아끼느라고 곡괭이 낫 몽둥이를 사용했고, 생매장이라는 만행을 저질렀다. 프놈펜 인근 마을 10층 위령탑 속에는 1만개의 유골이 보관돼있어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킬링필드는 인류문명의 수치다. 제도와 사상 때문에 가해진 인간의 야만적인 폭력이다. 다시는 지구상에 이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반세기에 걸친 부자세습의 북한 땅이 바로 킬링필드라고 생각할 때 모골이 송연하다. 세계 랭킹 1위의 최장기 독재국가로 한국 전쟁 때 수백만 명, 고난의 행군으로 굶주려 2백만 명이 죽었으며, 지금도 강제 수용소에는 15만 명의 국민이 학대와 고문을 받으며 짐승 같은 생활을 하고있다.
후세인 처형에 대해 교황청, 인권단체, EU 등 일부에서 불공평한 재판, 사형 반대, ‘승자 미국의 정의’라는 비판이 일고있는 가운데, 이라크 전쟁 악화, 종파간 폭력 확산 등 사태가 심히 우려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올 것이 온 것이고, 죽음은 후세인이 자초한 것이다. 그는 순교자가 아니며 국민이 받은 고통의 대가를 치렀을 뿐이다. 그리고 이번 일은 중동 민주주의 수립에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며, 현존하는 독재자에 대한 준엄한 경종이다. 후세인 옹호자들과 한국의 반미주의자들에게 워싱턴 포스트 사설의 일부로 반론을 대신하려고 한다. “사형제도에 반대하지만, 아마도 김정일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도 더 많은 피를 손에 묻힌 후세인이 사형에 처해지지 않는다면, 어떤 범죄에 대해 어디에서든 사형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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