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A 풀리면 6자회담도 술술 풀릴 것”
곽태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을 만났다. 2006년이 끝자락을 보이는 시점에서다. 북한의 핵과 6자회담과 관련해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낙관론이 주조를 이루었다. 체제 안정을 위해 북한은 6자회담에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었다. 한국의 정치 이야기도 나왔다. 대통령 선거해인 2007년은 그 어느 때보다 북풍(北風)이 거센 한 해가 된다는 지적이었다.
-6자회담이 표류하고 있습니다. 제5차 2단계 회담이 13개월 만에 열렸으나 회담재개 일정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휴회에 들어갔습니다. 북한은 회담 내내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계좌동결 해제만 요구해 결국 아무 성과 없이 닷새 일정을 마친 것이지요. 6자회담에 과연 기대를 걸어도 좋은 것일까요.
▲저는 그다지 비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단지 휴회가 된 것뿐입니다. 이번 회담은 미국과 북한의 분명한 입장 차이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미국 언론들은 회의적 시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실망적인 반응이고요.
▲사실 핵실험 직후 사태를 절망적으로 봤었습니다. 그렇지만 BDA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보인다는 판단이 서면서 낙관적 전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낙관적 전망의 구체적 이유를 든다면 어떤 것이 될까요. 중간선거 이후 네오콘의 퇴조와 함께 부시 행정부의 북한 정책이 달라지고 있는 게 확인되고 있기는 합니다만.
▲미국의 북한 정책이 변했습니다. 게다가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공조체제가 돋보였다는 점, 그리고 6자회담 성공의 열쇠를 북한이 쥐고 있다는 점 등이 이번 회담의 특징입니다. 요는 BDA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 가에 달려 있는데, 그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북한은 이 문제에 왜 그토록 집착하는 걸까요. 달러화 위폐를 제조하고, 유통했다는 증거가 명백한 상황에서 말입니다.
▲이 문제가 그래요. 북한의 사이컬러지랄까, 그런 걸 볼 수 있게 합니다. 묶인 돈은 모두 해서 2,500만달러입니다. 공식 환율로 북한 예산의 1%도 안돼요. 그런데 그토록 집착을 하는 건 그 체제의 특성 때문입니다. 우상으로 모시는 수령의 개인구좌가 묶였다는 것, 그것만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는 거지요.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BDA 문제에 양측이 어느 정도 협의가 이루어졌다고 보십니까. 이 문제 해결을 조건으로 6자회담을 상당히 낙관하셨는데.
▲미국은 이 문제에 상당히 많은 양보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 북한계좌 동결 해제건을 BDA에 일임하기로 중국 측과 합의를 했다는 말도 나돌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풀리면 미국이 제안한 4단계 조치의 실현 가능성이 커집니다.
-핵 문제로 미국은 북한과 오랜 접촉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북한은 믿을 수 없다는 거지요. 이런 북한의 과거로 보아서 그게 가능할 것인지 의심이 갑니다.
▲핵문제를 풀지 않으면 체제가 붕괴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이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6자회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들 겁니다. 문제해결의 유일한 방법이자. 출구가 이 회담이니까요. 제2의 고난의 행군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경우 예기치 않은 사태발생 가능성이 크지요. 게다가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임을 북한 측이 밝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중국의 역할 역시 사태를 낙관적으로 보게 하는 한 요인이지요.
-타임지도 그런 논평을 했고, 많은 언론들이 비슷한 시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정일 체제는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6자회담 무용론도 제기되는 실정입니다.
▲그 주장은 객관성이 결여된 주장입니다. 이번 미국이 제의한 4단계 조치는 북한으로서는 안 들을 수 없는 제안입니다. 북한의 요구를 사실상 다 들어준 겁니다. 김정일 정권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그 경우 엄청난 비극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북한 핵문제를 다른 측면으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체제가 지닌 속성의 문제라는 관점 말입니다. 북한의 넘버 1 프라이오리티는 수령 절대주의 체제 옹호에 있습니다. 그런 체제가 체제 유지에 절대적인 핵을 포기한다. 이게 가능한 얘기인지….
▲체제 안정을 위해 핵 포기를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김정일 체제는 사실 심각한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개방을 안 해도 망하고 개방을 해도 망한다는 딜레마지요. 선택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개방을 안 하는 것이 개방을 하는 것보다 더 망할 확률이 큽니다. 결국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공산체제를 경험한 한 러시아의 전문가는 북한은 중국식 개방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했습니다. 중국은 ‘비교할 다른 중국’이 없었기에 개방이 가능했다, 말하자면 체제 우위 비교대상이 없었다는 것이죠. 북한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경제 대국 한국과 체제 비교가 됩니다. 한국이 훨씬 잘 사는 걸 북한의 대중이 알게 되면 곧바로 체제붕괴 상황이 온다는 걸 북한의 지배층은 잘 알고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 개방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입니다.
▲전적으로 동감할 수는 없지만 일리 있는 얘기입니다. 때문에 차선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거지요. 북한을 개혁으로 이끌어 경제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그런 후에 통일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불신의 벽을 제거하고 미국도, 북한도 한 걸음씩 물러나 정책변화를 꾀해야 합니다.
-북한 핵문제는 한국 정치와도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가령 한국에 보수정권이 들어서는 날, 상황은 많이 달라지겠지요. 이런 면에서 대통령 선거의 해인 2007년은 북풍(北風)이 그 어느 때보다 세차게 부는 해가 되지 않을까 봅니다.
▲북풍은 반드시 붑니다. BDA 문제만 해결되면 한국 정부는 곧바로 대대적인 북한 돕기에 나설 것입니다. 북풍예비 공작이지요. 분위기를 이끌면서 특사를 파견할 것입니다. 남북정상회담 특사지요. 그리고 늦어도 5월 이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열지 않을까 봅니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3~4월 남북정상회담 설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모종의 작업이 벌써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아주 극단적인 조치도 마다하지 않을 현 정권이니.
▲군복무 단축제안 같은 게 그 일환이지요. 정동영씨 발언에 주목할 게 있어요. 남북정상회담 장소입니다. 반드시 서울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제3의 장소 즉, 금강산이나, 판문점, 혹은 베이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남북정상회담은 반드시 추진한다고 보아야겠지요. 정권 재창출에 그런 호재가 없으니 말입니다.
-보수정권 출범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말씀 같습니다.
▲그렇지요. 얼마 전 서울에서 들은 얘기인데 열린 우리당 후보로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상당히 유력하다 그래요. 그게 갑자기 나온 이야기가 아니고 경기중학 출신 중심으로 벌써 오래 전부터 얘기됐다고 해요. 정 총장은 확실히 신선한 이미지를 줍니다. 그런 후보를 옹립하고 때맞추어 일으킨 북풍이 한층 거세지면 열우당의 정권 재창출이 꿈만은 아니지요.
-말하자면 김정일 변수가 한국 정치에 결정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군요.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그게 사실이고, 현실입니다. 저는 보수주의자는 아니지만 보수주의자 입장에서 볼 때 현 한국의 정치상황이 절망적으로 비친다는 점에 수긍이 갑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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