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7월 20일 오후 12시 40분 히틀러와 20여 참모들이 전략 회의를 벌이던 라스텐부르크 벙커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서류 가방에 든 강력 폭탄이 터졌기 때문이다. 이 폭발로 장교 3명이 즉사했으나 히틀러는 가벼운 부상만 입고 생명을 건졌다.
이 가방을 갖다 놓은 것은 클라우스 솅크 그라프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지만 그의 단독 범행은 아니었다. 독일 군부의 히틀러 암살 기도는 제2차 대전이 시작되기 전 1938년부터 있었다. 많은 군인들이 히틀러를 가만 놔 둘 경우 독일은 전쟁의 참화에 휩싸일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 그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으나 인근 국가의 유화 정책으로 히틀러가 총 한 방 쏘지 않고 오스트리아와 체코 주데텐 지역을 통합하는 성과를 거두자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1939년 폴란드와 1941년 소련 침공 직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943년 들어 전세가 불리해지자 상황은 달라졌다. 더 이상 사태를 방치할 경우 독일 패망은 불가피하며 이를 막기 위해 히틀러를 죽이고 권력을 잡은 후 연합국과 강화 조약을 맺는 것이 절실하다는 공감대가 쿠데타 주모자들 사이에 이뤄졌다. 슈타우펜베르크의 암살 기도는 이런 배경 하에 이뤄졌다.
이 테러를 감행한 슈타우펜베르크는 신앙심이 깊은 독일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이 계획에 가담하기 전 히틀러를 죽이는 것이 종교적 계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로 오래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무고한 독일 국민과 유럽인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히틀러를 그대로 살려두는 것이야말로 더 큰 도덕적 죄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암살을 결심한다.
쿠데타에 가담한 사람들 모두가 그 성공을 확신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 여부에 관계없이 주어진 상황에서 그 길만이 양심적인 독일 국민으로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이를 택했다. 그러나 결국 쿠데타는 실패했고 가담자 가족까지 5,000여명이 체포됐으며 이중 수백 명이 푸줏간 갈고리에 걸려 고문을 당한 후 처형됐다.
이들에게 어떤 이유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며 더더구나 공정한 재판을 거치지 않고 국가 지도자를 암살하려고 하는 것은 범죄라는 주장을 편다면 이들은 뭐라 했을까.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너털웃음을 짓지 않았을까.
21세기까지 생존해 온 정치 지도자 중 히틀러와 가장 닮은 인물을 꼽으라면 사담 후세인이 첫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쿠웨이트와 이란을 상대로 침략 전쟁을 일으켰고 독 개스까지 사용해 가며 쿠르드족과 시아파를 살해했으며 무자비하게 정적을 탄압했다.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 수는 줄잡아 200만으로 추산된다.
그 후세인이 30일 2006년을 넘기지 못하고 처형됐다. 그런데 그의 처형을 놓고 정당한 응징이라는 평은 찾아보기 어렵고 재판이 공정하지 못했다느니 처형을 너무 서둘렀다느니 하는 소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후세인에 대한 공정한 판결은 누가 내릴 수 있을까. 후세인의 손에 의해 가족을 잃은 시아파와 쿠르드족? 침략 당한 쿠웨이트와 이란인들? 그를 추종해온 수니파? 아니면 이들 모두의 합작회의?
이상적으로는 정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심판을 내려준다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이라크 국민들이 들고일어나 후세인을 제거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 또한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없었더라면 후세인 부자는 지금도 권좌에 앉아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미국이 후세인을 죽인 것은 정의나 민주주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세상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 나라도 있는가 보다. 요점은 그것이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응징과 부합되느냐이다. 후세인 단죄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뉘른베르크와 도쿄의 전범 재판도 잘못이라고 믿는 것일까. 후세인 처형은 정치권력을 업은 집단 살인마에게도 가끔은 정의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린 역사적 사건이다. 그에 의해 무고한 생명을 잃은 수많은 이들의 명복을 빈다.
kyumin@koreatimes.com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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