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6일 밤 서거한 제럴드 포드 미 제38대 대통령은 ‘우연한 대통령’(accidential president)이라고 불리곤 했었다. 그는 애당초 대통령 꿈을 가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1973년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고전 중이던 닉슨 대통령은 설상가상이라고 시피로 애그뉴 부통령이 메릴랜드 주지사 시절의 뇌물사건으로 사직을 하게 되자 가장 인준을 받기 쉬운 대상으로 당시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이던 포드를 골라잡은 것이다. 닉슨의 포드 선택은 자신에 대한 탄핵을 피해보자는 심산이었겠지만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공화당 의원들을 포함한 만장일치의 탄핵안이 채택되자 1974년 8월8일 대통령직을 사직할 수밖에 없었다. 포드는 “우리나라의 긴 악몽은 끝났다”라는 말로써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죽는 바람에 부통령이다가 대통령 자리에 오른 사람은 너덧 되지만 포드처럼 선거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은 그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연한 대통령이랄 수 있다.
닉슨이 자초했던 백악관에 대한 불신과 회의로 인한 미국 정계의 독소를 제거하는데 포드 같은 인물이 꼭 필요했었다는 게 중평이다. 우선 그에게 적용되는 형용사는 정직하다, 점잖다, 겸손하다, 평범하다 라는 것 등이다. 존슨, 닉슨 등의 제왕적 대통령 권한행사와는 사뭇 대조가 된다. 부통령 시절에도 머핀 빵에 손수 버터와 잼을 바르곤 했었다든지, 심지어는 대통령 집무실의 카펫에 그의 개가 똥을 쌌을 때 해군 보좌관이 재빨리 그것을 치우려하자 “누구도 남의 개 뒤를 치워서는 안 된다”라면서 자기가 하겠다고 자원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포드가 자신의 일신영달에만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었다면 대통령 취임 1개월 후에 닉슨의 사면을 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 범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갖가지 범법행위를 백악관 내에서 저지른 행적 때문에 그가 형사범으로 법정에 서게 되고 유죄판결을 받을 개연성은 대단히 컸었다. 그랬을 경우 그렇지 않아도 인기 없는 월남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불안했던 정국은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 정치와 사회의 마비상태까지 치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포드는 자신의 정치생명에 미치게 될 악영향을 충분히 예견하면서도 닉슨에 대한 사면을 단행함으로써 대통령으로서 전례 없이 하원 법사위원회에 출두해서 증언할 수밖에 없는 수모를 겪었을 뿐 아니라 1976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지미 카터에게 패배하게 된다. 그 사면을 두고 닉슨과 포드 사이의 묵계설 등이 당시에는 있었지만 포드가 어떤 연설에서 “나는 어떤 남자에게도 빚진 것이 없으며 여자 하나에게만 빚졌습니다”라고 자신의 부인의 역할을 설명한 것처럼 국익만을 생각한 용단이었음이 판명되었다는 게 중론이다. 지미 카터가 자신의 대통령 취임사를 “나의 전임자가 우리나라를 치유하기 위해 하신 모든 일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시작한 것도 당연하다.
포드의 첫 비서실장은 럼즈펠드였고, 두 번째는 딕 체니였다. 포드가 워싱턴 포스트의 봅 우드워드에게 살아생전에는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2004년에 허락한 단독회견에는 놀라운 내용이 들어있다.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것에 대한 신랄한 비난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대량학살 무기가 이라크에 있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 럼즈펠드와 체니의 결정을 큰 실수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또 포드는 중동의 비민주국가들의 사람들을 해방시켜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부시의 새 명분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의 안보가 해결되지 않은 이상 지구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지옥 같은 전쟁을 통해 사람들을 해방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포드는 단언한다. 또한 체니에 대한 포드의 평가도 재미있다. “체니가 비서실장으로는 탁월한 일류였다. 그러나 나는 체니가 훨씬 더 호전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But I think Cheney has become much more pugnacious.) 아쉬운 것은 포드의 이런 견해가 2년 전에 공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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