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여 전 어느 저녁에 딸아이가 내 옆에 와 앉으며 캘리포니아 조세형평국 위원에 출마하기로 했는데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일반 국민의 세금을 담당하는 곳이고 선거직이라고 했다. “나가야지. 엄마가 힘껏 도우마.”
선거전이 시작되었다. 우선 2006년 6월6일에 있을 공화당끼리의 싸움인 예비전에서 승리해야하므로 그 대비부터가 필요했다. 상대는 가주 상하원을 지낸 사람, 조세형평국 현직 공무원하며 백인 남자 네 사람은 듣기만 해도 떨리는 적수였다.
선거는 장기전이어서 건강해야 하고 능란한 강연을 해야 하고 상대방의 정보를 수집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100만달러가 넘는 선거자금이 필요했다. 해보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것 아는가. 모르는 것이 약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집안 일을 도맡을 것이다. 가주공화당 위원장을 지낸 사위는 정계의 마당발이어서 섭외를 맡았고 딸아이는 10년이 넘게 LA시 소방위원 공항위원 등의 임명직으로 한국인 사회의 사랑을 받아온 터였다. 출마 의사를 밝히자 미셀 박을 돕자는 운동이 자연스럽게 퍼져나갔다. 바로 이것이 선거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가정 일과 같이 내 어깨에 짊어져진 직무 중에는 두 손녀딸의 발 역할을 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30년이 넘는 미국생활에 아직도 주눅이 들게 서투른 일은 영어 회화와 운전 기술이었다. 선거전까지 나는 세전 토깽이 같이 아는 길만을 다니는 미숙운전자였다. 내 딸아이 내외도 그걸 잘 안다.
선거전 막바지에는 딸아이가 거의 매일 “엄마, 갈 수 있어?”하고 묻는다. 이것은 묻는 것이 아니고 가야만 한다는 말이다. 딸아이는 주정부가 있는 새크라멘토로, 샌디에고로 하루에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며 유세를 해야 하는 날이 있었다. 나는 “암! 갈 수 있어. 차가 있고 내가 있는데 못가는 데가 어디 있어. 염려 말고 유세 잘 혀. 선거는 2등도 3등도 없어. 1등만이 유효한 거야”
어느 날 밤 나는 음악 캠프에 가는 작은 애기를 패사디나 집합소에 내려놓고 다시 110 프리웨이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 길은 나에게 퍽 익숙한 길이다. 서서히 맨 왼쪽 차선으로 옮겨야 했는데 무슨 생각에 골똘했는지 ‘어머 어머, 어떻게, 어떻게’ 하는 사이에 차는 내 의도와 전혀 다른 405 프리웨이에 들어서 있었다. 순간 남쪽으로? 북쪽으로? 하는 사이 내 차머리는 남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나는 나를 달래며 405의 크렌셔에서 내리면 돼.
그러나 가도 가도 나에게 익숙한 동리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딸아이에게 전화를 여러 번 시도했어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딸아이는 내가 길을 물으면 귀신같이 잘 대답해 주는데 아직도 회의 중인가… 내 차에는 최신식 내비게이터가 있으나 나는 그것을 작동할 줄 모른다. 알 필요도 없었다. 아는 길만 다녔으니까. 어떻게 하나. 근심이 비구름처럼 일어났다.
사위는 캄캄하다. 앞 거울로 뒤를 보면 사나운 호랑이 눈빛으로 나를 잡아먹겠다고 쫓아오는 헤드라이트가 아! 무서워. 우선 주유소를 찾을 요량으로 프리웨이를 벗어났다. 이게 어디냐. 캄캄한 공장지대 같았다. 주유소는커녕 민간 주택도 없는 곳이었다. 무인지대에 섰으니 나는 오늘은 죽었구나.
차를 세우고 가만히 엎드렸다. 그런데 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오더니 내 차 바로 뒤에 멈춰 섰다. 자동차 불을 켜놓은 채였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며 등허리에 째릿한 아픔이 건너갔다. 뚜벅뚜벅 걸어서 나한테 와서 지갑 내놓으라고 하지 않을까? 나보고 내리라 하고 자동차 열쇠를 달라고 하지 않을까? 그러면 순하게 응하리라. 빠끔히 머리를 들고 뒤차의 동정을 살폈다. 그런데 내릴 기색은 없었다.
저 차마저 가버리면 나는 정말 어떻게 할 것인가. 나도 자동차 불을 켜놓은 채 내려서 뒤차에 다가섰다. 건장한 두 흑인을 보는 순간 아! 그 무서움을 무엇으로 표현하리요. 나는 이때 내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줄 알았다. 숨을 고르며 북행 110을 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Can I ask something…” 해가며. 나는 당신들을 절대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의심하지도 않는다고. ‘Please’도 써가며.
운전석 사람이 앞의 신호등에서 왼쪽으로 돌아 조금만 가면 북행 405가 나오고 한참 가면 110이 나온다고 했다. Thank you를 정중하게 하고 돌아서며 이런 바보 같으니라구. 남쪽405로 달려왔으니 반대방향에 북행길이 있을 것 아닌가. 너는 인제는 별수 없이 컴맹이고 길맹까지 들었어.
북행 110 사인을 보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고, 급할 때마다 부르는 찬송가 466장을 불렀다. ‘나 어느 곳에 있든지 주 나를 사랑해’ 하고. 두 시간을 헤매다 집에 돌아오니 아직 딸아이는 귀가 전이었다.
예비선거에서 딸아이는 지반이 있고 쟁쟁한 이력으로 거만했던 백인 남자 4후보자를 2만2,000표를 더 얻음으로 대승하였다. 국회의원 했다는 낙선자에게 기자가 이제 무얼 할 것인가 물었더니 “너무 기막히고 황당해서 나는 앞으로 아무 것도 할 기력이 없다”고 했다 한다. 영어에 액센트도 있는 동양여자 1.5세 이민자에게 졌으니 왜 안 그러겠는가. 그는 아직까지 축하한다는 전화를 보내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7일의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거의 전멸상태였으나 가주 주지사와 내 딸이 돋보이게 승리하였다. 딸아이가 110만 표를 득표했고 민주당 후보는 70만표를 얻고 있었다. 집안에서 사랑받는 사람이 밖에 나가서도 사랑받는다. 딸아이의 승리는 한국 사회의 승리였다.
나는 아직도 그 날 밤의 공포의 2시간의 사건을 딸아이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어미의 수훈이므로 내 가슴에 묻어두는 일로 족하다. 하긴 한국의 자식 가진 어미가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인들 못할까. 그보다 더한 일도 해냈을 것이다. 하면 된다는 의지와 용기를 주신 내 동족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약력
미주한국문인협회 이사. 수필집‘유칼립투스 나무가 있는 마을’‘롤링 힐스의 여인들’‘언덕 위의 마을’.
<정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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