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사람이 나귀를 타고 바그다드에 입성한다. 사랑을 외친다. 평화와 용서의 메시지를 전한다. 무슨 일이 발생할까. 곧 암살당하는…, 그런 사태가 혹시….
끝없이 이어지는 유혈참극이다 1,300여년 전, 그러니까 AD 680년 카르발라 전투에서 마호메트의 손자이자 시아파의 시조 이맘인 후세인이 수니파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그 원한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 스스로 몸에 피를 내는 종교행사로 굳히면서까지. 용서가 없는 것이다. 피가 피를 부르는 유혈의 복수극은 그래서 한 밀레니엄이 훨씬 지난 오늘도 그 땅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에, 중동에 온 세계의 시선이 쏠려 있다. 그 가운데 찾아온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 호사가가 상상을 해본 거다. 그 땅에 예수가 찾아왔을 때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올해도 시끄럽게 시작됐다. 전쟁과 함께 시즌이 찾아온 것이다. 일종의 가치관 전쟁으로, 사실은 아주 오래됐다. 그 해묵은 전쟁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새삼 치열한 양상을 보인 것이다.
크리스마스카드에서 종교적 메시지는 사라졌다.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 천사들, 이런 것들을 사람들은 더 이상 원치 않는다.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명작이 탄생했다. 헨델의 메시아가 나온 곳이다. 바로 그 땅에서 들려오는 소식이다.
반(反)그리스도 정도가 아니다. 그리스도 혐오증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증세가 만연해 있다. 작은 십자가를 목걸이로 달고 다닌다. 눈총을 받는다. 잘 보이려면 떼는 게 좋다. 성서적 가치관을 피력한다. 그러다간 곤욕을 당하기 십상이다.
바이블이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유럽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대세는 세속주의의 쪽이다.
월드 뱅크가 현대화를 가져온 게 아니다. 기독교다. 유럽의 반대편, 지구촌의 다른 한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역시 전쟁이 벌어졌다. 세속주의와 기독교의 전쟁이다. 대세는 그러나 기독교 쪽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의 명제가 새삼 진실로 판명됐다. 어디서. 과테말라에서다. 복음이 전해졌다. 그 복음이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면서 문화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심장한 영향을 가져왔다. 과테말라 사회가 근본에서부터 변모한 것이다.
현대화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다. 현대화란 다름 아니다. 종교적 색채를 없애는 것이다. 현대화란 그러므로 세속화를 의미한다. 진보주의가 전한 복음이었다. 그 주장이 그러나 시들해지고 있다.
기독교가 전파된다. 그 복음 전파의 속도가 빠를수록 현대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에서, 또 아시아에서 오늘 날 목도되고 있는 현상이다.
제 3세계로 분류되는 곳, 말하자면 지구의 남반부가 빠른 속도로 복음화 되면서 역세속화 현상이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앞서 지적된 과테말라가 그 예다. 브라질이 또 다른 예다.
불과 한 세대 남짓한 사이 브라질 인구의 절반 이상이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됐다. 이 같은 영적 인구분포 변화와 함께 브라질은 구조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도 비슷하다. 전체 인구의 21%에 불과하던 기독교도 숫자가 절반 선에 이르면서 그 사회는 엄청난 변화에 직면해 있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80% 이상의 미국인이 기독교도다. 특히 급증하는 종파는 복음주의로 미국인 네 명 중 한 명이 복음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기독교는 여전히 미국의 전통적 가치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세속화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다. ‘블루 스테이트’로 불리는 미국 내 일부지역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외쳐지는 주장이다. 종교에서 해방되어야 평화도, 진보도 있다는 주장이다. 그 세속화의 복음이 그러면 왜 가짜 복음으로 전락하고 있을까.
“지적 문제가 아니라 도덕문제에 있어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 종교학자의 지적이다. 그 실패의 전형을 기독교 전통을 상실한 채 방황하고 있는 유럽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도 크리스마스는 시끄럽게 찾아왔다. 그리고는 곧 묵은 달력 속으로 사라졌다. 파티가 끝난 것이다. 허전함 같은 것이 엄습한다. 시끄러운 잔치 뒤의 허탈감인가. 다시 한 번 달력을 뒤적인다. 그리고 새삼 되묻는다.
예수가 저 증오의 땅, 유혈의 땅에 다시 오면 무슨 일이 있을까. 그 땅에 더 이상 총성이 들리지 않을까, 아니면…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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