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위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난다. 가장 큰 주위의 영향으로는 가정환경, 학교교육, 사회 경험을 들 수 있다. 어떤 사람의 인품이나 성격, 실력 등은 주위환경에서 부단히 영향을 받으면서 지내온 경력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가정환경의 영향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직업이다. 예외가 많기는 하지만 부모가 의사이거나 가족 중에 의사가 있는 집안에서 의사가 많이 나온다. 교육자의 집안에서 교육자가, 목회자의 집안에서 목회자가, 변호사의 집안에서 변호사가 많이 나온다. 부모가 정치인이면 자식이 정계로 나가는 경우가 많고 부모가 사업을 하면 자식이 사업가로 성공하는 예를 우리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직업이 대를 이어 계승되는 것은 집안의 유전적 요소도 있고 이미 다져진 기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교육적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직업을 보고 듣고 생각하면서 자라나는데 부모가 성공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할 때 부모를 자기 삶의 모델, 즉 롤 모델로 삼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롤 모델은 가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스승이 롤 모델이 되기도 하고 사회경험을 통해 훌륭한 인물이나 사회의 선배 또는 상관이 롤 모델이 되기도 한다. 좋은 롤 모델은 한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좌표와 같은 것이므로 인생에서 훌륭한 부모나 스승, 선배 또는 상사를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반대로 이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롤 모델은 반드시 주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디에서든지 찾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의 일화에는 이런 롤 모델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존 F. 케네디를 롤 모델로 삼아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나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들 가운데는 역사상 유명한 인물에 감명을 받아 자신을 성장시킨 사람들이 많다.
요즘 한국에서는 한국사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역사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국민교육적 면에서 이런 드라마의 영향력이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주몽’의 경우 한국인들에게 민족애와 자주사상을 심어주는 롤 모델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역경을 헤치고 나라를 세우는 개척정신은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비즈니스를 창업하거나 불경기를 이겨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역사 드라마는 부정적인 역사보다는 긍정적인 역사를 소재로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 한인사회는 미국속의 이민사회라는 특수성 때문에 2세들에게 보다 구체적인 롤 모델이 필요하다. 한인이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서 이 사회에서 어떻게 성공을 이루고 얼마나 사회에 기여하는가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연조가 깊어감에 따라 각계에서 이런 롤 모델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첨단산업을 이끌고 있는 사업가, 미국정치에 뛰어들어 활약하고 있는 정치가, 스포츠계와 예술계의 정상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물 등 미국 뿐 아니라 세계를 놀라게 하는 한인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한미 FTA 협상의 미국측 대표단에 한인이 3명이나 포함되어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미국의 외교전선에서 활약하는 이런 사람들도 자라나는 세대에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최근 미국 CBS-TV의 인기 프로그램인 서바이버 게임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하여 100만달러의 상금을 탄 한인 2세 권 율씨는 “코리안 아메리칸 젊은이들의 롤 모델이 되려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서바이버 최종 우승자가 된다는 것은 최고의 인내와 체력, 담력, 기지가 요구되는 일이다.
한인 2세들이 모두 그와 같이 우승자는 될 수 없겠지만 그가 보여준 것처럼 최악의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승리하는 집념과 노력은 충분히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롤 모델은 롤 모델이 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 지금 각계에서 앞서가고 있는 한인 1세들이 명심해야 할 덕목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기영> 뉴욕 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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