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술품 경매시장을 보면 좀 미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치솟고 있다.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는 지난 달 뉴욕에서 단 하루동안 4억9,190만 달러어치를 판매,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올해 전세계의 미술품 거래는 3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미술계는 추산하고 있다. 새로운 부자들, 젊은 부자들, 중국과 인도의 부자들이 석유와 금을 대체할 새로운 투자대상으로 미술품을 점찍으면서 뭉칫돈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I’로 지난 5월 화장품 재벌 에스티 로더의 아들인 로널드 로더가 1억3,500만달러에 사들였다. 그전까지 세계 최고가 작품은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으로 2004년 뉴욕 소더비에서 1억416만8,000달러에 낙찰됐다. 이런 숫자들은 우리의 현실과 너무 멀어서 도무지 얼마나 큰 돈인지 솔직히 감도 잘 안 잡힌다.
미술품 못지않게 뜨거운 경매시장이 와인 마켓이다. LA타임스는 이달초 베벌리힐스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불과 몇시간 만에 50만 달러어치의 와인을 사들인 29세의 중국 청년부호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그는 오래된 희귀 와인을 취급하는 경매장들을 찾아다니며 줄잡아 한달에 100만 달러이상을 와인에 투자하고 있다. 그의 주위에는 이런 친구들이 많아서 경매장에서 만나면 서로 경쟁적으로 가격을 올리고, 누군가 사들이면 함께 모여 파티를 열고 한번에 수만 내지 수십만 달러어치의 와인을 맛본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 때문인지 요즘 와인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오래된 와인은 부르는 게 값이고 특히 프랑스 보르도와 버건디의 빈티지 와인 가치가 급상승, 불과 몇년사이 최고 20배까지 올랐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2001년에 병당 3,759달러였던 1945년산 무통 로실드가 최근 한 경매에서 1만337달러에 팔리는가 하면 1947년산 슈발 블랑은 8,500달러에 거래되었으며, 로마네 콩티, 르팽, 오손 등 병당 수천달러에서 1만달러가 넘는 와인들이 수두룩하다. 작년 여름 라스베가스에 갔을 때는 프랑스식당 ‘오레올’의 와인리스트에서 1900년산 페트뤼스가 1만4,000달러에 올라있는 걸 본 적도 있다.
도대체 그 많은 돈을 주고 부자들이 사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간이 빚어낸 희소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905년에 피카소가 창조한 예술, 1900년 여름 햇살 속에 익은 포도의 맛, 즉 시간을 붙잡아맨 작품을 돈으로 환산하니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됐을 때 기꺼이 지불하는 것이다. 피카소가 꼭 100년후인 2005년에 ‘파이프를 든 소년’을 그렸다 하자, 2000년산 샤토 페트뤼스가 나왔다 하자, 아무도 거기에 1억달러니, 1만달러를 지불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작가 김아타(본명 김석중)는 찰나의 기록인 사진에 시간을 넣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그는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광장을 8시간 이상의 노출작업으로 찍었다. 이렇게 하면 고정된 건물만 남고 터질듯 넘쳐나던 자동차와 행인 모두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린다.
그는 또 두 남녀의 섹스 장면을 1시간 넘는 노출로 포착한 작품을 발표했다. 격렬한 사랑의 장면도 종국에는 희미한 자태로 남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시간 앞에 덧없는 인간사를 보여준 것이다. 그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장시간의 카메라 노출을 통해 움직이는 군상의 모습을 결국은 상쇄시켜 없애버린 작업”이라며 격찬해 마지않았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신간 ‘부의 미래’에서 부를 창출할 세가지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시간’을 꼽는다. 그것은 ‘대량시간’이 아닌 ‘개인시간’이다. 대량생산 시대였던 지금까지는 대량시간(mass time)의 개념이 지배했지만 이제는 출퇴근 시간과 관계없이 생산량만 채우면 돈을 벌 수 있는 개인시간(personal time)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시간은 덧없기도 하지만 무한한 가치를 지닌 무형의 재산이기도 하다. 그렇게 소중한 나의 시간, 너의 시간이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다. 2006년이 가고 2007년이 온다. 시간은 가기도 하지만, 오기도 하는 것이다. 가는 시간은 붙잡을 수 없어도 오는 시간은 잡아둘 수 있다. 가치를 제대로 활용한 시간은 영원히 남는다. 와인 한병이 익어간 시간처럼, 그림 한점 속에 남은 시간처럼, 사진으로 찍힌 시간처럼… 그 시간들이 지금도 나를 스쳐 흘러간다.
정숙희 부국장·특집 1부 부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