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안보리서 단독 후보로 추천되어 사실상 유엔사무총장에 선출된 후, 전임자 코피 아난과 3개월 동안 인수인계 작업을 펴오던 반기문씨가 14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취임 선서식을 갖고 제8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반기문 차기 총장은 내년 1월1일부터 공식 임기가 시작되어 5년 동안 세계 평화의 전당인 유엔을 이끌게 된다.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15년 만에 북핵 위기, 경제적 어려움, 도덕적 타락에 빠져있는 한국에 민족적 자긍심과 긍지를 심어준 일대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반기문씨는 베테랑 외교관으로 근 40년 동안 외무부 관리로 봉직한 성실한 일꾼으로 평가받았으나,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생소한 인물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막강한 재력과 권력이라는 배경을 가진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유엔사무총장으로 발탁되는 줄 알았지, 반 장관은 거론되지도 않았다. 더 소급해 올라가 보면, 한국에는 지명도나 능력 면에서 유엔사무총장 감이 얼마든지 있다. 홍석현씨 말고도 김민석씨가 꿈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고, 자격과 인품을 따지자면 이홍구 전 총리 겸 주미대사나 이부영 전 국회의원도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인으로 활동 할 수 있는 훌륭한 재목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부영씨 같은 분은 더러운 정치판에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할 것이 아니라, 외교계에서 활동을 했더라면 대한민국의 위상은 물론 다그 함마슐트나 우탄트 같은 세계인으로 대성 할 수도 있었다는 개인적인 아쉬움을 갖고있다.
그렇다고 새해 ‘세계의 재상’으로 힘찬 출발을 하는 반 총장을 폄하하거나 비교하자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세상은 역설적이어서 “살고싶은 사람은 죽고, 죽고 싶은 사람은 산다”는 속담처럼 세상 만사가 하고싶다고 되고, 하기 싫다고 해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행치 마을이 고향인 반 씨는 그곳의 정기를 듬뿍 받고 자란 것 같다. 일찍이 충주고등학교 학생 대표로 미국을 방문해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후 외교관의 꿈을 키워 오늘의 그가 있게된 것이다.
관운을 타고 나, 70년 대 초, 외무부에 들어간 이후 초년병 시절 유엔대표부 1등 서기관, 국제연합 과장을 맡으면서 유엔과 인연을 맺었으며, 이어서 북미 국장, 주미 공사, 유엔 총회 의장 비서실장 등의 직책을 거치는 등 ‘미국 통’으로 알려진 분이다. 외통부 장관을 하면서는 ‘4강 외교’에 주력했다. 신사(紳士)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모나지 않고 깨끗한 성격은 ‘처세술’에 능하다거나 ‘예스 맨’ 또는 ‘미끄러운 뱀장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지니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온건 합리주의자로, 집에서도 함부로 넥타이를 풀지 않을 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재주부리지 않는 ‘일 벌레’라는 또 다른 별명은 외통부의 베스트 맨으로 존경을 받았고, 세계 외교관들과의 좋은 관계와 인맥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밑바탕이 되었다. 성실하게 살면서 평생 한 길을 걸어 온 사람이 잘 되어 성공한 모습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한국은 유엔의 최대 수혜자다. 1950년 6.25 때 유엔 안보리에 결의에 의해 세계 16개 연합 국가가 참전, 공산군의 남침으로부터 백척간두의 대한민국을 구해준 은인이다. 또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도 유엔의 권고로 탄생했다.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인식, 반 총장도 “한국민에게 유엔의 깃발은 미래에 보다 나은 삶의 상징이었다.”고 연설한 바 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 10월 24일 유엔의 날은 공휴일이었을 만큼 귀한 기념일이었다. 역경을 딛고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룩한 나라 출신 반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취임은 더 뜻이 있고 경사스러운 일이다.
반 씨가 12살 때(1956년), 초등학생 대표로 함마슐트 유엔사무총장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한국민을 도와 달라.”고 메시지를 낭독한 일도 있다니, 반 총장과 유엔의 인연은 남 다른 데가 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탄생은 개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 경사이기도 하다. 192개 회원국과, 유엔 직원 1만 6천 여명을 거느리고 9만 2천 명의 유엔 평화유지군 최고 사령관으로, 권위 면에서는 교황에까지 비유되는 막강한 파워를 지닌 유엔사무총장 자리에 한국인이 수장으로 앉게 되었다. 그러나 영광은 잠시, 그의 앞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유엔 개혁, 빈부격차, 인종갈등, 지역분쟁, 환경문제 등 첩첩산중의 난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우선 꼬일 대로 꼬인 북핵 문제의 해결이 시급한 과제이다. 필요하다면 평양을 방문하겠다는 그의 노력이 결실을 보기 바란다. 김정일 정권은 밉지만, 북한 동포에게는 연민의 정을 갖고 대해야 할 것이다.
반기문씨는 한국인 사무총장이지만, 공평무사한 세계의 사무총장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에는 ‘황우석’ 교수만 있지 않고 ‘반기문’도 있다는 것을 보여 달라. 유엔이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해, 자신과 조국의 명예를 드높이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끝맺음하라고 간절히 당부하고 싶은 심정이다.
논설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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