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여년전 스칸디나비아의 해적 바이킹이 서부유럽을 휩쓸수 있었던 원동력은 두 가지였다. 기동성 뛰어난 배를 제조한 항해술이 기술적 뒷받침이었다면 보다 본질적인 것은 거칠 것 없는 용맹성이었다. 바이킹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발할라’라고 불리운 천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후 전투의 여신 발키리의 인도로 영원한 향연을 즐길 수 있는 발할라로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삶의 의미를 현세보다 내세에 두는 것은 바이킹만이 아니다. 그들보다 1천년 전 사람들도 그랬고 1천년 후인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1만여개 종교의 공통점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다음 생에 갈 수 있는 낙원에 대한 약속이다. 고달프게 매일을 견디어가는 사람들에게 천국은, 내세는 커다란 위안이다. 천국이 실존한다고 믿는 미국인도 90%에 달한다.
천국은 과연 있을까. 저 은하계 넘어 어디쯤 일까. 수천년전 고대인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가졌던 같은 질문을 최첨단 과학이 지배하는 21세기에 들어선 현대인들도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다. 오히려 세상이 복잡해지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면서 이 영적인, 그래서 추상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늘어간다. 갈수록 극성스러워지는 상혼에 밀려 그 참뜻을 잃어버린지 오래된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더욱 그렇다.
지난해 이맘때 ABC-TV의 크리스마스 프로가 화제를 모았었다. ‘천국: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갈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바바라 월터스가 이끌어간 2시간짜리 특집이었다. 무거운 질문에 대해 가벼운 해답조차 시원하게 못 준 탓인지 화제만큼 호평은 못 받았지만 어느새 70대 중반에 들어선 유명 앵커우먼 월터스가 전쟁중인 중동 뿐 아니라 히말라야의 산자락까지 돌며 삶의 본질적 의미를 찾아나선 1년에 걸친 여정의 결과였다.
성직자에서 과학자, 명사와 보통 사람들, 가사상태에서 천국을 보았다고 믿는 사람과 모든 것은 허구라고 단언하는 무신론자까지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월터스는 물었다 : 천국은 생의 의미를 더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신화인가. 아니면 정말 실존하는 곳인가. 무신론자를 제외하곤 종교에 상관없이 이 생에서 모든 게 끝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국에 대한 시각은 제각기 달랐다.
가장 구체적 시각을 가진 종교는 모슬렘이다. 12억에 달하는 그들의 천국은 평화나 기쁨 같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안락한 집, 강이 흐르는 정원, 비단 카우치에 기대어 아름다운 처녀들과의 섹스,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술 등 모든 쾌락을 누리는 호사…월터스가 이스라엘 감옥에서 만난 핸섬한 팔레스타인 청년도 이같은 낙원에 대한 약속을 믿고 있었다. 그는 17살 때 유태인을 죽이기 위해서 붐비는 거리에서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하려 했다고 당당히 말한다.
전 세계 21억 기독교인들의 천국은 눈물과 슬픔과 고통이 없는 곳이다. 그들의 천국은 쾌락이 아닌 신과 함께하는 평화와 평온이 있는 곳이다. 영혼 뿐 아니라 육체도 다시 살아나 먼저 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쁨의 재회를 가질 수 있는 곳이다. 누구나 원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한 추기경은 천국에선 대머리를 면하고 싶다고 했고 월터스는 그처럼 평온하다면 좀 지루하지 않겠느냐고 반문도 했다.
제각기 다른 버전이지만 천국이 지금 세상보다 좋은 곳이라는 확신은 같았다. 그러나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는가에 대해선 상당히 강경하다. 복음주의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못박고 아랍의 청년은 모슬렘이 아니면 지옥에 간다고 단언한다. 다행히 다른 종교도 존중한다고 열린 마음을 보인 미국인이 79%나 되었다.
천국을 강조하지 않는 종교는 불교다. 3억5천만 불교도들에게 천국은 영혼의 마지막 쉼터가 아니다. 중생은 끊임없이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사상을 믿는다. 즐거움과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는 열반의 상태에 이를 때까지 환생은 계속되고 내세에 짐승으로 태어나지 않으려면 선하게 살아야 한다. 현세의 행동이 내세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천국을 찾아 나선’ 이 특집은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는다. 천국에 관한 탐구는 결국 생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라는 결론을 암시할 뿐이다. 두 사람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천국이 있다고 믿으면 현재의 생활이 달라질 것”이라며 그래서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면 “천국을 믿는 것 자체가 천국일 수 있다”고 베스트셀러 작가 미치 알봄은 말했다. “삶의 목적은 행복하기 위해서이고 행복하기 위해선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쳐 준 것은 달라이 라마다.
지난 한해 우리는 제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다. 보람과 고통,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제각기의 다른 길을 걸어와 제각기의 다른 문제들을 가슴에 안은 채 다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으며 한해의 마지막에 서 있다. 잠시 스스로에게 묻고 그 해답을 깊이 생각해 볼 때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선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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