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진 별들… 누구를 기억 하십니까’-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을 맞아 AP통신이 올해 타계한 주요 인물 30인을 선정했다.
대부분 낯이 익다. 동시대를 함께 살다 간 때문일까. 그중 그러나 두 사람이 특히 눈을 끈다. 진 커크패트릭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다.
퍽 개인적인 소회지만 이 두 사람의 사진을 대하는 순간 한 세대 전, 그러니까 한국이 카키색 권위에 짓눌려 있을 때, 그 시절의 안타까움 같은 것이 아련히 떠올려진다. 그리고 역사라는 게 뭔지 새삼 되묻게 돼서다.
“독재체제는 권위주의와 전체주의형 두 가지로 나뉜다. 우파의 권위주의형 독재체제는 민주체제로 전이될 수 있다. 전체주의형, 다시 말해 좌파 공산독재체제는 그 가능성이 없다….”
1979년 ‘커멘터리’지에 실린 한 에세이 내용이다. 제목은 ‘독재와 이중기준’, 논자(論者)는 커크패트릭이었다. 카터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공격하고 나섰다. 좌파 독재에는 침묵하면서 우파 권위주의형 독재에게만 시끄러운, 이중기준 적용 외교의 맹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친미독재체제를 옹호하기 위한 싸구려 이데올로기로 들렸다. 군사독재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고 있는 좌파 혁명이 마치 시대정신인 양 받아들여졌던 그 때 그 시절이었으니까.
그리고 한 세월이 지났다. 역사는 결국 커크패트릭의 손을 들어주었다. 2006년 12월 어느 날 공교롭게도 그녀와 불과 사흘 차이로 타계한 피노체트의 일생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독재자는 보통 두 가지 사실을 기준으로 평가된다. 하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가다. 다른 하나는 독재가 얼마나 번영을 가져왔는가다.
유토피아 건설을 위한 학살은 정당화 될 수 있다. 공산주의 이론이다. 때문에 공산전제주의체제 하에서 유독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스탈린은 3,000만 이상을 학살했다. 모택동의 중국에서는 7,000여만이 희생됐다.
대학살을 통해 그러면 유토피아가 이룩됐나. 답은 결단코 ‘노’다. 엄청난 인명만 희생시켰을 뿐이다. 그 체제는 그리고는 붕괴됐다. 역사의 심연 속에 가라앉은 것이다.
3,200여명으로 집계된다. 피노체트 치하에서 희생된 사람 숫자다. 고문 희생자까지 합치면 그 수치는 더 불어난다. 그렇지만 공산독재에 비하면 그 숫자는 미미하다고 할 정도다.
1973년 쿠데타(사실은 짧은 내전)를 통해 집권한 피노체트는 칠레 경제를 궤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국민투표에 승복해 1990년 권력을 내놓고 물러났다. 민주화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이점에서 피노체트는 좌파 전체주의형 독재자와 구별된다.
관련해 뒤늦게 나온 말이 ‘피노체트 마르크시스트’다. 여전히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한다. 그러면서 시장경제를 추구한다. 모택동의 좌파 이데올로기에서 한걸음 벗어났다. 그리고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 오늘 날 중국의 모습이다. 체제변형을 꾀함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그렇다고 피노체트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 한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어도 그 죄과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3,200여명의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켰으니.
포인트는 그게 아니다. 독재자들을 평가하는데 있어 지금도 여전히 이중기준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중기준 적용 정도가 아니다. 그 도가 넘어 기형적으로 뒤틀렸다고 해야 하나. 한국에서 목도되는 현상이다. 그 죄과가 엄청나다. 그러나 언급조차 없다. 아니, 의도적으로 망각된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찬양을 하면서 정상회담을 못해 안달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300여만이 희생됐다. 거기다가 6.25 피해자를 합치면 줄잡아 700만이 희생됐다. 인구수에 비할 때 학살부문에서 스탈린, 모택동을 제치고 단연 세계 1위다. 누가. 김일성-정일 체제다. 어떤 외국의 침략세력보다도 가장 많은 한인을 학살한 게 그 바로 그 체제다.
대학살을 통해 그러면 무엇을 이룩했나. 노예국가다. 전체 인민이 노예가 돼 오직 한 독재자를 섬기는 체제 말이다. 그 체제가 경제를 파탄시키면서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악령의 체제인 수령절대주의를 결사 옹위하기 위해서다.
“사상 최악의 독재자다. 세계가 그런 체제를 유지시키려 들다니…. 그 어리석음에 좌절을 느낄 정도다.” 영국의 북한전문가 재스퍼 베커의 한탄이다. 그가 보는 북한문제는 외교의 문제가 아니다. 인도주의의 문제이고, 도덕의 문제다. 인류 양심의 문제다.
그 체제를 종식시킬 방안은 무엇일까. “먼저 김정일을 반(反)인류범죄로 기소하는 것이다.” 베커가 내린 처방이다. 그런 사태가 가능할까. 새해를 바라본다. 새 일을 기대하면서.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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