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의외로 많다. 증상이 다양하다. 긴장, 짜증, 두통, 자괴감, 불안, 공포, 열등감, 소외감, 무기력…하이텍 세상에 사는 압박감에서 오는 현대병중 하나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이 급속히 컴퓨터화 된 9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니 이젠 어지간히 면역이 되었을 법한데 12월이 되면 독감처럼 다시 사방에 만연된다. 12월은 쇼핑의 계절이고 넘버원 인기상품은 몇 년째 최첨단의 하이텍 제품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장난감에서부터 셀폰, 디지털 카메라, DVD플레이어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그냥 돈만 치르면 되는 것이 없다. 조립하고 갖가지 성능 익히고…사용하게 될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특히 성능 익히기는 입시공부 만큼이나 힘드는 일이다. 영어로 된 사용안내서를 아무리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미국인도 허다하다.
손바닥 보다 작은 셀폰에 온 세계를 넣어가지고 다닐 수 있는 이 하이텍 시대에 DVD녹화는 커녕 앤서링 메시지 바꾸기조차 서툰 ‘기계치’라도 혼자만 뒤떨어진 듯 낙오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을 듯하다. “셀폰과 컴퓨터 다루기는 내게도 늘 스트레스를 준다”는 존 마에다교수의 고백에 위안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MIT의 컴퓨터공학 교수다.
이처럼 컴퓨터 전문가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최신의, 최고 성능의 기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 대답을 마에다 교수가 이렇게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필요이상의 기능을 가진 기계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많은 하이텍 제품이 너무나 다양한 기능을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제 기능을 사용하기 힘든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이기도 한 마에다교수의 키워드는 ‘Simplicity, 단순성’이다. 이 하이텍 범람시대에서 상품의 디자인이든, 기계의 기능이든, 비즈니스의 조직이든, 최상의 것을 건져내기 위해선 단순화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도 복잡한 제품에 압도당할 것이 아니라 단순한 제품을 당당히 요구하라는 것이다.
하이텍뿐이 아니다. 모든 일상의 업무 역시 끊임없이 바뀌면서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영어 한마디 모르는 노인들이 그 난해하게 바뀐 메디케어 혜택을 받고있는게 신기하게 느껴지고 대학생의 학자금 보조신청 절차는 전공과목 시험보다 더 까다로워 보인다. 우리가 살고있는 오늘은 정보의 홍수 시대다. 알아야 할 것, 알아야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나날이 엄청나게 많아지는데 실제 우리가 알 수 있는것, 이해하여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적다. 그 차이가 너무 크게만 느껴져 또 좌절감에 시달린다.
이처럼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늘어가는 것이 단순한 삶에 대한 그리움이다. 헨리 소로우가 월든 호수가 통나무집에서 살았던 경험을 기록한 ‘숲속의 생활’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하잖은 일에 소모되고 있다”는 그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 단순화하라, 단순화하라.
그러나 소로우는 부양해야 할 가족도, 직장도 없었고 변동이자율 같은 ‘하잖은 일’과 씨름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의 일상은 이 하잖은 일들에 손과 발이 묶여있다. 그래서 ‘단순한 삶은 꿈일 뿐’이라고 절망된다면 마에다교수의 신간 ‘단순성의 법칙’이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 전문서적이긴 하지만 그가 제시한 10개의 단순화 법칙 중 몇가지는 일상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설명하기도 쉽다. 버려라. 정리하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라. 알면 간단해진다, 그러니 배워라. 실패를 인정하라.
가장 기본은 버림이다. 보다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단순한 삶을 얻기위해선 불필요한 것은 버려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애써 붙들어 온 것,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움켜쥐고 있는 것들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 확인해보아야 한다. 물건뿐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집착, 지난날에 대한 미련, 지식에 대한 욕심까지도 하잖은 것을 쳐내야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하며 살 수 있다.
우리의 생은 긴 여행에 비유된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에 실려 끊임없이 변하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먼 길을 계속 가려면 가졌던 것을 버리고 붙잡았던 것을 놓아보내야 한다. 그래야 새것을 받아들일 빈 손, 빈 마음, 빈자리가 마련될 수 있다.
새로 시작되는 월요일을 위해 준비하는, 일요일 밤 같다는 12월은 버리는 용단을 내리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보다 단순한, 그래서 보다 의미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새해를 맞기 위해서다.
rokpark@koreatimes.com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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