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간 수출액이 3,000억달러를 넘어섰단다. 1억 달러 수출달성이 지상의 목표였던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는 감격스러운 일이다. 금성 테레비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나 미국의 제니스나 일본의 소니의 품질을 따라가 해외로 수출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던 사람들이면 이제 제니스가 LG 소유이며 소니가 삼성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뉴스는 감개무량한 소식이다.
세탁기는 고사하고 냉장고도 어쩌다가 10년씩 된 미제 제너럴 일렉트릭을 미군을 통해서, 그것도 연줄께나 있어서 구입한 사람 빼고는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한국의 백색가전이 전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든 얘기다.
돈이 넘쳐흐르지만 갈 곳이 없어서 정부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값만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는 곳이 한국이다. 외환이 넘쳐흘러서 이제 외국에 부동산을 소유하는 규제를 거의 다 풀어가고 있다는 뉴스도 ‘달러 소지’하고 해외로 나가는 것이 죄악시 되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놀랍기만 한 일이다.
강성 노동조합의 대명사였으며 ‘춘투’때마다 울산 현대중공업의 ‘골리앗 크레인’을 점거하고 위를 벌이던 현대중공업 노조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현대중공업 노조가 10년이 넘게 파업을 안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이라는 얘기도 생소하게만 들린다. 최근에는 대림산업 노조가 민주노총을 자진 탈퇴하고 해산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세월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이제 한국은 연간 개인소득 2만 달러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유학생이고 연수생이고 방문객이고 한국인들은 이제 미국에 와서 별다른 감흥을 못 느낀다. 한국의 모든 것이 훨씬 ‘최신식’이고 눈부시게 발전하고 변하고 있으니 그도 그럴만하다.
80년대 까지만 해도 ‘문화적 충격’이란 미국의 화려함과 웅장함, 풍요로움을 목격하면서 받았다지만 요새는 거꾸로 미국사람들이 한국에 가서 받는 것이 ‘컬처 쇼크’다. 서울의 식당과 가게, 쇼핑거리를 다녀온 외국인들이 서울의 화려함과 풍요로움, 역동성에 감동하는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것이 서울, 즉 약간은 후진적이고 무언가 안정이 안되고 건설되다만 것 같은 도시인가 하면서 놀라는 것이 요즘이다.
한국의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타는 것이 이제 당연시 되고 한국의 TV 드라마가 아시아를 휩쓸고 한국의 가수와 배우들이 가는 곳 마다 최고 스타의 대우를 받는 모습은 그 이전의 한국 문화계의 위상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가히 충격적이다. 이제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가장 앞서가는 ‘거장’으로 세계 영화계에 우뚝 서고 있단다. ‘아방가르’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감독들에게만 해당되는 수식어라고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한국 영화계의 화려한 도약은 가슴 뿌듯한 소식이다.
이처럼 한국은 이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내실화와 세계화에 성공했다. 요즘 많이 쓰이고 있는 용어를 빌리자면 한국의 ‘소프트 파워’ (Soft Power) 가 엄청나게 강해진 것이다. 소프트 파워란 쉽게 말해서 그 나라의 브랜드 파워라고 보면 된다. 한 나라에 대해 외국인들이 얼마나 알고 있고 의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긍정적인지를 지칭하는 용어다.
과거에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형편없었다. 오랜 동안 삼성이 일본 브랜드라는 인식이 외국 소비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던 것을 삼성 자신이 굳이 수정하지 않으려고 한 것도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가 워낙 나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한국의 브랜드이미지, 소프트파워는 확실히 세계적인 차원이 되었다.
문제는 한국의 정부가 이처럼 일취월장하고 있는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활용은커녕 한국의 브랜드파워에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10여년 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한국의 정치가 3류라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옳았음이 증명되고 있다. 그 이후 한국의 경제와 문화계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나 브랜드 파워의 가장 큰 저해 요소는 여전히 정치다.
<함재봉> USC 한국학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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