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
고대 그리스의 어느 도시에는 유난히 강과 시내가 많아 열두개의 크고 작은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 도시의 수학자들은 12개의 다리를 모두 단 한번씩만 사용하여 A지점에서 B지점까지 갔다가 돌아 오는 문제를 풀기 위하여 백년 동안 논쟁을 벌였다고 하는데 이런 긴 논쟁을 한번에 잠 재운 수학자가 있었다. 그는 문제의 해답을 구해낸 것이 아니라 12개의 다리를 단 한번만 사용하고 A에서 B지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내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도시 전체가 매달려 풀어 내고자 한 숙제가 근본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해냈다는 점에서 머리 속 어딘가를 명쾌하게 만든다. 백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수학자가 매달려 왔던 문제 자체를 수학적 증명을 통해 참이 아닌 거짓으로 밝혀낸 셈인데 이러한 수학의 논리적 사고의 매력을 삶의 이야기에 대입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나는 퍼즐 문제를 좋아해서 가끔 내 머리와 지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논제에 매달려 속절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아이의 머리를 쥐어 박으며 공부 좀 하라고 윽박지르고서는 슬쩍 컴퓨터를 빼앗아 몰래 게임을 즐기기도 하는 말도 안되는 엄마이다. 그럼에도 왜 그것을 좋아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일수록 의외로 간단한 실마리를 찾으면 실타래 풀리듯이 술술 풀어져 나올 때의 쾌감 같은 것이 있고 또한 거기에도 우연의 법칙이 적용되어 뒷걸음치다가 답을 얻어 내는 횡재를 만나기도 하는 재미가 있어 그럴 것이다.
무릎을 탁치며 알아낸 해답이 ‘알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니네.’하고 느꼈을 때의 허망함도 있지만 아무튼 그 풀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결과가 확실히 있어 재미있다. 살아가는 이야기도 이렇게 명쾌하고 확실한 해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대부분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형체도 없는 것들이다. 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으며 나는 무엇이어야 하고 내 아이는 어떠해야 하고 누구와의 관계는 이러해야 한다는 명제가 짠짠-논리적 공식에 의해 쓸데 없는 것으로 증명 되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생각만으로도 통쾌해진다.
며칠 전 85번 프리웨이에서 미국생활 15년만에 첫 티켓을 받았다. 평소에 내 운전 솜씨로 보자면 열번은 더 떼어야 마땅하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준 친구도 있었지만 어둑해질 무렵에 라이트를 켜지 않아 잡힌 사연은 두고두고 억울하다. 억울하다는 말에 후리후리하고 잘생긴 경찰 청년은 ‘이해한다. 그러나 누가 와서 널 받을 수도 있다’면서 날 위해서 티켓을 주는 것이니 고맙게 생각하라는 듯한 태도로 유유자적하게 떠나 버렸다.
누가 와서 널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러나 어쩌랴 삶은 수학 공식이 아닌 것을. 나는 그 청년 경찰의 잘생긴 얼굴을 처다 보는데 정신이 팔려 기회를 놓쳐 버렸다. 유난히 빨리 다니는 것을 좋아해 한달 사이에 세번 티켓을 받기도 한 나의 누구는 경찰차만 봐도 놀란다. 그는 경찰차를 바퀴벌레에 비교해서 한참을 웃게 만들었는데 첫째, 보면 가슴이 덜컹한다 둘째, 엄청 빠르다 셋째, 반질반질 광택이 난다는 것이다. 나는 미국 경찰이 덩치가 좋고 제복 입은 맵씨가 좋아 섹시해 보여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었는데 한번 티켓을 받고 나니까 바퀴벌레 쪽으로 심정이 간다.
어쩌면 삶의 정수는 마음대로 될 수 없는 일들을 끝없이 증명하면서 얻게 되는 받아들임에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읽은 에리사벳 퀴블로 로스/데이빗 케슬러가 쓴 ‘인생수업’이라는 책이 있는데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저자들이 죽음을 앞둔 사람들과 인터뷰 해서 얻은 배움을 적은 책이다. 저자는 죽음은 이 삶의 가장 큰 상실이 아니고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가는 것이라고 말하며 행복해지기 위해 마지막으로 무엇인가를 시도한 적이 언제였는가? 마지막으로 멀리 떠나 본 적이 언제였는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껴안아 본 적이 언제였는가? 라고 묻는다. 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줄다리기에서 줄을 그냥 놓아 버리듯이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고 즐기라고 충고한다. 한번쯤 읽어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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