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그 흉포한 곰은 동면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한 컷의 시사만화가 전하는 메시지다.
민주주의의 이상은 멀어지고 음침한 전체주의의 과거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 제국주의의 야망을 좀처럼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옛 소련의 영광을 다시 찾으려는 푸틴의 러시아에 대한 풍자다.
한 컷의 만화다. 그 제한된 공간에 그렇지만 수퍼 파워, 그것도 세계 유일의 수퍼 파워 미국이 처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소외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무시되고 있고, 중동지역에서는 무기력 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고립돼 있다.
또 들려오는 소식은 어둡기만 하다. 이라크는 말할 것도 없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소말리아에서도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이슬람이스트 세력의 반격이 한층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북한은 핵실험을 자행했고 이란은 핵보유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옛 라이벌, 소련이, 또 중국이 미국의 적으로 서서히 재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70년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미국은 최대의 외교적 시련에 직면해 있다’ ‘이처럼 미국이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도전에 직면한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관련해 나오고 있는 여러 말들이다.
동시에 한 현상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포퓰리즘을 넘어 데마고그의 시대를 맞고 있다’-. 제 3세계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정치적 현상이다. 반(反)미가 외쳐진다. 중동지역의 경우는 하나가 더 첨가된다. 반(反)유대주의다.
반미, 반유대주의는 사실 포퓰리즘의 고정 메뉴였다. 제국주의자 양키를 매도하라. 그러면 표가 몰린다. 그래서 반미는 대권을 겨냥한 제 3세계와 또 일부 유럽국가 정치인들의 단골 메뉴였다.
그 ‘레토릭’이 그런데 최근 들어 더 과격해졌다. ‘리얼리즘’이라고 했나. 이라크 문제를 보다 현실적으로 조망해야 한다. 초당파로 이뤄진 이라크그룹스터디 보고서가 구체화되면서 더 가시화된 현상이다.
“…마치 양차 대전 사이의 기간 유럽의 상황을 방불케 한다.” 한 역사학자의 지적이다. 1920, 30년대는 그야말로 말 그대로 ‘데마고그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그 당시 단골메뉴 역시 반미와 반유대주의로, 그 대표적 선동정치인은 다름 아닌 히틀러였다.
중동지역이, 또 라틴 아메리카가 맞은 오늘의 정치, 사회, 경제적 현실은 그 당시, 그러니까 히틀러, 무솔리니 등이 날뛰던 중부 유럽의 상황과 너무 흡사하다는 것이다. 소득 수준에서 그렇고, 부유한 서방과 비교되는 불만족스런 현실이 대중을 자극한다는 점도 그렇다.
현실이 몹시 불만스럽다. 그 잘못을 누구에겐가 돌린다. 그 가상의 적은 내부의 세력일 수 있다. 외부의 세력일 수도 있다. 반유대주의의 흉흉한 물결이 넘쳐흐르던 그 시절, 그 대중의 분노는 주로 유대인에게 돌려졌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별반 저항을 받지 않고 중부 유럽에서 자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반유대주의의 데마고그가 팽배했던데 그 원인이 있었다는 얘기다.
데마고그의 귀착점은 혁명 아니면 전쟁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말살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핵전쟁을 불사한다. 미국은 부패한 제국이다. 아니, 악마다, 사탄이다. 박멸할 대상이다. 중동지역에서, 라틴 아메리카에서 거침없이 쏟아지는 정치적 발언들이다. 그것도 대통령이라는 사람들이 내뱉는 독기어린 수사다.
그 수사에서, 그리고 그 선동에 환호하는 군중에게서 광적인 요소가 뚜렷이 감지된다. 때문에 보이고 있는 심각한 우려다.
“악의 세력의 거대한 반격이 시작되고 있다. 어둠의 소용돌이가 국가적 혼란을 야기시키면서 영적 마비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바빌론의 영, 혼란의 영이 미국을 강타하고 있다.”
미국이 처한 현실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 영적 추상화라고 할까. 그런 표현이다. 모호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상당히 리얼하게 들린다. 수퍼 파워로서 미국이 그 책무를 거절하고 있고 반대로 데마고그의 발언 수위는 더욱 높아지는 현실과 관련해서.
그건 그렇고, ‘포퓰리즘을 너머 데마고그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는 한국의 정치 현실에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의 발언이 더욱 더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리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뭐라 했더라.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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