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드 대학의 전 총장이었던 경제학교수 로렌스 섬머가 “20세기 전반기에는 메이나드 케인즈가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였으나, 20세기 후반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이다”라고 칭송할 정도로 경제학계뿐 아니라 국가의 경제정책 결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경제학자가 있다. 그는 지난 달 16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밀턴 프리드만이다.
내가 미국에 유학 와 1970년대 초 경제학 강의를 수강할 때 그의 ‘화폐수요이론’(Demand for Money)과 ‘영구소득가설’(Permanent Income Hypothesis)을 접한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미국경제학회의 연차대회에 참석했을 때 그가 키노트 스피커로 ‘합리적 기대원리’(Rational Expectations)를 강조하던 쟁쟁한 목소리가 지금도 새롭다.
프리드만을 20세기 후반의 거장 경제학자로 만든 그의 경제철학은 3분야이다.
첫째, 그는 ‘경제적 자유’를 제창했고, 경제적 자유가 없으면 정치적 자유도 없다고 1962년 출간한 ‘자본주의와 자유’라는 책에서 역설한다. 정부는 계약집행, 경쟁조장, 안정적 화폐구조, 책임성 없는 사람들의 보호 이상의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케인즈 경제이론이 효과적인 국민경제의 수요를 증대시키기 위하여 정부의 재정지출을 증대하여야 한다는 국가의 경제간섭을 제창하는 반면, 프리드만은 국가의 간섭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자유시장’을 최대한 확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농산물 가격보조, 관세 및 수입쿼터, 렌트 통제, 최소임금, 기업규제 등 정부의 국민경제간여를 적극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평화시의 군대징집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1973년에 닉슨 대통령이 이를 채택했다. 또 그가 주장한 ‘School Vouchers’ 프로그램이 일부 보급되고 있다. 그의 유명한 ‘Negative Income Tax’도 현재 ‘Earned Income Tax Credit’으로 채택되고 있으며, 최근 유럽 국가들이 그의 Negative Income Tax 사상을 그들의 세금제도에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세계경제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자유금융시장구조의 형성도 그의 자유시장주의 이론에 힘입은 바 크다. 달러가 다른 화폐와 자유롭게 거래되는 유동환율제도나 개방금융시장제도를 제창한 것도 프리드만이었다.
프리드만의 둘째 경제철학은 안정적 화폐정책이론이다. 케인즈 경제이론이 실업을 줄이기 위하여 주로 재정정책에 치중하고 있는 반면, 프리드만은 시장의 화폐유통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안정적 화폐정책이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1930년대 대공황도 연방준비은행의 억압적인 화폐정책에 책임이 있음을 역설하였고, 1970년대에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높았던 스태그플레이션이 온 것도 연방준비은행의 방만한 화폐정책이 기인한다고 비판하였다.
그의 셋째 경제철학은 국민경제의 주요부분을 차지하는 소비에 관한 이론이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저축이 올라가는 것이 일반경제이론인데, 부유한 국가일수록 국민의 저축률이 높지 않고 낮은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역설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프리드만은 ‘영구소득가설’을 1957년에 내놓았다. 일반 국민의 소비는 현재 소득수준에 의거하기보다는 수년간에 걸쳐 기대되는 영구소득 수준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일반국민은 횡재소득이 생긴다고 과소비하지 아니하며 저소득이 되더라도 저축에서 끄집어내어 어느 정도 소비수준을 유지한다는 내용이다. 이 이론으로 그는 1976년 노벨상을 받았다.
프리드만의 경제철학인 ‘경제적 자유’‘안정적 화폐정책’‘영구소득가설’ 등은 그가 활동했던 20세기 후반에 뿐만 아니라 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미국을 위시해서 세계의 경제학계와 경제정책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971년 리처드 닉슨대통령이 “나는 케인지안”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경제인들이 케인즈 경제철학을 추종하는 ‘Keynesian’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민주당원들도 프리드만의 경제철학을 신봉하는 ‘Friedmanites’라고 인정하고 있다.
<백 순> 연방 노동부 선임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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