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이란 미국정치에서 대통령이 재선에서 실패했을 경우 선거 직후부터 다음 대통령이 취임하기까지 3개월간 현직 대통령의 무력화 현상을 지칭한다. 마치 뒤뚱뒤뚱 걷는 절름발이 오리처럼 국정 운영이 어렵다는 말이다. 이런 레임덕 현상은 중간선거에서 여당이 의회의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데 실패하여 대통령이 의회 장악력을 상실할 때도 나타난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패배로 부시 대통령이 곤경에 처하게 됨으로써 이미 레임덕이 시작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는 이런 레임덕 현상이 아주 심하게 나타난다. 대통령의 파워는 취임 초에 하늘을 찌를 듯 높다가 시간이 갈수록 약화된다. 그러다가 임기 마지막 해가 되어 여야간 차기 후보가 결정되면 대통령은 거의 힘을 잃고 만다. 공무원들조차 현직 대통령보다는 차기의 유력 후보에게 더 마음을 쓰고 여당 후보는 현직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대통령과 결별 수순을 밟는다. 이래서 대통령마다 임기 말에 여당을 떠나는 탈당 사태가 발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 대선 3개월 전에 김영삼계의 압력으로 민자당을 탈당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 대선 직전에 이회창 후보의 요구에 따라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의 중간에 아들의 비리연루 사건을 계기로 새천년 민주당을 탈당했다. 대통령이 여당에서 쫓겨나다시피 탈당하는 사태는 레임덕 현상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임을 공인하는 셈이다. 그런데 요즘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이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노 대통령의 레임덕은 지금 시작된 것이 아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돌고 있다. 청와대에 소가 한 마리 들어왔는데 박정희는 “새마을 하는 농촌에 보내라”고 했다. 전두환은 “우리 친구들 다 불러 모아라”고 했다. 노태우는 “누가 본 사람 또 없지?”라고 했다. 김영삼은 “현철이에게 말해 줘라”고 했다. 김대중은 “현대를 통해 북한에 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노무현은 어찌할 바를 몰라 소의 코를 꿰어서 아직도 끌고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취임과 함께 레임덕이 되어 지난 4년간 별로 한일 없이 허송세월 했다. 굳이 한 일을 말하자면 독선과 오기로 한 코드 인사와 잘못된 정책으로 분란을 일으켰고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일을 들 수 있다. 그리하여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이 10% 아래까지 떨어지는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이런 위기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찾고 있는 해결책이 여전히 죽을 방법만 궁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기 그지없다. DJ를 만나서 무슨 꼼수를 생각하고 정계 개편을 통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장악해 보려고 하는 모양인데 이미 그런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태가 아니다. 지금 노 대통령의 처지로 볼 때 지난 4년간은 실패한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그가 실패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치지 않고 남은 1년을 성공함으로써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노 대통령 자신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남은 1년에 성공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은 무엇인가. 한 가지 길밖에 없다. 지금까지 해 온 실패의 길을 버리고 180도 바꾸어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방법뿐이다. 이제 열린우리당과 관계를 끊어 여당의 지원과 여당에 대한 부담도 없어진 마당에 바라볼 곳은 어디인가. 국민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살겠다는 꼼수를 버리고 나를 죽여 국가와 국민을 살리겠다는 살신성인의 정신에서 출발한다면 10%의 지지율은 90%의 지지율로 반전시킬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은 나를 버려야 산다. 내 고집과 오만, 나에게 맞는 코드 인사, 나의 이념을 모두 버려야 한다. 나의 정치적 영향력이라든지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는 욕심도 버려야 한다. 여당과 야당을 떠나 국민이 원하는 바에만 따르고 차기 대선구도도 국민의 뜻이 100% 반영되도록 대통령으로서 최선의 관리에 힘쓴다면 그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국민이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그 개인에 대한 배척이라기보다는 그의 행적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남은 1년을 딴 사람이 되어야 산다. 다른 사람은 어려워도 그는 자유자재로 180도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이기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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