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졸업한 후 역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따로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도 대부분이 TV 사극을 통해 역사적 사건을 되돌아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극은 역사 의식 고취에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극은 사실보다는 흥미 위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요즘 한창 인기인 ‘주몽’만 해도 극에서는 주몽이 금와의 아들로 나오지만 역사책에는 아버지뻘로 기록돼 있다. 주몽은 해모수의 아들이고 금와는 해모수의 배다른 아들 해부루의 아들뻘이기 때문이다. 소서노의 첫 남편 우태도 극에서는 행수의 아들로 돼 있으나 실제로는 해부루의 서손이다. 소서노는 원래부터 왕족이자 주몽의 친척과 결혼했던 셈이다.
한국 역사상 소서노만큼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여성도 드물다. 첫 남편이 일찍 죽는 바람에 두 아이를 거느린 과부로 늙어갈 처지였던 그녀는 주몽을 만남으로써 인생이 뒤바뀐다. 그를 도와 새 나라를 세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소서노는 고구려의 첫 왕비가 되지만 주몽이 예씨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유리가 부여에서 탈출해오자 권좌에서 밀려난다. 이 때 오이, 마리, 협보가 유리가 권력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돼 있다.
보통 여자 같았으면 뒷방 늙은이로 여생을 보냈을 텐데 소서노는 두 아들을 이끌고 남하, 백제라는 새 나라를 세운다. 그러나 소서노의 말년은 평탄치 않았다. 백제의 권좌를 놓고 두 아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져 결국은 전쟁에 이르고 소서노는 큰아들 비류의 편을 들어 둘째 온조와 싸우지만 패해 죽고 만다.
소서노 이야기는 고구려 백제 건국의 화려함과 함께 권력 투쟁의 참혹함과 무상함을 일깨워주는 경종이기도 하다. 소서노와의 싸움에서 승리, 고구려 2대 왕이 된 유리 또한 자식과 권력을 놓고 싸우다 친자식을 둘이나 죽이고 만다. 사극 ‘주몽’에서 벌어지고 있는 형제, 부자간의 권력 쟁탈전은 사실은 훗날 고구려와 백제에서 벌어질 사건을 먼저 옮겨다 놓은 것에 불과하다.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권력의 덧없음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이를 놓고 다투지만 그 결과는 그처럼 허망할 수 없다. 권력은 모든 사람이 원하지만 승자는 한 사람밖에 될 수 없다. 그 속성상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으며 권력과 가까이 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부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4년 전 이맘때 노무현 후보가 극적으로 당선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치의 새 시대가 열렸다’며 기뻐했었다. 그러나 지금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바닥을 달리고 한국에서 그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은 없다. 한때 유혈 진압으로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 노태우의 모습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고 민주 투사로서의 YS, DJ의 이미지도 퇴색된 지 오래다.
지난 중간 선거 참패 후 백악관의 분위기가 침울하기 짝이 없다 한다. 노 대통령보다는 낫지만 부시의 인기는 30% 선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고 이미 정치 사망 선고를 내리는 평론가들도 있다. 지금으로 봐서는 선거 패배의 최대 원인인 이라크도 출구가 안 보이고 영향력을 회복할 기회가 좀처럼 올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미국 정치사를 돌아보면 정치 사망 신고를 받고 부활한 정치인은 많다.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히는 링컨은 수많은 선거에서의 패배를 딛고 대통령이 됐으며 닉슨 또한 대선과 가주 주지사 선거에서 연패한 후 정계에서 은퇴했다 백악관을 차지했다. 레이건은 임기 6년차 이란콘트라 스캔들로 중간 선거에서 져 연방 상원을 내주고 한 때 ‘식물 대통령’ 소리를 들었지만 이제는 위대한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클린턴 또한 94년 중간 선거에서 대패하고 ‘때 이른 레임덕’으로 불렸으나 이를 극복하고 재선에 성공한 후 르윈스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지금 많은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정치인으로 남아 있다.
부시가 무능하고 별 볼 일 없는 대통령으로 주저앉느냐 레이건과 클린턴의 뒤를 잇느냐는 결국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물론 운도 따라줘야 하지만. 부시가 하루 속히 선거 패배의 후유증을 털고 일어나 남은 2년간 미국을 위해 바른 정치를 펴기 바란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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