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한동안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 기사가 신문에 넘쳐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과 가문의 영달은 물론이고 그의 임기 중 코리아 브랜드 제고에 기여하는 정도가 숫자로 따질 수 없게 높을 가능성 때문이다. 오늘은 어떻게 그가 그런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가를 추측해보고자 한다.
물론 1970년 외무고시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던 반 총장의 경험과 실력이 중요했음을 간과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시기와 우연이 작용되었다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필자의 고등학교 동기로 외무부에 근무했던 노희창, 장만순, 그리고 정경일도 모두 대사를 지냈고 외무 차관이나 차관보를 역임했기에 실력이나 경험으로는 반 씨와 비슷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비슷한 자격자들이 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동창생들은 현역 외교관이 아니었다. 또 특히 노무현 정부가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밀고 있던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순전히 타의에 의해 그 꿈을 접지 않으면 안 되었을 당시 외무장관 자리에 반 씨가 앉아 있었다는 사실도 중요하고 홍 씨의 낙마로 반 씨를 내세워야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 심복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추천도 반 씨 선택에 큰 힘을 실어주었을 듯 하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반 사무총장의 탄생에 수훈갑을 한 사람들을 꼽자면 이건희, 이회창, 홍석현, 그리고 김대중 제씨들이 있다. 삼성의 이건희 씨가 이회창 대선 캠프에 불법 선거자금 몇십 억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으로 자기의 처남인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김대중 정부 시절 안기부의 정재계 주요 인사들에 대한 비밀 도청계획 아래서의 녹음 테이프에 생생하게 잡혀있다는 것은 보도된 대로이다. 역사에 있어서 가정은 금물이라지만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면 반 씨의 절묘한 ‘행운’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만약 김대중 씨가 역대 정권으로부터 내려오던 안기부의 도청을 중단시켰더라면… 만약 이회창 씨가 삼성의 정치헌금을 거절했더라면… 만약 홍 씨가 돈배달 역할을 거절했더라면… 아마도 홍석현 씨는 지금 유엔 사무총장 공관의 수리 때문에 월도프 아스토리아의 호화 객실을 임시 거처로 쓰고 있으며 방탄유리로 된 리무진에 24시간 그림자 경호를 받는 위치에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인 유엔 사무총장 등장의 또 하나의 변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사무총장이던 이종욱 박사의 급작스런 병사 또는 과로사였을 법 하다. 사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유엔 산하기관의 수장들을 선택하는 과정에는 지역과 국가 안배의 관습이 있는 듯하다. 예를 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국으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미, 러시아, 영국, 불란서, 중국은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자국민을 내세우지 않는 전통이 있다. 주로 약소국가들에서 사무총장이 나왔으며 세 차례는 유럽, 한 차례는 아시아, 한 차례는 남미, 그리고 두 차례는 아프리카 출신들이었다. 또 WHO 같은 주요 기관의 사무총장이 유엔 사무총장과 같은 국적이라면 지역 안배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에 이종욱 박사가 아깝게 순직하지 않았더라면 반 씨가 코피 아난의 후임이 되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다.
좌우간 시기와 우연이 절묘하게 들어맞은 게 반 총장의 경우인 듯하다. 반 총장이 푸틴을 만나러 갔을 때 직접 그에게 다가가서 말할 수 있었는데도 접견실에 늘어서있던 러시아 기자들에게 먼저 주의를 돌려 러시아어로 인사한 것을 가지고 어떤 러시아 기자는 그가 지나치게 언론을 의식하는 것 같다고 비꼰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처럼 1월1일부터 시작되는 그의 임기는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어항 속의 삶’이 될 것이다. 그 앞에 쌓여있는 난제들이 너무나도 많아 정말로 개인 시간을 가질 여유가 전혀 없는 나날의 연속일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찬사보다는 비난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수단의 다퍼 지역에서 모슬렘 수단 정부와 그 정부의 민병대로부터 2, 3년 동안 학살, 강간 등 비인도적 만행을 당해온 200여 만의 난민 문제 등 그의 잠을 설칠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혹시 김정일이 급작스럽게 죽든지 친중세력의 쿠데타라도 일어나서 북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일이 있게 되거나 북한 인권상황이 개선되든지, 또는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반 총장은 노벨 평화상을 바라보게 될 수 있을는지 누가 알랴.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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