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평(아동극작가
내 자서전(自敍傳)과 네번째 수필집 발간을 위해 한국으로 가져갈 자료를 복사하기 위해 Kinkos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토요일 한낮인데도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토요일이면 복사하러 온 사람으로 가게 안이 복작거리는 주말인데 말이다. 내가 복사기에 매달려 한참 동안 복사를 하고 있을 때 겨우 젊은 여자 하나가 들어와 칼라 복사기 쪽으로 가서 복사를 하기 시작한다.
내가 많은 분량의 복사감과 씨름하는 모습을 본 아랍계로 보이는 검은 머리의 점원 아가씨가 내게 다가와서 도와줄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도와주기를 자청하는 서비스 매너(service manner),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나는 복사한 것을 적당한 규격으로 자르면서 시대변천(時代變遷)이 가져온 변화를 떠올렸다. 15년 아니 10년 전만 해도 시장바닥같이 북새통이었던 Kinkos! 많은 인쇄소의 문을 닫게 했던 Kinkos가 이제 컴퓨터의 발달과 흑백과 칼라 복사기의 대량생산으로 인한 가격인하로 웬만한 집에는 칼라 복사기와 스캐너(Scanner)를 갖고 있기에, 24시간의 영업시간을 반으로 줄이더니 끝내는 운송회사인 Fedex에게 흡수되고만 시대변천의 빛과 그림자를 실감했다.
한편 컴퓨터의 스캔 및 칼라 프린트 기술이 많은 사진관을 사라지게 하더니 이제 디지탈 카메라와 셀폰에 장착(裝着)된 카메라가 지금까지 우리들 입에 오르내리던 유명 카메라들을 한갖 골동품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 디지탈 카메라의 출현과 보급이 광도(光度) 100에서 200등으로 발달해 가던 필림의 생산을 줄이든지 필요없게 만들고 말았다.
한때 카메라의 자존심이었던 독일의 라이카 카메라! 이 라이카의 빛을 그림자로 퇴색(退色)시키듯이 나타난 일본제(製) 니콘, 미놀타, 그리고 캐논 카메라! 어쩌다 일본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렌즈광도 2.0인 니콘이나 캐논 같은 묵직한 카메라를 어깨에 매고 공항 입국장(入國場) 문을 들어서는 그 여행객이 빛나는 훈장을 어깨에 매달고 오는 듯 그렇게 부러워 보이던 그 시절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되고 만 것 같다. 그리고 내가 10년 전까지 미국 그로서리(Grocery) 가게를 운영했을 때 연휴철을 맞으면 카운터 앞 진열대에 걸어 놓은 코닥이나 후지필림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던 그 때와는 달리 디지탈 카메라의 출현으로 그 같은 필림생산사업은 이제 사양길에 접어 들고 말았다.
레이저 광선(光線)에 의한 복사기의 발전으로 인쇄기의 총아(寵兒)였던 탱크같이 육중한 독일의 하이덴 베르그 윤전기(輪轉機)마저도 고철이 되어가는 시대가 되었고, 세계 활판(活版) 역사의 자랑거리였던 우리의 팔만대장경이 합천 해인사(海印寺)의 그늘진 창고에서 한갓 유물로 잠자고 있는 ‘역사변천’이란 수레바퀴의 흐름을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좀 과장(誇張)된 표현인지는 몰라도 방대한 식민지의 점유로 그들 영토에는 해질 날이 없다던 대영제국(大英帝國)도 이제는 그림자 속에 저물었고, 로마제국의 그 위세도, 찬연했던 그리스의 문명도 빛을 잃고 말았고, 이들 나라의 쇠퇴에 이어 금세기(今世紀)의 밝은 태양으로 떠오른 미국마저도 이제는 2조억이란 세계 최고의 달러 보유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강력한 빛 속에 차츰 그 빛을 잃어가고 있음을 우리는 현실로 실감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변천의 수레바퀴의 돌아감을 멈출 수 없듯이 우리는 또한 인생류전(人生流轉)의 흐름을 막아설 수 없는 것이다. 한때는 바람을 잔뜩 머금은 바람개비처럼 신나게 돌아가던 우리 1세대가 이제는 가을 강변의 갈대같이 하얗게 늙어가고, 우리들의 2세들도 감나무 잎사귀에 멍이 들듯, 고무공같이 팽팽하던 얼굴에 검버섯이 피기 시작하는 세대(世代)의 흐름을 피부로 느낀다. 하지만 우리들의 3세들이 우리 1세대가 그만한 나이 때 키의 두 뼘이나 훌쩍 더 큰 모습으로 우리 앞에 기둥같이 막아설 때는 여기서도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3세들은 우리가 우리 할아버지 세대를 기억 못하듯이 그리고 우리들 부모의 얼굴이 가물가물하듯이, 그들 또한 세월이 가면 우리들을 잊게 될 것이다.
요즘따라 마누라와 내가 마주 앉으면 “그저 넘어지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눈 똑바로 뜨고 자식이나 손자 손녀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살자!” 라고 소꿉놀이 신랑각시 대화하듯 철딱서니 없는 말을 주고 받는다. 이게 바로 시대변천의 빛과 그림자의 세월을 살아가면서 세월의 흐름을 아쉬워하는 속내를 털어 놓는 넋두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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