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 문단의 대표적 시인 마종기(67)씨가 영문시집 ‘이슬의 눈’(Eyes of Dew)을 출간했다.
미국에서 40년을 살면서 우리말 시집을 열한권이나 낸 후에 처음으로 펴낸 영문시집이다. 자신이 영어로 쓴 것이 아니고, 영국 태생 가톨릭 수사인 안선재 교수(Brother Anthony,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가 한국문학 번역원의 재정 지원을 받아 번역하고 출판된 것이다.
시집을 열한권이나 냈어도 홍보는 신경도 쓰지 않던 시인이 첫 영문시집에 관하여는 이례적인 ‘부탁’을 해왔다. 그가 책 속에 끼어 보낸 편지 내용을 소개한다.
“…쑥스러운 부탁 말씀을 한 가지 드리고 싶습니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으시다면 이 책을 한두 권 사주실 수 있겠는지요? 그간 한국인의 영시집이 여러 권 미국에서 출간되었지만 100권이 팔린 시집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내 시집을 출간한 출판사와 더불어 미국의 몇 문학전문 출판사에서는 한국 번역원의 출판비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며 그나마 몇 안 되는 한국 현대시집 출간 계획을 포기하려고 한답니다.
이런 시점에서 미국에서 40년을 살아온 내가 이 나라에서 시집을 팔 수 없다면 고국의 딴 시인에게서야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시집이 미국의 여러 곳에서 좀 팔려야 이 나라의 문학 출판사들이 한국계 시인의 시집 출간을 희망적으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평생 처음 내가 자신의 시집을 사주십사고 애걸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만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혹 이 책이 좀 팔려 내가 미국 시단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한국의 문학과 현대시가 미국인에게 알려지고, 그래서 한국 문학이 세계의 문학으로 발전되기를 바라는 희망이 내게 더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말대로 시집을 사달라는 부탁이 하나도 ‘부끄럽게’ 여겨지지 않는다. 커녕, 그렇게 말할 수 있음이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것은 노시인의 ‘애걸’이 목적하는 바가 너무 감사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영문 ‘이슬의 눈’에는 마시인의 9개 시집에 발표된 시 90편이 수록됐다. 조용한 개선(Quiet Triumph, 1960), 평균율(Well-Tempered Clavier, 1968), 카리브 해에 있는 한국(Korea in the Caribbean Sea, 1972), 변경의 꽃(Frontier Flowers, 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Invisible Land of Love, 1980),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How Should Living Together Be Only for Reeds, 1986), 그 나라 하늘 빛(The Color of That Country’s Sky, 1991), 이슬의 눈(Eyes of Dew, 1997),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In the Bird’s Dreams Trees are Fragrant, 2002) 등이 9개 시집.
마종기씨는 일본에서 태어나 서울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1966년 도미했다. 아버지는 아동문학가인 마해송이며, 어머니는 한국 여성 최초의 서양무용가인 박외선이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방사선과 조교수 겸 방사선 동위원소 실장, 소아과 임상 정교수 등을 역임하였고, 오하이오 아동병원 초대 부원장 겸 방사선과 과장으로 일하였다.
1959년 시 ‘해부학교실’로 현대문학 추천을 받아 등단했고 1976년 한국 문학작가상을, 1989년 미주문학상, 2003년 제16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바로 최근에 열한 번째 시집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문학과 지성)를 펴냈다. 의사로서의 특별한 체험들과 이민생활의 외로움을 기본 모티프로 작업하는 마시인의 시에서는 삶과 죽음, 사랑과 상처, 고향과 외로움이 때론 격렬하게, 때론 서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시집 ‘이슬의 눈’은 정가 16달러인데 Amazon.com 등의 인터넷 샵에서 구입하면 훨씬 저렴하게 살 수도 있다고 시인은 귀띔했다. 시인의 영어 이름은 Chonggi Mah이고 ‘Eyes of Dew’를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시인의 이메일 주소는 cjmah5@hotmail.com 혹은 cjmah7@hanmail.net 이다.
After we have all departed this life,
should my soul brush past your face
do not for one moment think
it’s just the wind that shakes the springtime branches.
I intend to plant a flowering tree today
in a scrap of shade on that spot
where I encountered you,
then once that tree has grown and blossoms,
all the torments that we have known
will turn into petals and drift away.
Turning into petals, they drift away.
It may be too remote and pointless a task
but, after all, aren’t all the things we do down here
measured with so brief a yardstick?
As you sometimes pay heed to the blowing wind,
my gentle dear, never forget, no matter how weary,
the words of the wind from far, far away.
<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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