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태(시인)
개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 사람을 비유해서 사용하는 개의 종류로는 사냥개, 삽살개, 똥개, 미친개, 그리고 집 개와 들개가 있다. 또한 개에도 양반이 있어 어떤 개들은 개라고 부르기에는 뭣해서 개라고 하지 않고 견(犬)이라고 부른다. 군대에서 부리는 개는 군견, 개싸움에 쓰
는 개는 투견, 애완용으로 집안에서 키우는 개는 애견, 집 잘 지키는 맹견 등등이 있는데 임금이나 높은 사람에게 충성하는 사람을 개에다 비유해서 충견이라 부르면서 거기에다 벼슬까지 내려 견공이라 칭한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어도 사람을 어찌 개에다 끌어내려 비유를 할 수 있을까? 모든 짐승들 뿐만 아니라 개에게도 사나운 이빨이 있고 사람에게는 짐승 못지않은 이빨에다 말까지 심어 주었다.이빨이나 말이나 쓰기 나름에 따라서 사납기도 하고 남을 상하게도 하고 잘만 쓰면 좋기도 하고 덕도 되겠지만 이빨과 말은 엄연하게 다르다. 말이 사나우면 짐승의 이빨보다도 더 사납다. 그런 말에다 이빨의 사나운 성능까지 사람은 감추고 산다.
개도 개 나름이고 사람도 사람 나름이다.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개도 있고, 잘 나가다가 주인을 무는 개도 있다. 또한 은혜를 입고도 아무 말 없이 무심하거나 심하면 악으로 갚는 사람도 있고, 길을 잃어버린 개가 만리를 헤매면서 주인을 찾아오는 개도 있는가 하면, 주인을 해치려
는 사람을 막아주는 개도 있고, 아무 말을 하지 않는 달을 쳐다보고 공연히 짖어대는 개가 있는가 하면, 발정 냄새를 맡고 집을 뛰쳐나가는 개도 있다.
개 중의 개라는 삽살개는 본적이 한국이라는데 머리털로 눈을 슬쩍 가리고 주인의 눈치를 본다. 그리고 주인의 기분을 눈치로 알아차리고 주인의 기분 따라 꼬리를 흔드는 데에 묘한 재주가 있다. 어느 기관이고 어느 모임이던 간에 높은 사람이나 주위의 눈치를 슬슬 보아가면서 삽살개와 같이 꼬리를 흔드는 사람이 보이는데 이 사람이 어디에서 왔나 뒤져보니 본적이 대한민국이다.개만도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보다 나은 개도 있다. 매사추세츠 남부에 Old Sturbridge라는 마을이 있다.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옛 사람들의 초기 이민생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박물관 식의 작은 마을이다. 서양사람들은 예정에도 돈에 대한 관념이 사나웠던지 은행에서 돈을 빌려줄 때에 선이자 6%를 미리 떼었다는 설명문이 버젓이 은행 안에 걸려있다. 사람이 살던 집안을 보면 그 때의 생활이란 하루를 살기에도 힘든 여건이 분명한데 시비를 가리는 법정 만큼은 동네에 비하여 꽤나 크고 근사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법정 소송을 좋아하는 서양사람 답다고 생각하면서 심심하게 흙길을 더듬으며 걷고 있었는데 박물관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글쎄, 볼거리에 비해 입장료가 만만치 않았던 터라 조금은 후회를 하며 아쉬워 하던 참에 박물관에 진열된 옛 물건이라도 보고 가려고 박물관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벼룩시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구식 총과 긴 칼, 그리고 그 때에 사용했다는 질그릇 몇 개와 유리그릇 몇 개 뿐이었다. 상한 기분에 빠른 걸음으로 출구쪽으로 나오려 하는데 개 몸에 부착을 해 놓은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진열장 앞을 지나가는 눈 먼 여인이 있었다. 신기했다. 눈 먼 사람이 박물관 구경을 한다는 것이 상식에서도 허락이 되지를 않았다.
나는 눈 먼 여인을 안내하는 검정개를 바라보며 그 뒤를 천천히 따라다녔다. 그 여인 뒤에는 별반 신경을 쓰지 않는 남자가 묵묵히 안내를 동행하고 있었고, 개는 벽쪽에 붙어 눈 먼 여인에게 안전거리를 지켜주며 아주 천천히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진열장이 바뀔 때마다 잠시 서서 구경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렇게 천천히 가다가도 앞쪽에 사람이 있으면 가로로 질러 서서 눈 먼 여인이 부딪치지 않도록 막아준다.
나는 문학을 한답시고 불서나 불서에 관계되는 책을 꽤는 뒤져본지라 나는 저 개의 전생이 무엇이었을까 상상도 해 보고 저 개의 사후도 상상하면서 얼마만한 상금이 주어져야 보답이 될런지 궁금하기도 했고 개를 바라보는 마음이 저려오기도 했다.
사람은 이해관계에서 주인을 배반하기도 하지만 개는 주인을 저버리지 않는다. 어느 사람이 개만한 충절을 지니고 있을까? 어느 사람이 개만큼 변치 않고 동행을 해 줄까?
“여보, 오늘 한 구경, 참으로 좋았어요”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하늘을 높이 올려다보며 “하늘도 무척이나 맑고요” 밖으로 나온 후 웃고 얘기하는 종전의 남자는 눈 먼 여인의 남편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하늘을 읽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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