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좀 아는 척 해야겠습니다.
우린 이러한 대화를 가끔 듣습니다. “그 분이 올지 안 올지는 반반이야.” “아냐 십중팔구 오실거야, 만의 하나 못 오신다면 …” 여기에서 ‘반반’ ‘십중팔구’ ‘만의 하나’ 같은 말을 숫자화하고 이론으로 정립한 것이 ‘통계’ ‘확률’학입니다. 그리고 이 확률의 정확도는 그 소위 표본추출이 클수록 정확해집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엄마가 아들 딸을 낳을 확률은 50%입니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면 아들 셋에 딸 하나, 딸만 넷이 있는 집 등 아들 딸이 반반이 안 되는 집도 많습니다. 그러니 확률이 틀린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 결혼적령기의 25세의 남녀 전부가 200만이라고 한다면 백만이 여자, 백만이 남자일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이 처녀귀신, 총각귀신 안 만들고, 다 시집 장가가게 했지요. 그러니 통계 숫자가 커질수록 확률은 정확히 맞아 들어간다는 이야기지요.
여기에 유식한 척 하나 더 하겠습니다. 기망값(Expectation Value)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복권국에서 100원짜리 복권을 만장 팔았다면 100만원의 복권판매 수입이 있지요. 여기에 1,000원짜리, 만 원짜리 등등 당첨금을 총 90만원 걸었다면, 당첨금이 총 복권 판매의 90%이므로 기망값은 90원입니다.
그리고 한 두장 100원짜리 복권을 사서는 몰라도 만일 100원짜리 복권을 매일 100개 사서 100일 동안 돈을 썼다, 그래서 총 100만원을 썼다면 틀림없이 90만원의 상금을 탔을 것이고, 10만원을 날려버렸을 것입니다.
이것이 통계이고 확률입니다. 카지노, 하다못해 정부의 복권도 다 기망값을 80-95% 정도 정해 놓습니다. 하니까 5-15%의 이익을 챙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오랜 시간, 또 더 많이 카지노나 복권을 사면 살수록 돈을 잃게 되는 그 금액은 정확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확률의 도박 말고, 아주 흥미있는 제로썸이란 도박이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어느 상가집에서 4명이서 밤새워 ‘섯다’판을 벌였다고 합시다. 그래서 세 명 중 한사람은 5만원을 잃고, 또 다른 사람은 2만원 잃고, 마지막 사람은 만원을 잃었다면 3명이 8만원을 잃었겠지요.
그러나 나머지 한명은 반드시 8만원을 땄을 것입니다. 그러니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지요. 그래서 제로섬 도박이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면 이 제로섬 도박은 카지노 회사, 복권발행부처 같이 돈 챙겨가는 곳이 없으니 그저 재수 따라 돈을 딸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지 않느냐 하겠습니다. 그렇지요. 설날 만나서 고스톱을 치거나 상가집 밤 새우며 섯다판 벌이고, 하다못해 점심 내기 골프를 쳐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도박에는 인간의 본성 밑에 깔려 있는 묘한 인간심리를 자극하는 아주 절묘한 심리전이 있습니다. 원시시절 사냥에서, 부족간의 전쟁부터 시작되었을 지도 모르는 막연한 기대, 욕망, 그리고 승리감이 바탕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기에 화투 2장 거머쥐고 베팅이라고 할까요, 거는 돈을 올리고 하면서 상대에게 기세, 때로는 눈싸움, 흘리는 미소로, 아니면 허풍을 떨면서 스릴을 즐기게 되지요. 그리고 이러한 노름판에 약간의 속임수까지 섞어가며 전문적으로 도박을 하는 소위 ‘타짜’가 끼어들게 되면서는 확률에 의한 도박보다 더 위험한 도박이 되겠지요.
내가 왜 이런 장황한 얘기를 늘어놓느냐 하면 8일 이라는 짧고 바쁘면 바쁘다할 서울 방문 마지막날 오후에 ‘타짜’라는 영화를 혼자 가서 몰래 보았습니다. 이 영화 문학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한국에 나가서 영화를 볼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참으로 각색이 점점 짜임새 있어지고, 진행이 빠르고, 한마디로 할리우드 영화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 같다고 느껴집니다. 더구나 여배우의 대단한 노출에 놀랐습니다.
극장에서 나와 전철을 타고 저녁식사 만날 장소로 가는 길에 시간은 좀 있고 해서 호기심 삼아 종로 피맛길을 걸었습니다. ‘바다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두 세개의 빠징고(?)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꽉 찬 게임기 앞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이 득실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불현듯 언젠가 만났던 정말 모델 같이 미인이었으나 옹색해 보였던 한 흑인 여자가 나에게 자조적으로 건넸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당신이 영화 좋아하는 것 알아요. 하나 당신은 7-8불 주고 극장에 들어가서 90분 즐기면 끝이지요. 나는 말이에요. 10불 주고 복권 사고 나서, 당첨 발표하기까지 2-3일간 매우 행복하답니다. 잠들기 전 내가 만불 당첨되면 무엇할까, 어디로 여행이나 가야지… 어디로? 하다가, 내가 백만불 당첨되면 어디에 어떤 집을 살까. 이것저것 황홀한 생각에 빠져들곤 하니까요. 또 그러다가 때로 오십불, 백불짜리 당첨도 되고요.”
피맛길 뒷골목 빈대떡 부치는 사람, 꽁치 굽는 사람, 길가 목판에 막깎두기에 소주잔 기울이는 사람, 사람, 사람들 ‘바다이야기’인가 뭔가 하는 빠징고라도 해서 돈 몇 푼이라도 공돈 따고 싶어 하거나 극장 안에서 ‘타짜’ 영화라도 보면서 나는 억대를 걸고, 건곤일척 운명을 거는 도박사나 됐으면 하는 군상(群像), 군상, 군상들…
이것이 오늘 날 모국의 서민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일편 애처로운 생각이 드는 서울 여행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이영묵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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