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상 민주주의가 처음 꽃핀 나라로 아테네를 꼽는다. 그러나 모든 시민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것은 아니고 병역 의무를 다한 성인 남자에게만 이 권리가 주어졌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 인구는 30만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중 투표권이 있는 사람은 3만 정도였다.
이를 두고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것이었다”고 열을 올리지만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는 불완전한 것이다. 불완전했다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라 대다수 고대 국가의 국민들이 왕의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시절 당당하게 자기 권리를 주장하던 시민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랄 일이다.
민주주의는 동시대인들로부터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최대 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민주주의를 경멸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학식이 높은 전문가나 막 노동자나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더더구나 플라톤은 자신이 존경하던 스승 소크라테스가 ‘민주적 절차’에 의해 법정에서 다수결로 사형 판결을 받고 처형되는 것을 보고는 민주주의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렸다. 그의 대표작 ‘국가론’은 어째서 대중이 정치를 하면 안 되나를 밝힌 사유서라고 보면 된다.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은 여러 가지다. 하나는 다수가 반드시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대중 선동가에 넘어가 쉽게 중우 정치나 독재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독일 국민들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1933년 합법적으로 히틀러를 지도자로 선출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게는 이같은 단점을 모두 덮을 수 있는 강점이 있다. 바로 평화적으로 무능하거나 부패한 집권자를 쫓아낼 수 있다는 점이다. 왕정이나 귀족정, 혹은 소수 집단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체제하에서는 국민들이 아무리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혁명을 일으키기 전에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유권자가 집권자를 심판하는 선거일이 왔다. 미국 현대 정치사에서 지난 수년간의 공화당 정부처럼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도 드물 것이다. 의회는 의회대로 공화당의 실력자 탐 딜레이부터 말단 하원의원까지 돈과 섹스 스캔들로 정계 은퇴를 하는가 하면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부통령 비서실장 등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기소되고 있다.
그러나 부패보다 심각한 것은 무능이다. 부시 대통령은 2000년 ‘온정적 보수주의’를 내세우고 ‘작은 정부’를 모토로 내건 레이건의 적자를 자처하며 집권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행태를 보면 하는 짓이 영 딴판이다. 그의 재임 중 정부 예산은 인플레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 연방 예산 적자도 사상 최대 수준이다. 의회가 로비스트들에 휘둘리며 수많은 예산 낭비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에 대해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가장 친이민적인 공화당 대통령’이란 사람이 멕시코와 국경 지대에 700 마일 장벽을 세우는가 하면 그 와중에 불법 체류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이민 개혁 법안은 어디론가 실종돼 버렸다. 집권 2기 공약으로 내건 ‘소유자 사회’도 마찬가지다. 머지않아 재정 파탄이 불을 보듯 뻔한 소셜 시큐리티 개혁도 세제 개혁도 이제는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된 것은 이라크라는 수렁이 부시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점점 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사태로 추락하고 있다. ‘워터게이트’ 폭로 기사로 이름을 날린 밥 우드워드는 그의 최신작 ‘현실 기피’(State of Denial)에서 부시 행정부가 어떻게 당과 정부 내에서 이라크 전 비판자들의 입을 막고 사태를 낙관적으로 호도하는데 급급했는지 생생하게 적고 있다.
공화당의 유일한 대안인 민주당은 미국을 올바른 길로 이끌 아무런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무능하고 부패한 집권자를 몰아내는 것이다. 입법부와 행정부를 막론하고 지난 수년간 공화당이 보여준 모습은 더 이상 이들에게 권력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번 중간 선거일은 공화당 심판의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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