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이 좋은 갤러리의 전속작가 계약은 주류 미술계로 진출하는 통로이다. 미술계에서 전속 시스템이란 갤러리가 아티스트를 대표(represent)하는 것. 신뢰에 기초하는 동반자 관계이기에 합의가 이뤄지는 순간 갤러리가 전속작가의 작품을 미술시장에 독점으로 공급하게 된다.
아티스트가 작품거래에 직접 나서지 않고 작품활동에만 집중하도록 갤러리가 전시 관련 제반사항과 판매, 홍보 등의 비즈니스를 전담하는 게 전속 시스템의 장점이다. 반면에 대리 판매이기에 아티스트 입장에선 100% 만족이 불가능하고, 갤러리 입장에선 비즈니스를 우선할 수밖에 없어 잡음이 따르기 마련. 그래도 주류로, 해외로 뻗어가려면 좋은 전시공간 확보만큼 중요한 관건이 전속작가 시스템 구축이다.
보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주류뿐 아니라 해외 네트워킹에 강한 갤러리의 전속작가로 진출해야하고, 한인 갤러리들은 유명 갤러리와 대등한 파트너가 되도록 전속 시스템을 도입해 수준 높은 작가를 키워내야 한다. 또 한국현대미술이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으려면, 아티스트와 갤러리 모두 전속작가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전속 작가로 진출해있는 한인 아티스트들을 통해 전속작가 시스템을 알아봤다. <하은선 기자>
▷ 전속 작가 시스템
갤러리와 아티스트의 전속에 관한 합의는 대체로 구두계약이다. 서면계약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며, 대체로 구두계약이어서 법적 구속력이 따르는 건 아니다.
작가와 갤러리는 대체로 작품 판매가를 50대50으로 나눠 갖는다. 이는 전시회를 통한 판매뿐만 아니라, 작가가 스튜디오에서 직접 판매할 경우도 마찬가지 비율이 적용된다. 작품가격도 갤러리와 합의한 가격을 지켜야한다.
전속작가에 대한 지원 액수나 방식은 갤러리에 따라 다르지만, 개인전이나 갤러리 자체의 기획전을 통해 1년6개월~2년에 1회씩 전시기회를 제공한. 이때 프로모션에 드는 비용부터 리셉션까지 모두 갤러리가 부담하고, 작품 판매도 대신해준다.
일단 전속작가가 되면, 남가주 혹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작품을 전시, 판매할 경우 전속 갤러리의 사전양해를 얻어야 한다. 한국에서 전시를 갖는 경우 제한이 따르지 않으나, LA의 한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전시회를 기획할 경우 전속 갤러리의 양해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지난 5월 사비나리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었던 사진작가 김인태는 사진전문화랑 화이트룸갤러리(White Room Gallery)의 전속작가이다. 2004년 개인전 윈드 드로잉이후 그의 작품은 화이트룸 갤러리를 통해서만 판매되고 있으나, 한인미술애호가들을 위해 사비나 리 갤러리가 전시회를 마련한 것. 반면에 서양화가 곽훈은 뉴욕의 찰스 카울스 갤러리 전속작가를 거쳐 현재 한국 표 갤러리의 전속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갤러리 전속작가로 활동하는 한인 아티스트들
샌타모니카 버가못 스테이션 내 루스 바크너프 갤러리에서는 지난달 28일부터 제인 박 웰스 개인전 마음의 눈(Minds Eye)이 열리고 있다. 서양화가 제인 박의 갤러리 전속작가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이기도 하다.
이화여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30년이 지난 96년 클레어몬트 대학원를 마친 제인 박은 졸업전시회를 계기로 컨템포러리 아트 전문화랑 루스 바크너프 갤러리(Ruth Bachofner Gallery) 전속작가가 됐다. 아트 딜러 10년, 갤러리 운영 20년 도합 30년 경력의 스위스 출신 루스 바크너프 갤러리 관장은 그녀의 진지하고 성실함, 그리고 높은 목표 성취도에 반해 10년 째 제인 박을 지원하고 있다.
루스 바크너프 갤러리에는 제인 박 외에 한인작가가 2명 더 소속돼있다. 박수정과 지나 한이다. 한인 2세로 모두가 추상이면서 미니멀리즘 성향이 짙은 작가들이다. 아트센터와 뉴욕대학원 출신의 박수정은 2002년 전속작가가 된 이후 3년째 할러데이 그룹전에 참여해왔고, 2003년 전속 계약을 맺은 지나 한은 개인전 2회를 포함해 활발한 전시활동을 벌이고 있다.
루스 바크너프 관장은 전속작가로 계약하면 18개월~2년에 1회 전시기회를 부여하는데, 제인 박은 10년 동안 거의 해마다 개인전을 가졌을 만큼 열정을 지닌 작가라며 뉴욕과 LA출신 작가 25~30명을 관리하는데, 전시마다 작가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전시회 전날에야 채 마르지도 않은 캔버스를 실어 나르는 작가가 있고, 한 달 전부터 완성품을 갤러리로 옮겨와 치밀한 준비성을 보이는 작가도 있다고 밝혔다.
한인 작가 한 사람이 먼저 길을 닦아놓으면 다른 화가들의 진출이 비교적 쉽다. 그렇다고, 전속작가라고 갤러리 관장에게 친분이 있는 아티스트를 추천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심미안을 가진 관장들은 개성이 강한 만큼 자신이 직접 아티스트의 전시회를 방문하거나 포트폴리오를 보고 결정한다.
지난달 21일부터 게일 하비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서양화가 김휘부는 7~8년 전 버가못 스테이션의 분위기가 좋아 포트폴리오를 들고 갤러리에 직접 찾아가 전속작가로 활동하게 됐다. 10년 된 갤러리로 작가 선정 및 전시기획에 깐깐하기로 소문난 게일 하비 관장은 그의 왕성한 창작욕과 신용에 높은 점수를 주었고, 최근 전속작가로 영입한 한인화가 강태호의 작품들에도 남다른 기대를 보이고 있다.
서양화가 오순자는 역시 버가못 스테이션 내 BGH 갤러리의 전속작가로 16년 동안 활동해왔다. BGH에서만 10회 이상 개인전을 열었지만, 최근 BGH갤러리의 오너십이 변경되면서 전속이 풀린 상태. 또한, 뉴욕에 거주하는 설치작가 이계숙은 컬버시티 아트 디스트릭 내 조지 빌리스 갤러리의 전속작가이다. 조지 빌리스 갤러리처럼 LA와 뉴욕에 각각 전시공간이 있는 갤러리는 아티스트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
현재 LA아티스트들이 전속작가가 되기를 선망하는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는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로, 뉴욕과 런던, 베벌리힐스 등 6개의 전시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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