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와 앤디 라우(유덕화)의 오픈 토크.
부산이 ‘영화의 도시’로 변모할 줄 몰랐다. 20년 전 연극 한편 보는 것조차 힘들었던 문화 불모지가 더 이상 아니었다. 거리마다 영화제 카탈로그를 들고 행사장을 이리저리 헤매는 인파들이 넘쳤고, 횟집마다 수준 높은 영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올해로 11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PIFF)는 해운대를 ‘영화의 바다’로 만들어놓았다. 10월 12∼20일 개최됐던 부산영화제에는 63개국 영화 245편이 출품됐고, 연인원 16만2,835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64편의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상영작)·19편의 인터내셔널 프리미어(제작국외 첫 상영작)·72편의 아시아 프리미어(아시아 최초 상영작) 작품이 상영됐으니 이만하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라 할만하다.
63개국서 245편 출품
월드 프리미어도 64편
16만여명 관람 매진행렬
부산영화제의 특징은 관객 연령층이 10∼20대로 젊다는 것. 60회를 눈앞에 둔 칸 영화제와 31회를 넘긴 토론토 영화제는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영화제이지만, 부산영화제는 짧은 역사를 보여주듯 젊은 관객층이 주를 이뤘다.
<아시안 필름 마켓이 처음 시도한 배우 시장 ‘스타 서밋 아시아’>
영화제 기간 관객들을 만족시킨 행사장은 PIFF파빌리온과 해운대 야외무대. 특히, 스타와 관객의 직접 만남을 시도한 ‘오픈 토크’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압권이었다.
해운대 야외무대에서 진행된 김주혁과 아오이 유(일본 여배우)의 만남에는 700여명이 참석했고, 안성기와 앤디 라우(유덕화)의 만남, 영화 ‘괴물’의 봉준호 감독과 일본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만남도 마찬가지였다. 또, PIFF파빌리온에서는 심사위원장 이스트반 사보 감독과 차이밍량 감독의 매스터 클래스 같은 수준 높은 패널이 열렸고, 이준익 감독이 마련한 관객과의 대화는 영화 ‘왕의 남자’를 10회 이상 본 관객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한편, 국민 배우 안성기는 부집행장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행사장마다 얼굴을 내밀어 역시 국민 배우라는 칭찬을 받았다.
<해운대 PIFF파빌리온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들의 패널>
▲부산 영화제는 이벤트의 연속
15일 오후.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진행된 ‘KM 컬처 라인업 쇼케이스’에 참가했다. 행사 시작 20분전쯤 도착했는데, 행사장 입구에 일본 여성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취재진과 영화 게스트들을 초청한 행사였는데, 제대로 발급 받은 프레스 아이디(Press ID·언론 패스)를 목에 걸고도 입장을 저지 당했다.
갑자기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고개를 돌리니, 이병헌과 김주혁, 주진모 등이 입장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행사장으로 들어갔고, 통제 불능의 행사 진행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몰려든 취재진은 줄잡아 700여명. 파파라치와 열성팬들을 포함하면 1,000명은 될 듯 싶었다. 게다가 개그맨 박수홍이 이병헌을 소개하자 이게 취재진인가 싶을 정도의 환호성으로 행사가 중단되기도 했고, 외국어 통역이 준비되지 않아 마치 팬 사인회에 온 듯한 착각 마저 들었다.
추후에 알게 됐지만, 이날 행사가 이병헌 주연의 영화 ‘그 해 여름’제작 보고회를 겸해 일본의 극성팬 100여명이 게스트와 프레스 ID를 상당한 금액에 매수해 무단 입장했다고 한다.
하루 전에 열렸던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제작 보고회와 정우성·김태희 주연 영화 ‘중천’쇼 케이스, 홍콩스타 앤디 라우와 삼모 헝(홍금보), 매기 큐 등이 참석한 한중 합작영화 ‘삼국지-용의 부활’제작발표회 등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요상한 풍경이었다.
▲영화제 참석을 위한 준비
지난해 영화제 기간 부산을 찾았다가 프랑스 칸 영화제를 연상시키는 부산영화제의 매력을 목격한 터라 이번에는 제대로 취재하기로 마음먹고 미리 계획을 세웠다.
개막식(10월 12일)을 두 달 앞둔 8월 말, 온라인 예약사이트인 코리아 호텔(koreahotel.co.kr)을 통해 영화제 본부인 파라다이스 호텔을 겨우 예약했다. 이미 해운대 주변의 메리엇 호텔, 조선 비치 호텔, 시클라우드 레지던스 모두 만실이었고, 올해 처음으로 아시안 필름 마켓이 개최된 그랜드호텔은 아예 예약이 불가능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그래도 해운대 호텔에 머문 게 행운이었다. 영화제가 운영하는 무료 셔틀을 이용해 3곳으로 나눠진 극장가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반의 준비를 한 보람없이 사흘 간 관람한 영화는 딱 두 편. 프레스 티켓조차 당일 예매는 불가능할 정도로 영화표는 매진의 연속이었다. 첫날 예매에 실패해 둘째 날은 부지런을 떨어 4편(최고 예매표 수)을 골랐는데, 해운대와 남포동으로 상영관이 나눠진 걸 미처 몰랐다. 남포동 극장 상영작은 포기해야 했고, 야외극장 상영작인 인도영화는 같은 시간에 열린 제작 보고회에 가느라 놓치고 말았다.
유명 배우·감독 총집결
스타-관객 오픈토크 압권
필름마켓은 다소 ‘썰렁’
▲아시안 필름 마켓
PIFF가 처음 개최한 아시안 필름 마켓(AFM)은 기존의 부산프로모션플랜(PPP)과 부산국제필름커미션&영화산업박람회(BIFCOM)를 통합·확장한 영화시장이었다. 15∼18일 133개 부스(그랜드 호텔 18∼21층)와 PPP 미팅룸을 통해 영화관계자들의 만남을 주선했지만, 첫 회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썰렁했다. 게다가 그랜드호텔의 엘리베이터가 ‘서행’그 자체여서 18층에 올라가려면 30분은 소요되는 느낌이었다.
요즘 극장가 인기몰이작인 한국영화 ‘타짜’(CJ 엔터테인먼트 배급)를 관람한 후 호텔로 향하는 셔틀버스에서 미 배급사 ‘매그놀리아’(한국영화 ‘괴물’의 북미 판권을 구입한 회사)의 담당자를 만났다. 영화에 대한 반응을 묻자 “스토리 자체가 흥미롭고,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하지만, 포커와는 달리 ‘화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배급은 꺼려진다. 대신 리메이크권 구입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그날 저녁 AFM이 대대적으로 홍보한 ‘스타 서밋 아시아’는 꽤나 볼만한 행사였다. 호텔마다 행사장으로 향하는 셔틀버스로 취재진과 게스트들을 실어 나른 덕분에 행사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시아 각국의 주목받는 배우들이 총출동했고, ‘아시안 페이스 인 할리웃’에 한인배우 성 강, 윌 윤 리, 레오나르도 남이 출연했다.
부산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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