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속 설득했다. 덩컨이 희랍의 예술과 베토벤, 쇼팽, 바그너 그리고 니체 등이 그녀 춤의 스승이 였다고 했단다. 또한 ‘디아길레프’는 발레를 모든 예술 행위를 전부 포괄하는 종합 예술 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너는 나의 문학, 김재훈의 그림, 박정민의 사진들 속에서 영감을 얻어 예산이 세계의 발레를 장악하는 거다. 너야말로 우리 친구들 중에 제일 멋있는 길을 걷게 될 거라는 말이다. 어차피 성악가는 체격이 받혀 주어야 하는데 너는 너무 가냘프다. 그러니까 너의 예쁜 몸매로 무대에서 발레를 하라니까. 작은 외삼촌과 작은 이모 덕분에 나는 꼬마 때부터 베토벤도 니체도, 세계의 많은 인물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 어려웠던 이름들을 모아 어려운 내용까지 아름다운 그릇에 담아 온갖 양념까지 쳐서 설명하며 주위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이런 나에게 덩컨의 이야기는 최고의 진수성찬 이었고 나의 친구가 발레를 했으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었다.
“작고 예쁜 네 얼굴에 가는 허리, 팔과 다리를 쭉쭉 뻗으며 무대 위에서 뱅글뱅글 도는 네 모습이 보고싶다. 너는 손색이 없는 발레리나다. 너는 발레리나로 태어났다. 운명적으로….”
나 자신도 어린시절엔 운명의 개념이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이 ‘운명’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친구들도 내가 운명이다, 하고 결론을 내리면 지상명령으로 받아 드렸다. 결국 연희는 덩컨에 취해있던 나의 설득으로 발레리나가 되겠다고 했다.
반에서, 아니, 전교에서 노래를 제일 잘 불렀던 김재훈은 처음에 연희가 성악가가 된다니까 연희의 반주도 해 줄 겸 피아니스트로 전향한 바가 있었다. 그런데 화가가 되라고 내가 그 운명을 들고 나왔다. 계집애 보다도 예쁜 네가 피아니스트? 아니다, 아니다.
“성악가가 되건 피아니스트가 되건 무대에 서면 예쁜게 좋지 않겠니?”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항의 했었다.
“우리들의 친구가 아니라면 그래.”
친구니까 더욱 신나지 않겠느냐는 그들의 물음이 이어졌다.
“남들에게는 그 점이 눈과 귀의 충분한 즐거움이 될 수 있지만 나는 네가 그 걸 즐기며 헬렐레 살 것이 싫단 말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예쁜데 게으른 것이다.”
부지런한 연희와는 다르다. 게으른 너는 날마다 해야 하는 그 지독한 피아노 연습을 못한다. 못하지, 못해.
“어찌 어찌 연습해서 무대에 오른다 해도 세계적인 인물까지는 멀기만 하다. 오히려 예쁜 얼굴이 너를 헬렐레 인생으로 끌고 가기에 딱 맞는다. 그러니까 화가가 되어 화실에서 너같이 예쁜 그림이나 그리는 것이 네가 대접 받을 수 있는 인생이 될 것이다.”
재훈에게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 대견함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꼬마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 스스로 감탄 했었다. 예쁘고 게으른 재훈의, 삶의 방향에 대해서. 아마도 사내 녀석이 워낙 예쁘게 생긴데다 두드러지게 게을렀던 점이 은근히 걱정이 되었었나 보았다.
“지수는 왜 의사가 되어야 되는데? 그것도 안과 의사 말야.”
꼬마들이 내게 물은 말이다.
“쟤는 정만 많은게 아니라 누구보다 맑은 영혼을 가졌고 저희 집이 병원이니 의대대학 보낼게 분명해. 그러니까 아들들이 내과나 외과를 해서 아버지 병원을 이어가게 하고 지수는 안과의사가 되어 예산을 떠나서 우리와 함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거지. 그리고 우리들이 맑은 눈으로 세상을 살아가도록 보살 피라는 거야.”
“우리들 눈 때문에 안과 의사가 되라고?”
꼬마들은 입을 딱- 벌렸다.
“우리들 눈 뿐이 아니고 모든 인간들이 맑은 것을 바라보며 살게 하라는 거지. 탁한 것을 보지 않도록.”
일찍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 찍기를 즐기는 박정민은 법조계 집안이라 혹시 그 계통으로 나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진 작가를 겸하라고 했다.
“놀아주지 않으니까 할 수 없이….”
“운명이라니까….”
친구들은 말했지만 나는 이 친구들의 타고 난 아름다운 심성을 그 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5학년 특수 반에 뽑혀 별도의 교육을 받게 되던 첫 날, 나는 거울에 그대로 반영된 맑고 똑똑한 이 애들을 그 안에서 또 뽑았다. 너, 너, …, 학교 끝나고 우리집에 가자. 나의 이 말에 이 애들은 우리집으로 갔고, 그 날로 시작된 우리들의 관계는 평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장미 빛 인생을 너머, 태양도 별도 무색할 만큼의 빛나는 삶을 꿈꾸면서. 시대는 우리에게 6.25전쟁도 겪게 했고, 외롭고 힘들었던 유학생활도 있었고, 사랑이네, 결혼이네, 가정이네…, 인간이 겪는 모든 과정도 거치면서 지금에 왔다. 태양과 별이 무색할 삶은 아니 였을지 모르지만 장미 꽃과 향기를 바라보며 맡는 인생. 가시 같은 아픔들은 줄기마다 매달려 있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인생여로는 장미 빛 삶이었다.
김포공항의 청사에서 예산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러 가기 전에 나는 스타박스에 들어갔다. 커피 향이 코를 자극하자 북 가주가 나를 불렀다. 아득한 고향으로 왜 발길을 돌리느냐, 네 이승의 종착지 북 가주로 빨리 돌아오거라. 불과 얼마 전에 헤어졌고 불과 얼마후면 만날 친구들이 커피 향을 타고 나를 불렀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떠나고 돌아간 것이 백 번도 넘는다. 그 때마다 북 가주 친구들은 공항 청사의 카페에 둘러 앉아 나를 보내준다. 이 번에는 이병주 추모제 참석차 떠나는 나에게 행사가 하나 더 치루어졌다. 아름다운 ‘스트로베리’에 사는 호텔 업계의 황태자 친구가 금으로 장식된 최고의 크리스탈 시계 ‘RADO’를 팔목에 채워주는 파티가 열렸었다.
“이 시계를 차고 추모식에 참석 하십시요. 그리고 시계를 보며 우리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달래 십시요.”
시계가 내 손목에 채워지자 모두 박수를 치며 이 사랑의 선물을 축하해 주었다.
“약혼 하기를 잘 했어요. 이런 멋지고 비싼 시계도 받고….”
나는 어린애 같이 그 시계를 차고 청사 안을 한 바퀴 돌며 아는 사람을 볼 때마다 자랑하면서 뛰어 다녔다. 북 가주 동포들 가운데는 나의 아들과 딸, 동생과 연인이 수도 없이 많은데 약혼자는 어찌해서인지 한 명 뿐이었다. 그가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빌 게이트 용모를 한 치과 의사 연인으로 부터 소개 받은 자리에서 약혼자가 되었으니 꽤나 세월이 흘렀다. 키신저의 분위기에 김용식 대사 같은 모습의 젊은 청년을 만났을 때 즉각 나는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았다. 그 후 샌프란시스코 한 복판에 있는 그의 호텔 커피샵은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내 테이블 위의 계산은 그의 몫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생일과 명절에는 호텔 투숙의 쿠폰이 우편으로 내게 날라왔다. 그가 40회 생일잔치를 호텔에서 열었을 때 그는 하객들 앞에서 부인과 나를 세워놓고 ‘이 쪽은 나의 부인, 이 쪽은 나의 영원한 약혼자’하고 소개를 해서 웃음 바다가 되기도 했었다.
“어떻게 우리가 약혼자가 되었죠?”
내가 물으면 언제나 그는 똑같은 대답이다.
“내가 약혼을 당했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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