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첫발을 내디딘 한·미FTA협상 제4차 회의가 제주도에서 지난 10월 23일부터 27일까지 계속된다. 북한 핵실험 폭풍에 휩쓸린 뒤끝이서인지는 몰라도 성패를 가늠할 길이 없다. 극열한 반대의 목소리마저 회의장을 짓누른다. 떼법이라 몰아쳐 버리기에는 그들의 절규가 가시되어 밟힌다. 선택과 결단의 기로에 서서 북핵을 탓하며 뒤를 처다 보아야 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누가 뭐라 해도 지구촌의 ‘화두’는 개방과 개혁이다. 한국이라고 예외일까. 선진 한국으로 발돋음해야 하는 지금이기에 더욱 더 마음 쓰이게 된다.
한국은 무역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나라다. 1960년대 이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GATT)이나 ‘세계무역기구’(WTO)로 일컬어지는 다자간 무역체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한 한국이고, 무역 규모 10위권의 성공한 나라이다. 그러나 지금은 GDP 2만 달러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선진 한국’의 꿈을 접을 것인가. 꿈을 이룩할 또 하나의 열쇄를 찾겠다면 한·미FTA 협상에서 한국은 보다 당당해야 한다. 다가올 50년을 내다보며 이해·득실을 따지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과 통일을 위한 눈높이에 서서 찬·반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난 7월에는 WTO 도하개발 어젠다(DDA)도 중단되었다. 선진국들의 훼방 때문이다. 이제 모든 나라들은 지역주의에 더 큰 관심을 쏟게 되었고, 마음 맞는 나라끼리 교역의 틀을 짜는 자유무역 협정에 매달릴 수뿐이 없게 되었다. 자유무역협정(FTA)이 나라 살림의 살 길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어떠한가? 말이 오고 가는 주변 4강 가운데 중국 인가. 일본이 먼저 인가. 자력갱생(自力更生)하겠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FTA 협상 대상국으로 미국을 선택하였음은 분명 나라의 복(福)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협상 대상 19개 분야 가운데 농업이나 서비스 분야와 같이 결정적인 피해를 감수해야 할 분야가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해·득실을 주장하는 각종 수치 하나 하나도 처지에 따라 의견을 달리 할 수 있다. 그것만을 다루기에도 힘겨울 텐데, 미국과의 협상은 통일문제와 외교·안보까지 살펴야 한다.
지난 10월 9일 불쑥 불거진 북한의 핵실험 사태는 우리 협상단의 기를 꺾고, 협상의 앞길까지 어둡게 하고 있다. 대북제재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내세우며 한국의 멱살을 조여 오는 미국의 손속은 사납기 그지없다. 정말 어려운 협상의 자리이고, 북핵은 힘겨운 짐이다.
1950년 이후 ‘한·미 군사 동맹’은 나라를 지켜 주는 방패였고, 경제 발전의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21세기를 맞이하며 한국은 변했고, 테러와의 전쟁에 시달리는 미국도 변했다. 서로 변함만큼 ‘한·미 군사 동맹’을 꾸려가겠다는 의지도 변했다. 우리는 그 변함 속에 우리가 꼭 채워야 할 틈새가 있음을 보아야 한다. 바로 우리만의 ‘안보 틈새’이다. 그 틈새를 한·미 FTA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도 FTA협상 파트너로 일본, 말레이시아가 아닌 한국을 선택하였다. 미국의 경제나 안보에 한국이 꼭 필요·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 볼 때 한국과 미국 두 나라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또 원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다시 손 잡어야 할 한국이고 미국인 것이다. 한국이 한·미 FTA 체제 속에서 힘을 기르고 쌈질에 자신이 생겼을 때 이웃 중국을 챙기고 일본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50년을 위한 선택이고, 결단이다. 한·미 군사 동맹과 경제동맹(FTA) 은 한·미관계를 새롭게 다지는 두 축이 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과 통일을 아우르는 새로운 한·미 협력체제의 힘이 되어야 한다. 북한은 그렇기에 한·미 FTA 의 성공적인 협상을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이 10.9핵실험으로 겨냥한 목표의 다른 하나가 바로 한·미사이의 간격이 아니였을까. 북한이 지금처럼 비핵화의 약속을 어기고, 핵 보유와 확산을 고집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북핵 사태가 어떻게 꾸려갈지라도 한·미 FTA협상 과정이 친미와 반미, 진보와 보수의 싸움으로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대권싸움’의 제물이 되어서는 더 더욱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끝까지 초심(初心)을 지켜야 하고, 국민들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한다. 토론의 자리가 끝날 때 지지와 후원을 분명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나라와 민족의 명운을 가름할 주도적인 개방이요, 개혁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새로운 한·미협력 체제가 굳건히 다져지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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