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극작가 주 평
해가 뜨면 지는 법 ! 이 평범하고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이치(理致)가 요즘에는 실감나게 그리고 아프게 느껴진다. 나이가 더해가는 탓일 것이다.
이 해도 해거름으로 접어드는 마당에 내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 옛날 내 어릴 적 그 바닷가에서 지팡이로 턱을 고이고 먼 바다쪽을 멍하니 바라보던 지금의 내 나이의 노인의 모습이다. 그 노인은 아마 젊은 한 때 만선(滿船)의 깃발을 달고 무쇠같은 팔뚝으로 노저으며 갯마을로 돌아오던, 좋았던 그 시절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지금의 내 심정같이 말이다. 하지만 그 노인의 눈에서 모든 것을 체념(諦念)한듯한 순한 눈빛을 나는 보았던것 같다.
60 이면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이순(耳順)의 나이 때, 나는 주변 사람의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소위 그들이 말하는 그 ‘짓’(연극)을 밀고 나갔고, 70 이면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체념할 것은 미련없이 체념할 나이라는데 80 고개를 바라보는 이 마당에서도 나는 젊은이같이 그들이 생각하는 그 짓이 아닌,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일’을 위해 길길이 뛰고 있는 나를 본다.
나는 원고지 칸에다 초등학교 4,5년 정도된 아이들이 글짓기 시간에 선생님에게 써내는 작문같은 글을 메워 보곤 한다.
/ 그 할아버지는 남들이 잘 걸어가지 않는 외딴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에는 고사리같은 어린이의 손길이 꼬옥 잡혀져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어린이는 마치 세계명작 동화 ‘파랑새’에 나오는 ‘틸틸’과 ‘미틸’이 행복의 새, 파랑새를 찾아서 들판을 지나 언덕을 넘어가는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여윈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고이고 서서 어린이의 눈망울을 바라 보았습니다. 어린이의 눈밍울 속에 별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힘을 얻어 다시 걸어 갔습니다. 그리고는 산등성이를 넘어 갔습니다. 그 산길은 할아버지에게는 넘기 힘든 고갯길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뻔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다시 그 고사리 손의 눈망울을 쳐다 보았습니다. 그 눈망울 속에 둥근 달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고갯길밖에는 더 멀리 걸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자기 대신 그 고사리 손을 잡고 걸어가 줄 사람이 없나 하고 주변을 살펴 보았지만 거기에는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
이같은 넉두리는 어쩜 지금의 내 심경을 단적으로 표현한 내 심정의 표출(表出)인지 모른다. 그렇다 ! 나는 지금 내 대신 이 일(아동극운동)을 이어 받아 걸어갈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이 확실히 힘들고 외로운 길임이 틀림없지만 말이다.
아버지가 가라던, 생활이 보장된 그 길을 마다하고 또 1950년 후반에 성인극작가로 화려하게 데뷔한 그 길에서 까지 발을 빼고는 연극의 저변확대(底邊擴大)와 어린이의 정서심(情緖心) 앙양과 심성(心性)을 올바르게 갖게 하는데는 아동극이 크게 도움이 된다는 나의 신조에 사로잡혀 이 길에 발을 담그고는 그 고사리같은 손을 잡고 걸어온지 근 50년 ! 나는 이 길을 걸어오면서 지칠 때마다 그들 어린이들의 눈망울 속에 반짝이는 별빛을 보고 힘을 내어 걸었고 또 솟아 오르는 둥근 달을 보고 용기를 얻어 걸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나 만은 늙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노안(老眼)에 의한 시력의 감퇴등 나이란 한계(限界)의 고갯마루에서 주저 앉을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을 스스로 느낀다. 이렇게 되자 손아귀 가득히 움켜쥔 모래알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흘러 내린 뒤의 빈 손을 바라보듯 고사리 손을 잡아 줄 사람을 찾고 있는게 요즈음의 내 간절한 바램인 것이다.
하지만 6살 때 박상호 감독 영화 비무장지대(非武裝地帶)에서 주역으로 출연하여 ‘아세아영화제’ 아역상과 조선일보 주최의 ‘청룡영화상’에서 아역상 그리고 초등학교 부터 고등학교 까지 많은 연기상을 받았고, 애비따라 이 곳에 이민와서는 버클리대학의 연극영화과를 나와 이곳에서 공연되는 많은 연극에서 여자 주인공을 도맡았을 뿐 아니라, 애비 밑에서 15년 가까이 연출수업을 받아 온 딸아이 마저도 이 아동극 운동의 계승(繼承)에 대해 체머리를 흔들며 손사래를 치고 있으니 두 어깨에 힘이 빠진다.
이런 한계점 선상에서도 나는 체념하지 않고 휘청거리는 두 다리를 버티고는 내년으로 계획하고 있는 나의 새로운 아동극 작품의 미주지역 공연과 해외 공연 계획을 위해 날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수없이 쌓아 보는 것이다. 그리고 격언(格言)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듯이 내가 잡고 걸어온 그 고사리손을 이어서 잡아 줄 사람이 꼭 나타나리라고 믿어 보는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