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의 계절은 생의 결실을 안겨주는 귀한 시간이다. 온갖 크고 작은 독특한 모양의 색깔과 맛을 지닌 과일들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저마다 생의 열매를 내 놓을 수 있는 가을은 분명 감사의 계절임이 틀림없다.
푸른 잎에 단풍이 드는 계절이면, 시인 도종환님의 ‘단풍 드는 날’이 내 마음을 애잔하게 울린다.
‘버려야 할 것이 /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 가장 황홀한 빛깔로 /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이런 날이 느껴질 때면 난 캐나다 온타리오 지역을 여행하면서 단풍구경을 멋있게 한 일이 회상되곤 한다. 다른 곳에선 볼 수 없었던 새까만 다람쥐가 귀엽게 뛰어 노는 그 곳의 가을 단풍은 확실히 이색적이었다. 그래서 국기에도 단풍잎을 크게 새겨 놓았을까?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땅을 가졌다는 캐나다의 가을 단풍이 주는 분위기에는 풍성함과 감사가 묻어 났다.
그럼 단풍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200여종이 넘는 참나무과에 속한 단풍나무(maple tree)는 그 키가 수 미터에서 크게는 30미터까지 자라고 단단하기 그지없어 우리들의 생활가구의 재료로 많은 유익을 준다. 4계절이 뚜렷한 북반구 지역에서 모든 수목 중 가을을 상징하는 파수꾼으로 중국을 비롯한 동북 아세아에 집중적으로 많이 자생하기에 우리와는 매우 친숙한 나무다.
무엇보다 단풍은 그 색감이 주는 아름다움이 푸른 신록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냥 청춘인양 짙푸르던 녹엽들이 옷을 갈아입는 모습은 참으로 신기하다. 사철수 못지 않게 그 푸르던 잎들이 노란색으로, 혹은 붉은 색으로 갈아입고 마지막 정열을 다 쏟은 후 화려하게 최후를 마감하는 어느 배우처럼 단풍이야말로 자연이 보여주는 현란한 무도회의 극치를 이루는 주인공이다.
설악산 계곡이나 로키산맥 계곡들 그리고 캐나다 평원 등 어디서 보든 단풍들이 벌리는 자연의 향연은 한결같이 화려하고 정열적이다. 곧 낙엽으로 마지막 순간을 향한 귀한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자연의 손길은 그 속에 깊은 인생철학을 웅변하고 있다.
나도 한 때는 낙엽에서 슬픔만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안톤 슈낙처럼 낙엽에 비친 초추의 양광을 슬픈 빛으로 본 일이 있었지만 이젠 오히려 그 낙엽의 옷 색깔을 통해 한 국가의 정신과 자연의 섭리를 직시하면서 가을이 주는 감사를 깊이 느낀다. 인생에서 모든 것에 호기심만 풍성한 유년시절과 앞날에의 기대감으로 좌충우돌하며 시행착오가 많은 청년기만 있다면 인생이 과연 완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경험하면서 완숙해진 삶과 생을 총 정리하는 노년기를 통해 미완성 교향곡보다 차원 높은 생의 찬가를 부를 수 있다면, 단풍은 곧 신록이 꿈꾸지 못했던 다른 세계의 색깔과 노래로 몸부림치는 자연의 숭고한 뜻이리라
또한 단풍의 계절은 생의 결실을 안겨주는 귀한 시간이다. 온갖 크고 작은 독특한 모양의 색깔과 맛을 지닌 과일들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저마다 생의 열매를 내 놓을 수 있는 가을은 분명 감사의 계절임이 틀림없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더욱 엄숙해지고, 좋은 결산을 위해 성실해 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단풍나무가 희망의 상징으로 짙푸른 녹엽을 입고 뜨거운 고난의 여름을 이긴 후 화려한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를 위해 온 자연을 아름답게 장식한 뒤 그 나무는 우리와 늘 함께 하는 가구로 쓰임 받는 것처럼 우리도 역사의 마지막 심판 날에 자기영광을 가지고 우리의 창조자 앞에 나아가 그와 함께 영생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큰 값있는 은혜가 있을까?
우리 모두들 마음에 단풍드는 날이 오면 이 가을 찾아온 단풍잎만큼이나 감사가 풍성하리라 꿈꾸어 본다.
■제3회 광야 신인문학상 시 당선
창작시문집 ‘동심원의 비밀’ 발간
<최세용>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